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어느 대학 총장께 들은 얘기다. 3학년과 4학년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로 꾸려진 공부 모임이 ‘유다시티(Udacity)’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강의(MOOC)를 듣고 있는데 학점을 줄 수 없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들이 듣는 강의는 총장 자신이 강조하던 인공지능 기초과목이었고, 가르치는 사람도 미국 명문대 교수였다. 심지어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사전학습을 하고 수업 시간에는 토론하는 플립 러닝을 제안했다. 디지털 사회를 맞아 전공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인공지능을 어느 정도 배워야 한다고 말해왔던 터라 칭찬했지만,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고 한다. 학습의 장에서 대학을 둘러싼 높은 장벽이 걷히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한국형 미네르바 대학이라는 ‘태재 디지털 대학’이 내년 가을에 개교한다. 원격대학으로 인가를 받았지만 학사 구조, 교육과정, 학생을 지원하는 방식은 일반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뤄진다는 것만 큰 차이다. 하지만 앞으로 일반대학에서도 온라인 학습은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면 일반대학과 원격대학의 경계는 더욱 흐릿해진다. 어느 쪽이 더 잘 가르치느냐만 남는다. 

학문 세계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콘퍼런스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코로나19와 교육 혁신’이라는 주제도 흥미로웠지만 온라인으로 열리는 것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참석했다. 미국으로 가야 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비행기 표와 호텔 예약이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독일, 스웨덴, 일본, 미국, 홍콩 대학의 교수와 연구자들이었다. 시차 때문에 밤늦게 참여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온라인 콘퍼런스는 전 세계에서 많은 학자와 학문 후속 세대가 교류하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학문 세계에서 지리적 한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시공(時空)을 초월한 학문적 교류의 흐름을 외면했다가는 뒤처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통신 기술과 에듀테크가 발전하면서 ‘개방과 연결’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민간 교육기관까지 가세하면서 학습의 장은 무한대로 펼쳐지고 있다. 학습자의 학습 양식이 다양해지고, 교육 공급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탈경계)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고용 시장에서도 대학 졸업장 못지않게 어떤 역량과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면 학점과 학위의 독점적 공급에 의존했던 대학의 우위와 경쟁력은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

자연법칙처럼 환경 변화를 무시하면 대학이 살아남기 어렵다. 빅블러 시대의 대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높은 울타리를 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면 발전은커녕 뒤처지거나 외면받는다는 것이다. 대학은 폐쇄적 성(城)이 아닌 개방적 플랫폼이 돼야 한다. 플랫폼이란 다양한 공급자와 수요자가 제한 없이 만나서 서로 소통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을 말한다. 플랫폼 대학이 되려면 우선 캠퍼스에 세워진 여러 장벽부터 해체해야 한다. 특히 학생과 교수의 미래를 하나의 틀에 가두는 ‘학과 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공 하나만 배워서는 점차 융복합화 되어가는 세상을 살기 어렵다. 마음껏 학습의 장을 펼치고 다른 학생과 교류하는 유연한 학사 체제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대학 혼자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와 개발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 학교 밖 주체와 ‘협동적 분업’을 대폭 늘려야 한다. 대상은 민간 교육기관과 기업은 물론 지역사회까지 포함한다. 캠퍼스가 다양한 주체로 북적이고, 교수와 학생이 학교 밖으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만날수록 대학의 생명력이 강해진다.

대학의 자율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율이 곧 혁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변화 의지와 역량이 있을 때 자율이 성과를 맺는다. 빅블러 시대, 대학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개방적 마인드로 변화를 선도할 것이냐, 폐쇄적 자세로 우물쭈물 따라갈 것이냐. 분명히 결말은 다를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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