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2000년 하버드 대학 행정대학원의 랜트 프리쳇은 ‘교육투자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Where has all the education gone)?’라는 논문에서 교육을 통한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국가의 1인당 생산 증가, 즉 경제성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바꿔 말하면 교육투자 효과가 국가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교육자 입장에서 불문율과 같은 ‘교육은 국가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는 경구가 적용되는 나라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정확한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리쳇의 분석이 흥미로운 것은 그 이유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프리쳇에 따르면 △교육이 개인적으로는 이득이 되지만, 국가적으로는 생산적이지 못한 경우 △고학력 인적자원이 필요한 분야의 수요가 존재하지 않아서 교육투자가 큰 효과를 볼 수 없는 경우 △교육의 질이 높지 않아 학교를 오래 다닌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적자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세 가지 이유다. 프리쳇은 1990년대 데이터를 활용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그렇다면 20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 최신 데이터로 다시 분석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나라는 여전히 교육투자가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 국가일까? 이 질문들을 약간 바꾸면 ‘우리나라 대학은 경제성장에 중요할까?’라는 질문과 ‘어떻게 대학을 혁신해야 경제성장에 기여할까?’라는 질문이 된다.

대학이 경제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항목은 연구를 통해 생산되는 지식과 교육을 통해 생산되는 인적 자본이다. 대학의 중요성을 이 두 가지 측면에서 경제성장 이론과 함께 살펴보자. 폴 로모와 로버트 루카스 두 학자는 1986년 1988년, 각각의 논문을 통해 연구 개발과 지식 전파를 통한 지식의 축적과, 교육과 직무 과정을 통한 인적 자본의 축적이 국가별로 격차가 있고 이로 인한 기술 격차가 경제성장의 차이를 만든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지식과 인적 자본을 충분히 보유한 국가는 생산성 증가를 통해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들이 담고 있는 정책적 함의는 먼저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의 당위성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지식의 생산과 전파, 인적자원의 생산과 전승은 경제 주체 중 교육기관, 특히 대학이 담당하는 기능이다. 대학의 기능을 강화해서 지식과 인적자원을 증가시키고, 지식과 인적자원이 ‘연결’을 통해 사회 전반으로 잘 확산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경제성장에 중요하므로 대학에 대한 지원은 경제정책에서 우선 순위에 놓여야 한다. 

조세프 슘페터가 1940년대에 언급했던 경쟁을 통한 ‘창조적 파괴’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국가는 높은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기온과 호위트는 양질의 대학 교육을 받아 지식과 교양 수준이 높은 졸업생 수가 많아야 그 국가의 생산함수가 좋은 모양, 즉 같은 생산요소 투입에 더 높은 생산이 창출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연구와 기술 축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지식이 경제성장의 핵심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인적 자본도 지식의 총량으로 변환할 수 있으며 국가의 지식 총량이 많으면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지식은 내부에서만 공유되는 특징이 있어 지식 총량의 확대에 한계가 있지만 일반에게 공개되는 지식은 이론적으로는 인구 수만큼 지식의 총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 같은 지식의 총량 증가에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프리쳇이 분석한 교육투자가 경제성장과 연결되지 않는 국가들은 교육기관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지식의 생산과 확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들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대학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필립 아기온이 대학이 연구 개발 역량과 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면, 지식 총량 증가에 기업보다 더 큰 기여를 할 수도 있다고 실증했다.

대학은 지식과 사상을 생산할 뿐 아니라 이를 매개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생산한 지식은 대부분 출판과 공개 발표 등을 통해 일반에게 조건 없이 공개되므로 비배제적이며, 기업이 생산한 지식보다 훨씬 쉽게 확산될 수 있다. 대학은 도시보다 훨씬 원활하게 지식의 교류가 가능한 플랫폼을 제공해 새로운 지식 창출을 촉진할 수도 있다. 교수들은 전공 분야의 전문가로 해외의 가치 있는 지식을 유치해서 국가의 지식 총량을 늘리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정부의 대학에 대한 지원 당위성을 강조할 수 있는 근거들이다. 

이런 대학의 역할을 통해 지식의 총량이 증가할 때 생산성 향상이라는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 경제 주체가 기업이라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동시에 대학의 발전과 확대는 양질의 대학 교육을 받아 지식 수준이 높은 졸업생 수가 많아지는 데 기여하지만 학생 개인에게는 투자수익률 측면에서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은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할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의 격랑 속에서 노동이 줄어드는 미래에 학습 자체가 인간에게 존재 의미를 줄 것이라는 예측은 대학의 중요성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대학 교육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늘리고 잠재력을 키우며, 주체적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대학의 중요성을 지역 사회와 지역경제를 유지하는 핵심 구조라는 지역 분권적 관점에서 답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답변을 경제성장과 1인당 생산성 향상이라는 계량 가능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대학은 중요한가?’에 대한 답변은 조건문을 달고 있다. 대학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지식 창출 능력과 지식 확산 능력을 갖고 있다면, 대학은 경제성장에 어느 주체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대학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대학은 정부와 기업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 주체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담당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근거다.

※이 글은 2020년에 출판된 저자의 저서 《대학의 과거와 미래》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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