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원회가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공식 출범했다. 일반적으로 합의제 행정기관은 “의사결정이나 집행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거나 정치적 중립 및 행정의 공정성이 강조될 경우에 적합한 조직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결정자 1인의 책임과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독임제에 비해, 여러 사람으로 구성되는 합의체에 조직의 의사결정권을 부여하는 조직형태”이다.

합의제 행정위원회로서 국가교육위원회는 기관의 의사결정이 당해 기관 및 대외적 구속력을 가진다. 이런 면에서 역대 대통령의 교육정책자문기구와는 성격과 위상부터 다르다.

역대 대통령들이 교육개혁을 위한 여러 기구를 설치 운영했지만 대개 교육부 중심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해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인원과 예산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명실상부한 독립 기구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그동안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으로 교육현장의 혼란이 극심했다. 백년대계(百年大計)여야 할 교육정책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대표 정책이 된 지 오래다. 대입제도와 교육과정 개편이 대표적 사례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혁명적 사변이다. 교육정책 결정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10년 단위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계획이 수립되고, 학습자 중심의 미래교육과정 수립 및 모니터링, 학제·교원정책·대입·학급당 적정 학생 수 등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견 수렴과 갈등 조정이 이뤄질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으로 중요 교육정책 결정의 주도권이 관(官) 주도에서 민관(民官) 합동으로 넘어오게 된다.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정책 추진의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판을 깔아놓았지만 과연 계획대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서기도 한다. 탈정치화, 정치적 중립성을 주요 가치로 내걸었는데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상 국가교육정책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온 대통령과 교육부, 그리고 각 정당과 관련단체의 입장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탈정치화’는 ‘도로아미타불’이 될 공산이 크다.

‘초정파’ ‘초정권’ 아무리 외쳐도 이미 자극적 이슈가 돼 버린 교육문제를 어느 정당이나 대통령이 외면할 수 있을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스스로 교육문제를 정치문제화하려는 현실정치권의 유혹과 관성을 단호히 끊어내려는 결기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설치한 국가교육회의를 주목하고 싶다. 지난해 국가교육회의는 ‘2022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시민 여론 수렴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시민 10만 명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총론에 담을 미래적, 시대적 가치에 관한 토론과 여론 수렴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이 과정을 주도한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안건을 논의하면 국가교육위원회의 중립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국민의 집단 지성 앞에 위원 각자의 정치색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교육위원회는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를 참조했다고 한다. 조직뿐만 아니라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핀란드식 위윈회 운영 방식도 함께 도입했으면 좋겠다. 일방의 ‘독단’ 보다는 ‘합의’가, ‘폐쇄’보다는 ‘개방’이 우선되며,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시 되는 방향으로 나가길 바란다.

무엇보다 위원 각자가 국가교육위원회의 시대적 역할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중요하다. 추천 기관의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전체를 못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장성과 실용성이 몸에 밴 위원과 국민으로부터 신망을 듬뿍 받는 위원장이 전혀 새로운 모습의 위원회를 선보일 때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우려’는 말 그대로 ‘우려’로 그치고 교육개혁의 새로운 불길이 타오를 것이란 희망이 생길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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