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교육은 두 가지 상반된 목적을 가지고 진행된다.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과정이고, 사회적 관점에서는 사회적 발전과 안정을 위한 수단이다. 이 둘 사이를 좁히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국가가 교육을 주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관점이 중심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단기간 고도성장을 한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심지어 요즘 강조하는 ‘창의성, 인문학적 상상력, 개성’도 모두 그 저변에는 이를 통해 산업을 도약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렇게 길러진 ‘인적자원’ 덕분에 우리는 세계 역사에 다시 없을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아직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가들과 단순하게 비교한다면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국토도 좁고 자연 자원이 부족하며, 경제적 기반도 없는 국가에서 ‘인적자원’ 양성은 거의 유일한 카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앞으로 언제까지 교육을 이처럼 사회 발전의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것인지, 그것이 정말 타당하고 효율적일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GDP 기준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을 오르내리면서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많이 변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국가나 회사의 발전에 자신의 삶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만족’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흥청망청할 거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기성세대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면, 젊은이들은 좋은 휴식을 위해 일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나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유네스코 산하 기관에서 발행하는 ‘2022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성적은 전 세계 59위다. 아쉽게도 모든 세대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모르면 사회적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행복하지 않을 것인데 왜 아이를 낳겠는가?

남의 나라 상황을 간단히 단정적으로 말해서 미안하지만,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야기 해보자. 우리나라보다 먼저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 사회가 최근 무기력해져 가는 모습의 원인을 젊은이들의 생활 방식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두 가지 상반된 원인 분석이 가능한데, 첫 번째는 젊은 세대가 윗세대에 비해 근성이 약해졌다는 분석이고, 두 번째는 경제성장의 적절한 시기에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첫 번째가 주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룬 사회에서 궁핍 시대의 근성을 계속 유지하라고 하는 것은 실현불가능한 주장에 가깝다. 그래서 필자는 두 번째를 주장하는데,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국가의 발전’에 너의 삶을 맞춰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젊은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한 인간이 전 생애에 걸쳐 추구해야 할 ‘개인적 행복’은 금기시되고, ‘국가 발전’이라는 당위성만이 계속되는 사회에 부응할 수 없어 회피를 선택하는 것이다. 굶을 걱정은 없지만 가족 속에서도, 또래 집단 속에서도, 지역사회 속에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없다면 무슨 힘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겠는가?(일본의 행복지수 순위는 54위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경제적 기반도 탄탄하지 못하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오히려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해 지금쯤은 사회 전반에 ‘행복 추구’라는 씨앗을 뿌려야 한다. 행복지수 순위 10위 안에 드는 국가들의 대부분이 북유럽 국가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행복을 단순히 쾌락과 연결시킨다면 당신은 ‘전형적인 꼰대’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감을 느끼려면 ‘희망, 사랑, 일’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무엇보다도 행복 개념을 시급히 도입해야 할 부분은 ‘교육’이다. 다음 세대라도 좀 더 체계적으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꿔 나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찰나적 쾌감으로 진정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지 성찰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내 가족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내 지역사회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토론하게 해야 한다. 자신이 관심 있고, 잘하는 것을 발견해가는 기쁨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정해진 공간, 정해진 기간, 정해진 교재를 가지고 계속 문제를 풀고, 암기하는 방식으로 몇 명이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나 자신과 내 주변을 통해 얻는 행복감이 안정감으로 이어지고, 이 바탕 위에서 다양하면서도 과감한 시도들이 이뤄질 때 창의성은 발현된다. 최근 들어 전세계 국가들이 추구하는 이 ‘창의성 교육’은 ‘자유로운 호기심 표출, 다양성 존중, 개방적 환경’으로부터 나온다. 학교 현장에서 이런 것들이 충족된다면 아이들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결국 행복 교육은 ‘창의성 교육’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최근에 교육부에서 ‘맞춤 교육’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아직은 설익은 인공지능을 오용해 아이들을 다시 틀에 가두지 말고, 아이들 각자가 원하고 잘하는 것을 길러주는 ‘효율적인 맞춤 교육’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졸업 후에는 그것이 지역과 사회로 이어지고 그것들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국가가 성장하는 진정한 선진국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 성장과 국가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필자는 ‘놀기 위해서 일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방식을 지지하며, 지금부터 우리 사회가 모두 힘을 합쳐 그 뒷세대들은 더 멋지게 놀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방식으로 ‘행복 교육 혁신’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