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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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외국계 강소기업을 거쳐 특성화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로 근무하는 손영배 교사는 그의 저서 《이제는 대기업이 아니라 강소기업이다》에서 취업 희망자와 부모들이 갖는 첫 번째 착각은 ‘좋은 대학에 가면 뭔가 되겠지 하며 무조건 대학 입시에 올인하고 보자라는 점을 꼽았다.

두 번째 착각은 대학 입학 후에 남들과 같은 조건과 스펙이면 어디든 날 불러주겠지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세 번째는 남들처럼 조건을 갖췄으니 입사하면 다른 사람들만큼 잘할 수 있겠지 하는 착각이다. 이런 착각을 언급하면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나 미래를 바라보는 취업 희망자들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면 좋겠다고 했다. 현실적 상황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동감한다.

며칠 전에 한 고3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녀의 진학에 관해 궁금해서 전화했단다. 아이는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데, 전문대학이라도 가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해 성적이 좋지 못한데, 아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전문대학이 있겠냐고 물었다. 필자가 사는 곳 주변의 전문대학이 많으니 그 대학을 지원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문대학은 지원 횟수에 제한이 없기에 얼마든지 지원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수시는 1차와 2차로 나눠 선발하므로, 수시 1차와 2차에 모두 지원하는 것도 잊지 말라는 조언도 했다.

​그러자 돌연 4년제 대학의 사회복지과나 유아교육과를 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아이 성적으로 4년제 대학을 지원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엄마는 현재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집안 경제력은 넉넉하지 않아 국가 지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필자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아이 성적이면 중하위권의 사립대학밖에 갈 수 없는데 비싼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럴까? 아무리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의무교육을 하는 고등학교와 달리 엄청나게 다른 경제적인 부담이 될 텐데, 과연 엄마가 감당할 수 있을까? 공부하기 싫어해 성적이 낮은 아이가 4년제 대학에 간다고 한들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 지금도 공부 습관이 되지 않았을 텐데, 4년제 대학에 간다고 그 습관이 고쳐질까? 지금 그 아이는 오랫동안 대학에 다니도록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짧게 다니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현장 전문가가 되는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도 현장에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의 조언을 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허탈한 마음이 든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상황과 아이가 대학 공부를 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는 상태이지만 부모는 4년제 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 아이의 상태가 어떠하든, 4년제 대학을 진학하면 아이의 미래가 부모가 생각하는 것처럼 펼쳐질 것이란 착각을 한다. 부모가 그리는 아이의 장밋빛 미래는 부모의 생각에 머무를 뿐이다. 아이의 미래는 부모의 희망이나, 아이의 희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고용주가 보기에 필요한 인재가 되었을 때와 사회에서 아이의 능력을 받아들였을 때 가능한 것이다.

​어느 중년은, 취업하고 몇 년 지나니까 학벌은 별 의미가 없었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개인의 업무 능력과 기업에서 요구하는 직무능력이 중요한 취업의 결정요소라 했다.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들이 취업할 곳이 대기업이나 강소기업만 국한할 필요가 없다. 중소기업이나 소기업도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최고의 상황을 생각하되 차선과 차차선도 고려해 준비해야 한다. 자기가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자신만을 기다리는 기업이나 고용주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그 아이의 상황은 4년제 대학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생을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일자리는 줄어들지만 새로운 컨셉과 콘텐츠를 가진 사람의 일자리는 많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기회가 온다. 그런 컨셉과 콘텐츠는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삶의 현장과 기업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생기는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나온다. 그런 시행착오를 맞닥뜨릴 용기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다. 대학을 오래 다닌 증서보다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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