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총장들 “수도권 집중 우려…지역대 살려달라” 호소
대학 간 통폐합·캠퍼스 설립·학과 구조조정 등 각개전투

지난 8월 ‘비수도권 7개 권역 대학 총장협의회 연합’ 소속 관계자들이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도종환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지난 8월 ‘비수도권 7개 권역 대학 총장협의회 연합’ 소속 관계자들이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도종환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올해 국립대 국정감사는 지역대 총장들의 토로의 장이었다. 지역에 위치한 대형 거점국립대마저 대학의 위기를 절감하면서 저마다 지역대에 필요한 정책을 촉구했다.

지난 12일 부산대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부산대·경상국립대 등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는 차정인 부산대 총장이 주요 업무와 성과 보고는 자료로 대신하겠다며 그보다 지역대에 필요한 지원을 호소했다.

차정인 총장은 “기형적인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인재가 지역을 떠나면 기업도 떠나고 기업이 떠나면 인재 유출은 가속화 되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기 경상국립대 총장 역시 “지방대가 다 죽어가고 있다”며 “고등교육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키고 미래 산업에 부합하는 인재를 양성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도록 고등교육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해 달라”고 촉구했다.

차 총장은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의무제’ 개선을 권 총장은 ‘지역 연구중심대학 육성과 국립대 무상 교육제 도입’을 요구했다. 이처럼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악화되면서 지역대에서는 저마다 위기를 타개할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

모이면 산다…통합에 박차 가하는 지역대 =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입학 자원이 줄어들면서 지역에서는 통합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상국립대는 경남과학기술대와 통합하면서 지난해 3월 ‘경상국립대’로 정식 출범했다. 2014년부터 통합 의견을 취합해 왔던 경상대는 당시 교직원의 70%가 통합에 찬성할 정도로 여론이 상당했다. 통합 대상으로는 창원대와 경남과기대가 오르내렸다.

통합은 쉽지 않았다. 경상국립대가 경남과기대를 흡수 통합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경남과기대의 교수, 학생, 시민단체 등에서 통합을 반대하기도 했다. 반대와 협의가 반복되던 끝에 경상국립대는 1대학 4캠퍼스 체제로 통합 모델을 오나성했다. 총장실, 기획처, 사무국 등은 경남과기대 칠암캠퍼스에 두고 나머지 부처는 경상대 가좌캠퍼스에 두는 방식이다.

현재 통합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곳은 충남대와 한밭대다. 지난 2월 통합설이 한 차례 나왔지만 한밭대는 총장 명의의 서신으로 통합설을 일축하기도 했지만 이미 물밑에서는 양 대학 간 통합을 위한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충남대는 학무회의를 열고 학무위원 전원 합의로 ‘대학 통합 논의 시작’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대 측은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다수의 설명회와 공청회, 연구용역 등 의견수렴을 거쳐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숙 총장은 국정감사에서 통합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학령인구 감소 가속화 등으로 대학 간 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주대와 서라벌대는 한 번의 실패 후 재통합 추진에 나선 사례다. 양 대학 모두 재단 비리 등으로 학내 분쟁, 정부지원사업 제한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난 2018년 통합을 추진했다가 교육부의 불허로 통합에 실패한 바 있다.

지난 4월 경주대와 서라벌대는 교육부에 통·폐합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정부의 교육 정책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 대학의 구조 조정을 통한 교육 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해 통합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통합대는 내년도 신입생 모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도권과 가까워지는 것이 살길…제2의 캠퍼스로 생존 모색하는 대학들 = 수도권과 인접한 제2 캠퍼스는 수도권 탈출 러시가 이어지는 지역대로서는 또 다른 자구책 중 하나다.

2021학년도 신입생 충원율만 보더라도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지역대의 충원율은 낮았고 전년 대비 낙폭도 컸다. 2021학년도 신입생 충원율은 강원 지역이 89.2%, 경남 85%, 경북 88.1%, 전남 89.6%, 전북 89.3%, 제주 89.4%로 나타났다. 이 중 강원, 경남, 전북 지역은 전년 대비 충원율은 각각 10.1%p, 10.4%p, 10.3%p로 급격하게 하락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수도권과 가까운 대전, 세종, 충남, 충북 지역의 신입생 충원율은 93~98.6%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지역대에서는 수도권에 근접한 제2 캠퍼스 설립이나 외연 확장에 고심하고 있다. 총장 선거가 한창인 배재대 총장 후보자들은 저마다 공약에 제2 캠퍼스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욱 후보는 서울 정도 소재 학교법인 소유 건물에 대학 연계 공간 마련을 공약으로 내놨다. 박인규 후보는 서울 정동-대덕 밸리-대전까지 이어지는 가상 커뮤니티 캠퍼스 구축으로 수도권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범희 후보는 수도권과 천안에 제2 캠퍼스 설립 등을 약속했다.

수도권 캠퍼스는 아니지만 충남대는 내포를 포함해 대덕·세종·보운 지역을 아우르는 초광역 캠퍼스를 구상 중이다. 이미 세종 부지는 확보했으며 내포캠퍼스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각각의 캠퍼스를 특성화 캠퍼스로 성장시켜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외연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진통 뒤따르지만 불가피해진 학내 구조조정 = 대학의 몸집을 줄이거나 유망 학과를 도입하는 등 학내 구조조정이 이제 불가피한 선택이 돼 버렸다. 경남대는 올해 한국어문학과, 영어학과, 사회학과 등 6개 학과에서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고 정치외교학과와 경찰학과를 경찰학부로 통합했다. 학령인구 감소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인제대도 올 초 정원 감축과 학과 통폐합 결정을 내렸다. 1890여 명의 입학 정원을 줄이고 학과도 통폐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미래발전위원회를 꾸려 학과 구조조정 논의를 시작한 결과다.

계명대와 대구가톨릭대 등 대구·경북 지역 대학들 역시 일찍이 학과 구조조정에 나섰다. 계명대는 일부 대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고 스마트제조공학전공, 실버스포츠복지전공, 웹툰전공 등 3개 전공을 신설했다. 대구가톨릭대 역시 내년도 모집 정원을 390여 명 감축하고 배터리 학과를 신설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대학의 정원 조정은 시작됐다. 교육부는 2025년까지 대학이 1만 6000명의 입학정원을 감축하면 대학에 1400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반대를 포함한 96개 대학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들이 내놓은 계획에 따르면 2025년까지 입학정원 총 1만 6197명이 줄어들게 된다. 참여 계획을 밝힌 대학의 80% 이상이 지역대에 집중됐다.

저마다 출구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이는 한시적이란 분석도 있다. 한 고등교육 전문가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위기는 피할 수 없게 됐다”면서 “정부가 학령인구 감소세를 고려해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재정지원을 확대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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