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층간 소음은 아파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내는 소음도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입주민을 위한 안내방송이 끊이질 않듯이 이곳도 마찬가지다. 늦은 시간에 들리는 다양한 소음으로 잠을 설치거나 시험을 망치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만나 불편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소음 문제 해결에 기숙사 측이 더욱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국 대학생들의 의사소통의 장인 에브리타임이나 대학기숙사의 홈페이지 게시글을 보면 소음은 기숙사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기숙사 건물 바깥에서 발생하는 것은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 주변 농구장에서 공을 바닥에 내리치는 소리, 흡연 구역에서의 잡담들이다. 이들 소음은 기숙사 측이 순찰을 통해 지도하거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숙사 안에서 일어나는 소음은 해결이 쉽지 않다. 소음의 종류도 광범위하다. 위층의 발소리, 쾅쾅 문 여닫는 소리, 잡담, 긴 전화, 노래나 음악 소리, 컴퓨터 키보드, 볼펜 소리, 사각사각 필기 소리, 벽치기들이다. 이들 소음의 근원이 어디인지조차 찾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관리자가 민원이 들어온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정한 방이 아닌 다른 방에서 발생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소음의 흔적이 소멸하는 특성이 있다. 소음 당시에 증거를 확보해 놓지 않으면 기숙사 측의 민원 처리가 더디거나 어려워진다. 소음 발원지를 찾더라도 제공자는 자신이 낸 소리가 남에게 피해를 준 정도인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사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늦은 밤에 귀가할 때의 일이었다. 주택가의 사방은 조용했고, 구둣발 소리만 딱딱딱,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 소리에 익숙한 어머니는 딸인 줄 알고 달려나와 문을 열어주곤 하셨다. 어머니에게 딸의 구둣발 소리는 안도감을 주었고, 나로선 그냥 남보다 조금 센 발디딤이었을 뿐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여전히 발디딤이 센 나에게 ‘아래층에서 올라올까 걱정된다’며 사뿐히 걸으라는 말을 가족들로부터 듣곤 한다.

사람의 주관적 요인에 따라 소음을 인식하는 성향이 다르다. 가해자의 경우 필자처럼, 고의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음이나 소란이 경미할 경우 주의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소음이 크면 기숙사는 생활 수칙에 따라 2점이나 3점 정도 벌점이 부과된다. 하지만 소음 벌점은 퇴사에 해당하는 벌점인 15점에 비해 매우 약하다. 벌점 받는 것을 무서워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소음을 야기한 학생에게 주의를 주거나 약한 벌점을 준 것이 소음원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되기보다 오히려 장애가 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속해서 소음에 노출된 피해자는 정신적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킹콩 같이 쿵쾅거리는 발자국이나 딱딱거리는 볼펜 소리가 귀에 와 박힐 때다. 잠을 자려고 해도 귓전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잠은 자기 어렵게 만든다. 한번, 소음에 노출된 피해자는 귀 트임 현상에 빠져든다. 귀가 열리면 작은 소리조차 극도로 예민해져 더욱 크게 들리거나 뒤이어 일어날 소음까지 연상하기에 이른다. 때때로 실제인지 환청인지 심각한 혼란에 빠져 기숙사 생활이 어려워진다.

이런 부류의 심각한 소음 피해자는 직접 소음의 근원지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잦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소음이 근절되지 않으면 똑같이 복수한다고 벽을 치거나 직접 호실로 찾아가 협박이나 폭행하는 불상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보복 소음은 오히려 고의성이 쉽게 드러나므로 처벌받을 수 있다. 대구의 한 대학기숙사에서 층간 소음으로 주먹을 휘둘러 전치 2주의 상처로 상해를 입혀 법적 처벌을 받은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이렇듯 층간 소음 분쟁 당사자는 이미 감정이 상한 상태여서 이들이 직접 대면하면 자칫 물리적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단 분쟁이 생기면 당사자 간에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만큼 분쟁이 더 커지기 전에 기숙사 측에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숙사 측은 소음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안내 방송을 통해 기숙사 생활자의 소란과 소음에 대한 배려의 마음과 수칙을 상기시키고 조심하도록 지도하는 것은 기본 수순이다. 하지만 사고 발생 후에 이런 조치는 학생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기숙사 측은 같은 민원이 재차 발생하는 것을 감소시키기 위해 수시 순찰을 통해 소음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선조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기숙사의 소음이 입사 기간 내내 발생하는 가장 많은 민원인 만큼, 생활 수칙인 ‘소란과 소음 행위’에 부과되는 약한 벌점을 5점 이상으로 높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벌점 누적이 향후 입사에 불이익이 있다는 점을 인지시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숙사 입사 시에 실시하는 오리엔테이션이나 입사 안내자료를 배부할 때도 소음 유발 유형을 상세히 안내한다면 소음 행동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기숙사의 학생들로 구성된 자치회 활동을 통해 생활 당사자가 스스로 소음 문제의 심각성을 가질 수 있는 체험활동 프로그램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학생이 자신이 생활 소음을 유발한 가해자인지도 모른 채, 자신의 가해로 인해 불편해하는 피해자가 없도록 예방하는 차원에서다. 이런 활동이 전제될 때,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기숙사 학생들의 불편은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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