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혁신의 시대’다. 개인이나 조직의 생존을 위해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멈추면 죽고 움직이면 사는 이치다. 규제 일변도 시대에 대학은 정부가 정해준 테두리에서 혁신을 추진해왔다. 혁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형식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탈 규제’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대학은 새로운 환경에 발맞춰 혁신에 시동을 걸고 있다. 그러나 대학혁신은 난제 중의 난제다. 정부의 규제 철폐가 됐다고 해서 대학이 마냥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규제 철폐는 혁신의 ‘마중물’이긴 하지만 혁신을 이끄는 ‘동력’은 따로 있다. 바로 혁신 주체인 대학 구성원들의 응집된 힘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혁신의 동력을 살리기가 어렵다. 혁신은 “동물의 가죽을 벗겨내는 만큼 고통스러운 길”이다. 대학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고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길이다. 이로 인해 구성원들은 혁신을 회피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혁신 과정은 초기부터 지지부진하다. 구성원 중 일부는 ‘미래 이익’보다 당장 ‘지금 손해’에 집착해 혁신에 어깃장을 놓는 행동을 버젓이 일삼는다. 혁신의 ‘수혜자’가 ‘방해자’가 되는 꼴이다. 대학으로서는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없다. 

부산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명대 총장으로 있는 전호환 총장은 역저 《와세다대학의 개혁》 서문에서 “연구실은 작은 왕국이고, 교수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영주다. 이러한 교수들을 통제하거나 연구실 외부의 법칙을 적용할 수단과 권한이 총장에게는 없다. 회의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장한 교수들에게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게 대학교수는 ‘왕국의 영주’였다. 총장에게는 교수를 통제할 어떤 수단도 없다. 이런 교수들을 데리고 혁신을 추진해야 하는 총장의 고충이 이해된다. ‘이게 되겠어’ 하는 회의주의와 ‘나는 빼놓고’ 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대학 사회다. ‘철밥통’이기에 가능한 얘기들이다. 비록 전 총장이 국립대 시절 교수 사회를 빗댄 말이지만 사립대도 별반 다를 것 없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뉴스 앤 월드 리포트(U. S. News & World Report)지가 8년 연속 미국 최우수 혁신대학으로 선정한 애리조나주립대학(Arizona State University)의 마이클 크로우(Michael Crow) 총장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크로우 총장은 대학 혁신의 첫걸음은 구성원들에게 ‘혁신 마인드를 장착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해당 대학의 내재적 논리에 따라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구성원의 혁신 마인드 장착은 혁신 추진의 필수요소가 되는 것이다. 마이클 총장의 논리라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혁신하기에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최근 정부 재정지원대학 선정에서 탈락한 A대학 사례는 대학에서 혁신이 왜 어려운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A대학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 우수대학이었다. 그러나 대학 구성원 간에 분열이 생기고 ‘집단 이기주의’라는 대학의 고질적 문제가 노출되면서 대학은 순식간에 문제대학으로 전락했다. 

혁신은 고사하고 ‘제 몫 찾기’에 급급한 구성원들만 차고 넘쳤다. 총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얘기는 무시됐다. 대부분 구성원은 방관자 위치에 있었다. 급기야 이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사업에서 탈락하는 처지가 됐다. 혁신 동력은커녕 신입생 충원율도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대학에서 ‘혁신’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는다. 구성원들 사이에 위기 의식이 있긴 했으나 구체적 혁신안이 나오면 제각각의 입장만 내세우다 ‘허사’가 돼버리고 말았다. ‘혁신’은커녕 ‘제 몫 챙기기’에만 열중한 결과다. 

이런 기가 막힌 얘기가 이 대학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대학 전반에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해 있다. 혁신을 남의 일로 치부하는 구성원들이 버젓이 행세하는 한 ‘혁신 마인드 체화’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대학에 편만해 있는 ‘제 몫 사수를 위한 집단이기주의’ 행태는 혁신의 ‘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대학혁신은 ‘기득권 포기’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철밥통도 깨져야 하고 학과 간의 높은 장벽도 허물어져야 한다.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공식도 깨져야 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데 ‘나만 말고’라는 철옹성 같은 저항을 일삼는다면 누가 그들을 지성인이라고 할까?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