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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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대학 Z총장은 타운홀 미팅(전체 구성원 회의)을 열어 참석자에게 국제화 현안에 관한 의견을 요청한다. 학생회장 A는 외국인 학생이 캠퍼스의 학습공동체와 문화에 융화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장 먼저 지적한다. B학장이 자격을 갖추지 못한 외국인 학생이 증가하면서 수업의 질이 나빠진다고 하자, C기획처장은 재정수입과 대외적 평가를 위해 불가피하다며 반박한다. D사업단장은 최근 교육부 교육국제화담당관과의 미팅 사례를 소개하며 대학본부에서 국제화 사업에 적극적인 참여·지원 의지를 보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E국제처장은 전 세계적인 학생 유치 경쟁이 유례없이 심화하고 있어 선제 조치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발언을 듣던 Z총장은 골똘히 생각하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묻는다. 
“그런데 우리 대학에 국제화가 왜 필요한가요?”

‘국제화’라는 키워드는 1995년 WTO 체제 출범에 따라 고등교육을 거래가 가능한 서비스로 보는 관점이 널리 퍼지면서 우리 대학사회에 깊숙이 침투했다. 고등교육 국제화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토론토대학의 Jane Knight는 대학의 국제화를 ‘고등교육의 목적(purpose), 목표(goal), 기능(function), 전달(delivery)에 국제적 차원(international dimension)을 통합하는 다면적인(multifaceted) 프로세스’라 정의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각 대학이 ‘국제화’를 어떤 차원과 관점에서 바라볼지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학 국제화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는 유용한 도구로서 5M 프레임워크를 제안한다.

첫 번째 M은 마이크로(Micro), 즉 대학의 국제화와 영향을 주고받는 개인의 관점이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양적 지표 중심의 국제화 파고를 넘으며 대학 구성원들이 “겪어낸 경험(lived experience)”이 이에 해당한다. 갑자기 영어로 강의를 해야 했던 인문학 교수의 내적 갈등과 무기력감. 우수한 한국어능력시험 급수를 갖추고 한국대학에 왔지만,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 했던 외국인 유학생의 혼란과 좌절. 개인 소외 현상은 국제화라는 대의(大意)와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낸 실체적 그늘이다. 학생회장 A의 진술은 15만 명의 외국인 학생 유치라는 대외적인 성과 이면에 남아 있는 미시적 과제를 조명한다.

두 번째 M은 메조(Meso) 관점으로 각 대학 차원의 국제화 전략과 방향성을 의미한다. 명확한 국제화 비전과 효과적 추진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프로그램은 대학 전체의 발전 계획과 맞닿아 있는지, 구성원들과의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됐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재정수입 △평가를 위한 국제화 지표로 대표되는 ‘현실’과 학생의 국제화 경험을 통한 전인적 성장 △교수자의 국제학술 교류 및 연구를 통한 질적 성장 △기관 차원의 사회공헌과 같은 ‘이상’의 절충점을 찾는 과정은 매우 고되다. B학장과 C처장의 토론은 대학 국제화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 그리고 국제화 어젠다에 관한 공론화, 의견수렴, 합의 구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세 번째 M은 매크로(Macro),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 흐름에 보조를 맞출 필요성이다. GKS사업, 캠퍼스아시아/한-아세안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AIMS)과 같은 학생 유치·교류뿐만 아니라, 국제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UPIC)을 위시한 고등교육 공적개발원조, 글로벌연구네트워크사업(GRN) 등 연구 국제교류 증진사업과 같은 다양한 기회와 환경요인을 적시에 포착해 전방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현장의 실천가 관점에서 필요한 제언을 정책당국에 상향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필수적인 상호작용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D단장의 의견에 우리는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 M은 메가(Mega)다. 이는 글로벌 차원에서 고등교육의 흐름과 전망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전 세계 학생모집 경쟁이 날로 심화하고 있다. 온라인대학, MOOC, 마이크로학위, 글로벌조인트벤처 설립과 같은 새로운 모델의 출현은 ‘동(East)에서 서(West)로’의 전통적인 학생 이동 흐름에 눈에 띄는 변화를 내고 있다. E처장의 발언처럼 학생 이동과 이주 경향의 변화를 예의주시해 선제적으로 시장을 개척·선점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발굴·활용하는 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단 학생 유치만이 아니다. 대학의 혁신이 초국가적 변혁의 일부라는 관념은 각 대학 세계화의 방향성이 논의되는 터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M은 메타(Meta), 그동안 대학의 국제화를 조망했던 평면적인 담론을 초월하는 상위 관점이다. 이는 지난 25년 동안 대학사회가 숭배했던 ‘국제화’라는 키워드를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이라는 어휘가 전달하는 달콤함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 각 대학에서 국제화의 의의와 가치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는 현장의 실천가들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그들의 행위가 온전하게 의도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Knight의 대학 국제화 정의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대학의 목적, 목표, 기능, 전달이 국제적 차원에서 조직돼 있는가. 국제화가 우리 대학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있었는가, 각 대학의 맥락에 맞는 ‘적정 국제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Z총장의 마지막 질문은 그동안 많은 대학 관계자들이 애써 뒤로 미뤄 왔던 숙제일지 모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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