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2023년 1월, 대입(大入)의 시간이다.

‘중국판 수능’으로 일컬어지는 가오카오(GAOKAO, 高考)는 중국의 표준 대입 국가시험이다. 수능이 시행된 1994년보다 42년 빠른 1952년 도입됐는데 단일 국가에서 치러지는 시험 중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매년 1000만 명 이상 응시한다. 당연한 말로 들리겠지만 가오카오는 중국인 학생이 중국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 대학에서 ‘가오카오 전형’을 만든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특정 국가의 대학입학 시험이 초국가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 학생의 적격성과 능력을 가려내는 이른바 ‘일회성 필터링(one-time filtering)’ 방식은 제도화된 시험을 거쳐 사회적 지위의 상승이 가능했던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중‧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도 대입전형에 표준화된 시험을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의 SAT/ACT, 영국의 A-Level, 홍콩의 HKDSE, 뉴질랜드의 NCEA, 호주의 ATAR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3국의 대입고사만큼 치열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시험 당일 경찰차가 수험생을 실어나르고, 직장인의 출근 시간을 조정하고, 비행기의 이착륙 시간까지 바꾸는 사례를 다른 국가에서 찾기는 어렵다.

SAT는 흔히 ‘미국판 수능’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폭넓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가가 아닌 민간 비영리 조직인 칼리지 보드(College Board)에서 시행하는 시험이고 여러 번 응시해 가장 좋은 점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능시험과는 다르다. 게다가 코로나 기간 중 미국의 많은 대학이 SAT를 필수로 요구하지 않는(test-optional)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차이는 미국을 제외한 85개 국가 약 500개 대학에서도 이를 대입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리지 보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 연세대, 카이스트 등 총 7개 대학이 SAT를 입시에 반영하고 있다. 집계되지 않은 대학까지 합치면 아마 이보다 더 많은 국내 대학이 SAT를 활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능시험은 어떨까. 물론 전술한 것과 같이 주관 기관, 평가 체계, 활용 방식, 응시 범위 등에 있어 수능과 SAT는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비록 SAT를 본떠서 수능을 만들기는 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SAT도 변했고 수능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작년부터 시행된 문·이과 통합 수능에 응시한 학생이 1994년 수능 문제를 본다면, 두 개의 시험지를 똑같이 ‘수능’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의문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변한 것은 문제 유형, 응시자 수와 프로파일, 국내 대학입시에서의 비중과 활용 방법만이 아니다. 외국대학이 수능을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 대학 진학은 어디까지나 개인 선택의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했으며 따라서 제도적 틀 안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과거 일부 고등학교에서 유학반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되었던 경향이 있다. 미국의 ‘HYPS’와 같은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은 칭송을 받았으나 그렇지 못한 학생은 ‘국내 대학에 들어갈 실력이 안 돼 떠난 도피 유학’,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편견을 감내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더 우수한 대학교육 환경을 제공한다고 인식되는 국가의 대학에서 수능 성적으로 학생을 유치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해외 유학의 필요조건 또는 진입장벽이 상당 부분 해소되거나 심지어는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단 영미권 대학에서만 나타나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와세다 대학도 수능 성적을 받아주고 있다. 한국인 학생의 지원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음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수능 유학’은 유학 대중화(massification)의 신호탄이다.

해외 고등교육 기관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은 2011년 약 26만 명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뒤에 지난해는 약 15만 명으로 감소했는데, 이 중 약 50%가 학부 과정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수능 응시자가 약 71만 명에서 49만 명으로 급락한 것으로 고려하면, 과연 큰 견지에서 유학 수요가 감소한 것인지는 면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특히 코로나19가 해외 유학 패턴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것을 고려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해외 유학 수요가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있다. 마치 지난 2년 반 이상 억눌렸던 해외여행 욕구가 분출되며 인천공항이 붐비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 국내 고등교육의 질 그리고 이에 관한 대중의 차가워진 시선은 이를 가속한다.

수능으로 한국인 학생을 유치하는 해외 대학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국내 대학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까? 적절한 대응 전략은 마련했을까? 아니면 소수라고 외면할까? 어차피 유학 갈 사람은 갈 것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을까? 대학 절반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예측까지 나오는 상황, 수험생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무한 경쟁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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