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약 15억 달러(2조 1000억 원)의 연간 예산(2021~22년 기준)을 보유한 미시건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는 1855년 중서부 랜싱(Lansing)이라는 도시에 설립된 연구중심대학이다. 16대 1의 학생-교수(student-faculty ratio) 비율, 200개 이상의 학과와 프로그램에 약 5만 명의 학생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최고 연구중심대학의 연합체로 알려진 AAU(Association of American Universities) 65개 회원교 중 하나이다. ‘공립 아이비리그(Public Ivy)’로 일컬어지며 2022년 THE 세계대학순위 93위를 차지한 이 대학에서 2020년 발간한 ‘2030 발전전략(MSU 2030 Strategic Plan)’에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36페이지 분량의 이 문서는 여섯 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미시간주립대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우선순위에 따라 각 항목이 순서대로 제시되어 있는데 첫 번째는 ‘학생성공(student success)’이다. 교육기관이라는 대학의 일차적인 정체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국내 대학의 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양성’ 또는 ‘배출’과 같은 표현이 학생이 대학에서 머무는 기간이나 졸업장을 받는 그 순간에 초점을 둔 것과 달리 졸업 이후 인생에서 부단히 추구해야 하는 ‘성공’이라는 상대적으로 긴 호흡의 개념을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학의 최우선 과제는 훌륭한 인재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들 각자 인생에서의 성공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두 번째 테마인 ‘직원과 교수의 성공(staff and faculty success)’이다. 미시간주립대는 “훌륭한 교수와 직원은 우리 대학의 가장 큰 투자이자 중요한 자산이며 직원과 교수의 행복(well-being)에 같은 수준의 실질적인(similarly substantive)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학생성공을 지원하고 지역사회의 기대를 충족하며 변화하는 세상의 도전과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공허(hollow)하다”고 하면서 “그들의 경력 개발과 복지를 지원하고 탁월함과 기회가 번창할 수 있는 동급 최고의 직장 문화와 환경을 조성”하며, 나아가 “그들과 그들 가족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커리어 목표와 통합되는 과정에 지속적인 성장 및 발전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학생성공의 개념도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직원과 교수를 포함한 대학에 고용된 모든 이들의 성공을 핵심 가치로 당당하게 내세우는 이 대학의 전략보고서는 생경하다.

고등교육이라는 중대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인 대학에서 양질의 교육 콘텐츠와 서비스를 통해 인재를 길러내고 그들의 성공을 돕는 것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존재하기는 어렵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학은 가르침과 배움을 위해 탄생해 지금껏 존재해왔다. 그러나 학생성공에 못지않은 가치를 대학에 속한 모든 피고용자(employee)의 발전에 부여하는 관점은 새롭다. 앞으로 대학이 어떠한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지에 관한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대학이 진리의 탐구와 지식의 창출이라는 학문적 요소에 중점을 두었다면 현재의 대학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세계시민사회에 공헌하는 중심, 즉 ‘허브’의 기능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대학은 어떠한가? 연세대학교 오픈스마트교육센터장을 역임한 허준 교수는 그의 저서 「대학의 과거와 미래」에서 ‘플랫폼(platform) 대학’ 개념을 소개한다. 다양한 사회적 참여자가 자유롭게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장(場)으로 대학이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플랫폼 위에서는 다면적 상호작용, 상생과 동반성장이 핵심 요소이자 목적이 된다.

‘학생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교육기관’으로부터 ‘가치 창출의 플랫폼’으로 진화한 대학에서 학생, 교수, 직원, 그리고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지역사회, 정부·지자체, 기업·연구소, 학부모, 졸업생, 기부자 등이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관계와 네트워크는 본질적으로 수평적이다. 플랫폼에 참여하는 모든 참여자는 대학이라는 역동적인 공간 속에서 각자의 기대에 맞게끔 소통과 협력을 반복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치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의 종착지는 각자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지향하는 ‘성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논의의 맥락에서 ‘성공’은 영향력 획득, 지위 상승, 부의 축적과 같은 획일화된 개념이 아닌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각자가 정의하고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다. 그들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는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대학은 이들의 ‘성공’을 동등하게 배려하고 지원하며 이끌어줄 책무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한 번 떠올려보자. 학생인가, 교수인가, 직원인가, 아니면 그 밖의 어떤 존재인가? 이제 ‘이해관계자가 공유하는 개방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대학의 개념과 범위를 확장해보자. 그리고 위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찾아보자.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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