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건축의 숨은 이야기와 분석 담은 《디자인과 철학의 공간 우리 궁궐》 출간
디자인과 철학의 관점으로 궁궐을 바라보다 발견한 전통문화의 아름다움
“규모와 화려함보다 자연친화에 중점 둔 소중한 문화유산 궁궐에 자부심 가져야”

권오만 경동대 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사진=김한울 기자)
권오만 경동대 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사진=김한울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한울 기자] “일반적으로 궁궐하면 역대 왕들이 생활하고 나라를 다스렸던 곳이라 딱딱하고 지루하고 진부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궁궐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공간디자인과 최고의 건축 기술, 역사를 관통하는 상징성, 우주관, 사상적 정수 등이 담겨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권오만 경동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가 궁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한 마디다. 지난 8월 《디자인과 철학의 공간 우리 궁궐》을 집필한 권 교수는 2018년에도 《잊혀진 문화유산 : 해자와 풍류 이야기》를 집필해 풍류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문화유산에 빗대 표현하는 등 전통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현해왔다. 그에게 궁궐이란 현대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건축 디자인이 살아 숨쉬는 공간 그 자체였다. 건축디자인학계의 전문가로서 궁궐이 가진 매력을 소개하고자 한 권오만 교수를 지난 3일 경동대에서 만났다.

-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궁궐은 단순히 왕이 살았던 곳이자 역사적 공간이라는 인식이 많다.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흥미로움보다는 지루함과 고리타분함이 동반되기 쉽다. 반대로 해외 여행을 간다고 하면 그 곳의 건축물에 대해 궁금해하고 경탄하기는 쉽다. 해외 문화유산을 보고 느끼는 문화콘텐츠적 요소나 이야깃거리를 많이 알지 못해 사람들이 궁궐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보물 같은 공간이다.
경복궁을 예시로 들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정권 교체기에 새 지도부가 풍수지리설을 기반으로 삼아 권력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설한 궁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음양오행, 전통적인 우주관 및 질서 등 조상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과 철학을 녹여낸 문화적 의미가 가득한 공간이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궁궐이 사실은 디자인과 철학적 의미가 가득한 곳임을 알려주고 싶어 펜을 들어 책을 쓰게 됐다.”

- 책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왕이 업무를 보는 정전을 가기 위해서는 월대(月臺)라고 불리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를 올라야 한다. 일반 신하들보다 높은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곳이기에 왕의 권위를 보여주는 일종의 장치다. 이 월대를 오르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그 곳에 설치된 답도(踏道)가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축적 장치였다. 답도는 경사면에 설치돼 왕 이외에는 지나갈 수 없는 길이다. 여기에 왕을 상징하는 봉황, 용 등을 새겨 놓는데 이를 통해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왕이 다니는 이 길을 신하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밟고 지나갈 수 없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일이든 하지 말라고 금지하면 더 해보고 싶고 몰래라도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답도는 이런 마음을 자연스럽게 억제하는 지혜로운 조상들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의 권위는 높이고 금지된 것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구는 자연스럽게 떨어뜨리는 훌륭한 디자인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다.”

- 주변 건축물 중 궁궐에서 쓰이고 있는 건축적 요소가 있다면.
“앞서 설명한 금지 행위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를 조상들이 합리적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현대 건축에서도 여러 건축물에서 활용하고 있는 요소다. 불교의 스님들이 거처하는 공간을 ‘요사’라고 하는데 사찰 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찾아보려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지만 대부분이 사찰을 가면 대웅전이나 첨탑 등 내부 건축물은 쉽게 찾지만 요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당 공간을 사찰에서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니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을 붙여놓거나 공지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사람들이 스님들의 개인공간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요사가 대부분 사찰 부엌 뒤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자 남성들이 들어와선 안되는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현대에 와서 이런 인식은 변했지만 이전부터 쌓여온 관습을 활용해 스님들의 개인 공간은 지키고 사람들의 출입을 자연스레 막는 궁궐에 있는 답도 설계 목적과 비슷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관습과 문화를 활용한 자연스러운 건축을 현대 건축학에서도 활용해 건축물의 목적에 맞게끔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번 저서가 이전에 저술했던 《잊혀진 문화유산 : 해자와 풍류 이야기》와 연결성을 갖고 있는가.
“이전 저서에서 즐긴다는 의미를 내포한 ‘풍류’라는 단어가 이전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 기억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를 베푼 근원에 대하여는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를 내포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킨다’고 묘사돼있다. 기록대로 풍류는 조상들이 이전부터 가져왔던 고유 신앙이었지만 시대를 거치면서 풍류를 향유하는 장소가 변화하면서 풍류가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로의 의미가 커지게 됐다. 이번에 집필한 《디자인과 철학의 공간 우리 궁궐》도 이전부터 궁궐이 가져왔던 의미를 건축과 디자인의 관점으로 해석한 내용이라 다룬 내용은 다르지만 사람들이 잊기 쉬운 전통적 요소나 의미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저술했다는 점에서 연계성이 있다고 본다.”

-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궁궐을 포함한 전통건축이 갖고 있는 매력은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이자 건축물에 있는 자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해외 건축물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요소이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요소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소중한 문화유산인 궁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또한 궁궐을 가기 전 한번쯤 읽어봤으면 한다. 평소에 별다른 생각없이 봤던 궁궐이 조금 더 특별하고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심의 시작 역할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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