황홍규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융합대학 초빙교수

황홍규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융합대학 초빙교수
황홍규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융합대학 초빙교수

올해 만 102세이신 김형석 교수님은 참으로 행복한 분이라 생각된다. 1920년 가난하고 어려웠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평생을 학문과 교육에 정진해 오셨는데 100세를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셔서다. 게다가 광복과 독립을 맞이하신 것은 물론이요, 6·25와 폐허를 딛고 세계에 우뚝 선 대한민국을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교수님이 2040년을 넘어 사신다면 어떤 대한민국을 보시게 될까 상상해 본다. 2040년은 0.81로 역대 최저이자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을 보인 2021년의 26만500명 출생세대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해다. ‘26만500명’이라는 숫자는 100만 명이 넘게 태어난 1969년, 70년, 71년생의 25%에 불과하고, 초저출산 첫 세대인 2002년생 49만2000명의 52.8%에 불과하다. 총인구수도 2020년 5184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서 2070년에는 37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남북 대치와 미·중 패권 경쟁이 계속되고, 지금과 같이 절대 다수를 실패자로 만드는 소모적 대입경쟁이 계속된다면 과연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낙관보다 비관이 앞선다. 그러나 비관적 전망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지속성장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한 세대가 발전과 쇠락을 경험하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지속성장하는 대한민국으로 만드는 길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대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피터 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2)」에서 ‘지식’이 ‘자본’과 ‘노동’을 누르고 유일한 생산요소로 등장했으며, 그 지식은 사람에 의해 창조되고 증대되고 개선되기에 지식사회로의 이동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귀환하는 780만 명의 군인들에게 돈을 주어 대학에 가게 한 ‘제대군인원호법(American GI Bill of Rights, 1944년)’에 의해 지식사회로의 전환이 예고되었다고 말한다. 연령, 전단계 교육 이수 여부에 관계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필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터 드러커는 대학을 발전과 혁신의 원동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최재천 교수도 「최재천의 공부(2022)」에서 대학을 일곱 번, 여덟 번 다녀야 하는 수명연장 시대에 40대를 위한 대학, 60대를 위한 대학, 전 세대를 위한 대학, 별의별 대학 만들기가 답이라고 언급했다. 교육으로 성공한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길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교육밖에 없다고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피터 드러커나 최재천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에 대학이 많다는 것은 강점이지 결코 약점이 아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부와 정부, 국회와 언론은 학령인구 대비 대학이 너무 많다면서 또 대학을 너무 많이 가는 것이 문제라면서 이를 약점으로 보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대학에 대한 공적 투자를 아까워하고 대학을 구조조정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다. 정원감축 등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14년째 등록금 동결 상태에서 획일적 진단평가에 의한 재정지원 방식을 9년째 고수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진단평가에서 탈락한 대학들이 다양성과 자율성을 무시한 획일적 평가의 문제를 지적하고 탈락대학의 학생들도 국민으로서 재정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구제를 간청하나 정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몇몇 대학으로만 쏠리는 대입병목이 사회문제가 된지 반세기가 넘었음에도 이를 해결하거나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찾아 볼 수 없다. 

사람밖에 없는 대한민국, 그런데 노동인력 부족과 부양인구 급증에 인구소멸을 걱정해야 대한민국, 중국과 치열한 기술경쟁에 놓인 대한민국, 미·중 패권경쟁에 낀 대한민국, 남북 대치의 대한민국, 결코 지금까지의 성장과 발전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도 바로 지금 대학의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17년 후면 2040년이다. 먼 미래가 아니다. 고도 지식사회로의 변화에 대응해 전 세대, 전 지역에 걸쳐 각자에게 경제 여건에 상관없이 높은 수준의 양질의 고등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있도록 하고 중졸·고졸 학력이 없는 성인에게도 대학 교육을 개방해야 한다. 연구력이 있는 교수, 연구하고자 하는 교수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게 지원하고, 대학 연구소를 육성해서 지식의 허브가 되게 해야 한다. 중소대학들도 나름의 독자성과 특수성에 따라 자신의 사명을 담당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초·중등교육도 정상화되고 교육이 정상화된다. 그러면 저출산도 극복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대학의 질적 성장을 위한 공적 투자를 미루거나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지금은 결단하고 행동할 때다. 결국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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