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서일대 총장

김영철 서일대 총장
김영철 서일대 총장

현대사회는 복잡하게 얽힌 초-연결(hyper-connectivity) 사회다.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는 온 세상을 촘촘히 연결하는 항공 노선으로 전 세계에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어제 유럽에서 발견된 신형 전이 바이러스가 오늘이면 한국에 전파되는 실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수많은 사망자와 난민이 발생하고 있고,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올겨울을 매우 춥게 보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교란되어 유가가 치솟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이 자국 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취하는 고금리 정책으로 전 세계 금융 시장이 함께 요동치고 있다.

이렇듯 전 세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더욱이 정보 통신과 교통이 광속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어 앞으로는 더욱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시대에서 대학 교육 과제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어떠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늘어난 수명으로 삶의 전 생애에 몇 차례 새로운 일을 구하고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역량을 지닌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지금과 같은 교육 시스템이 미래 사회에도 유효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극소수만 승리하는 상대평가의 틀에서 벗어나야 하고, 단일한 표준만을 강요하는 프로그램을 혁신해 21세기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60여 년 만에 세계 최빈국의 나라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저력을 보인 국가다.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는 좁은데, 인구는 많으며 남북한 분단 상황에서 안보에도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는 현실에서 이룩한 대단한 성과다. 이처럼 압축 성장하는 데 치열한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이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폐해도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에서 대학은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모집하고, 교육부나 언론은 각종 지표로 대학의 순위를 발표하고, 대학은 상대평가로 학생들 성적을 부여하여, 학생들은 성적을 꼬리표로 달고 사회에 진출한다. 모든 사람들은 우열이 나눠지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서로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수직 시스템에서는 극소수만 승리하고 나머지 사람들 다수는 패배자가 된다. 그 결과 개인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최하위권이고,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산업사회에 본격화된 이런 극단적인 줄 세우기, 경쟁 만능의 교육시스템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갔다. 이제 모두가 행복하고, 낙오자가 없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급변하는 4차 산업사회, 100세 시대에 잘 적응하는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한국의 교육 제도는 여전히 중등교육까지 객관식 문제 풀이 방식의 교육이 기본이다. 대학도 NCS(국가 직무 능력 표준, 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같이 정해진 기준에 맞춘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학업성취 결과를 기준으로 일렬로 줄 세우는 한국 중등교육의 폐단은 너무나 심각하다. 특히 객관식 문제 풀이의 정답을 인터넷에서 바로 찾을 수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의미가 없다. 대학의 표준화 교육 역시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산업사회에는 필요한 방식이었을 수는 있지만, 오늘 정한 기준이 내일이면 바뀌기도 하는 현재의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는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한 가지 기준에만 맞추는 기존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다면적인 차원에서 현상을 인식할 줄 아는 능력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육을 왜 하는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한국전쟁으로 많은 것이 파괴돼 195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우리나라는 1960년대 근대화를 위한 개발을 본격 추진하면서, 이 시절의 국민교육헌장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고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닫고 국가 건설에 참여하는” 국가 발전의 방략에 부응해 개인을 헌신하는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교육이 국가 발전을 위한 수단이 된 셈이었다. 이를 위해 직장은 개인에게 평생직장을 제공해 개인의 경제적 삶을 영위케 하고 개인은 직장의 발전을 위해 그 밖의 개인적인 사생활의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것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고 국가 건설에 참여하는 일이며 개인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국가의 번영을 위해 이바지할 인재’를 키우고자 하는 교육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이나 국익을 우선하는 인식이 근대화를 이루고 선진 국가 대열에 올라선 오늘날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21세기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빠른 상황에서 직장은 평생직장을 보장해 주지 못하므로 개인은 한 직장에만 의지할 수 없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 더욱이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 평균 2~3개 이상의 직장이나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에 따라 15여 년 배운 학업의 성과로는 수많은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사라지는 시대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이제는 이와 같이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미래는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창의적 능력이 필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능력이란 예술처럼 세상을 낯설게 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설게 보려면 관점을 바꿔야 한다. 관점을 바꾸려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동일한 것을 한 가지 기준으로만 인식하는 관행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교육은 바로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돼야 한다. 학생들이 유연한 사고를 함양할 수 있도록 가르치려면 학교 교육이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으려면 동일한 것을 반복하지 않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채로운 내용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계속 진화해야 한다. 이런 학교생활을 경험한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끊임없이 창의적 방식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찾으면서 자기 삶을 진화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대학의 수업은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 근본적인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학교생활, 주입식 수업, 출석, 시험, 상대적 성적이 전부인 대학에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19세기는 노동이 가치를 창출했고, 20세기는 지식이 가치를 형성한 시대다. 초-연결(hyper-connectivity) 초-지능(hyper-intelligence),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으로 대표되는 21세기는 창의가 가치를 창출한다. 이런 시대는 모두가 승리하는 평등사회, 모두의 가치가 인정되는 절대평가, 다양한 기준과 가치를 허용하고, 재미와 행복이 가득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줄 아는 창의 교육을 필요로 한다. 교육을 통해 미래세대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과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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