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10시 서을 영등포구 당산동 우송빌딩 4,5층은 20대 후반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2백여 대의 컴퓨터 앞에서 입력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한문으로 된 서적을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몇몇은 4층 한켠에 마련된 휴게실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를 책상에 대고 잠을 자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한마디로 산만한 분위기. 이들은 지난 10월23일부터 시작된 정보화 근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고학력 실업자들이다. 국회 전자도서관 +사업의 주관 사업자인 SK컴퓨터통신에 따르면 참가자는 대졸 학력이 +대부분이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 사업에 투입된 인원도 다수라고 한다. 이들은 일정한 임금을 받으면서 국가 정보화 사업에 투입된 공익근무요원인 셈이다.

@ 공익근무제 현황

현재 정부가 시행중인 고학력 실업대책 중 공익근무제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공공부문 정보화 지원 사업(정보통신부 및 각 기관) △공공기관의 기본 DB, 흠페이지 구축 등 정보화 사업지원 (행정자치부) △초중등학교 컴퓨터 교실 및 영어, 과학 실습 지원 사업(교육부) 등 3가지이다.

이중 가장 많은 고학력 자를 채용하고 있으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정보통신부 주관하에 시행중인 정보화 근로사업. 지난 10월19일 시작된 농업기술정보 DB 사업에 6백50명을 투입한 이래 오는 30일 국토개발원에서 시행예정인 지하매설물 수치지도화 사업에 7천2백4명의 고학력 실업자를 채용한다. 올해안에 투입될 인원은 총 3만3천2백98명이다. 이들은 2만5천원에서 3만5천원의 일당을 받으며 약 4개월 동안 정보화 +근로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참가자격은 전문대졸 이상의 미취업자이거나 노동부에 구직등록을 하였거나 가능한 사람으로 한정했으며주관사업자별로 심사를 한 후 채용하게 된다.

정보화 근로사업의 핵심은 주관 업자가 모두 민간기업들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 구축 사업은 아이캔시스템, 현대정보기술이 선정됐고 국회도서관은 SK컴퓨터 통신, 대림정보통신, 인켐아이엔씨가 맡았다. 청호컴퓨터가 농촌진흥청의 농업기술정보 DB 구축작업을 벌인다.

정보화 근로사업이외에 공공근로의 형태를 뛴 행자부와 교육부 주관 +사업은 현재 각 지자체와 교육청 주관하에 8천명(행자부-2천명, 교육부, +6천명)이 정부지원을 받고 있다. @ 공익근무제 문제점

정보화 근로사업은 정부의 재정지원과 민간 기입의 기술력을 결합시켜 +정보인프라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학력 미취업자를 대거 흡수함으로써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채용공백을 메워 보자는 의도로 출발했다. 기존의 공공근로가 고학력 실업자를 흡수하지 못하는 단순한 +'풀 베기' 수준이어서 고급인력의 실업구제책이 되지 못했던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과의 협조하에 도입된 실업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짧은 기간에 너무 규모가 큰 사업을 시도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모든 사업이 4개월 예정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1백일 안에 사업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이 내부방침으로 정해진 상태. 이렇게 될 경우 정보 인프라 구축사업이 전시성 사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회 전자도서관 구축사업의 경우 DB화한 자료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나중에 이를 수정할 때는 처음 입력할 때만큼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당한 전문인력이 이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입력작업을 하고 있는 고학력 미취업자들은 자격심사를 거쳐 선발됐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능력이 검증된 상태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국회도서관에서 이 업무만을 전 담할 인력을 배치, 지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3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마디로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이 사업에 참며하는 사람은 4대 보험(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4개월 동안은 고용된 것으로 처리된다. 실업률이 그만큼 하락하는 것이다.

국회 전자도서관 사업 주관사업자인 SK컴퓨터통신의 한 관계자는 "한마디로 넌센스다. 4개월 후에 이들을 고용할 생각은 현재로서는 없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간다면 4개월후에 또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이들을 일시적으로 채용할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이렇게 된다면 전자도서관 사업은 4개월마다 신참 미취업자나 실업자들을 고용해서 새로 교육을 시키고 사업을 진행시켜야하는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또 고학력 미취업자와 실직자의 고용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데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정보통신부 초고속망기획과는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자 도서관구축 사업, 농업기술정보 DB구축 등 4개 사업의 경우, 10개의 대형 +Sl(시스템통합)업체와 2백90여개의 중소기업이 주관사업자 또는 컨소시엄과 협력업체로 참여한다"며 "관련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업계관계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에 별 도움이 못된다고 한다. 다만 정부가 사업자금을 현금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현금유동성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90%는 공공근로사업 +참가자들의 인건비로 나가고 10%로 장비대여료, 건물 임대비 등을 해결한다. 그리고 이 사업은 길어야 4개월을 넘기기 힘들기 때문에장기적인 사업전망을 준비하기 힘들다.

@ 해결방안

정보화 근로사업은 정부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는 하지만 실업문제 +해결에 기업을 끌어들일 방안이다.

또 기존의 공공근로사업과 달리 사업의 결과물이 국민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인프라다. 참여하고 있는 인력이 대부분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인 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 사업의 초점을 많은 인원을 고용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서는 곤란하다. 사업 결과물의 질적 수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4개월짜리, 혹은 1백일 짜리로 계획을 잡을 것이 아니라 1년 정도의 기간을 잡고 고학력 실업자를 고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관리도 철저히 해야하며 직장이라는 개념을 갖도록 해야 한다.

만약 기간을 길게 잡고 공익사업과 교육을 병행한다면 현재 공공근로자의 +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기업들의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심지어 정보화 근로사업의 주관 사업자들조차 "4개월간 정보화 근로 사업에 참여했다고 '수료증' 한 장 던져주고 실업률을 낮추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현재의 공익근무제는 고학력 실업자들이 새로운 지식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실업으로 인한 근로저하 및 인적능력의 마모를 방지하는데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는 미취업자들이 스스로 직업능력을 개발해 새로운 직장을 찾거나 경기가 호전되어 기업의 수요가 창출되기 전에는 일자리를 얻기 힘들다.

취업전문가들은 정부가 공익근무제를 단순히 '취로'사업의 의미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직업교육을 기업과 병행해서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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