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 명언의 산 증인, 성공회대서 사회학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루지 못했던 주제 바탕으로 힘 닿을 때까지 글 써나갈 것”
겸손한 마음으로 사회학 분야 발전 위해 계속 노력하고파

이상숙 성공회대 사회학 박사. (사진=한명섭 기자)
이상숙 성공회대 사회학 박사.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한울 기자] 지난 16일에 열린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유난히 머리가 하얗게 센 졸업생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학부 250명, 대학원 98명 등 총 348명의 졸업생이 배출된 학위 수여식에서 1931년생으로 올해 92세를 맞은 이상숙 씨는 당당하게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 사회학 석사 과정으로 성공회대에 입학한 이후 5년 만의 일이다.

완구제조회사를 차려 30여 년간 기업을 운영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배움의 길을 선택해 국내 최고령 박사학위자가 된 이상숙 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언의 산 증인이다. 박사학위 취득에서 멈추지 않고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책을 쓰고 싶다는 그를 지난 20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적지 않은 나이에 사회학 공부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여성경제인협회장 재직 시절, 협회에서 정기적으로 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초청된 강사 중 사회학 전공 교수가 여럿 있어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21세기로 접어들기 전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교수들이 말하는 사회학과 사회 변화 예측 등에 큰 흥미를 느꼈다. 기회가 있으면 사회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순간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후 일한 지 60년이 넘어가자 문득 일을 그만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한 김에 이전부터 관심있던 사회학 분야를 깊게 탐구해보고 싶었다. 사회학 공부를 앞두고 적지 않은 나이에 걱정이 앞설 법도 했지만 가족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 새로운 공부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는 관련 분야 공부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학문을 탐구한다는 설렘이 컸다.”

-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수예 교사로 일한 경험을 포함해 사업, 각종 협회장, 총동문회장 등 다양한 일을 해왔고 대통령 표창, 석탑산업훈장도 수상한 적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저에 대한 자부심과 성공하기 위한 나름의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첫 사회학 강의 시간에서 교수가 제가 가졌던 생각과 정반대의 생각으로 강의하는 것을 목격했다.

강의가 끝난 이후 생각이 다른 점에 대해 정중하게 물어봤어야 했는데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교수의 말이 틀렸다고 즉각 항의했다. 그 순간 강의실 분위기가 단번에 얼어붙었다. 해당 발언을 한 교수도 당황해 이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첫날부터 성급한 발언으로 강의 분위기를 흐렸다고 생각해 수업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이후 교수와의 대화를 갖고 교수는 제가 가졌던 생각을 차분히 듣고 경솔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다르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정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에 성급하게 틀렸다고 외쳤던 과거의 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를 통해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는 제가 가졌던 고정관념과 자신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꾸기 힘들었지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학위 과정 내내 정진하고 노력했다. 더불어 적지 않은 나이에도 배울 것이 하나라도 더 생긴다는 기쁨도 있었기에 과감히 자부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난 16일에 열린 성공회대 일반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상숙 박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지난 16일에 열린 성공회대 일반대학원 학위수여식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상숙 박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 국내 최고령 박사 학위 보유자가 됐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사회학 공부를 하면서 나서는 습관을 고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우선 존중하는 사람을 항상 부러워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도 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겸손한 사람들은 스스로 높이지 않아도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품격있고 겸손한 모습으로 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사회학 공부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사회학도의 눈으로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싶다.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해서 교수 채용을 바라지는 않는다.(웃음) 박사학위는 공부를 하다보니 생긴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목표가 있다면 책을 한 권 쓰고 싶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썼던 논문에서 내용이 많아 차마 다루지 못했던 주제가 있다. 논문을 심사했던 지도 교수와 다른 교수들도 해당 주제를 기반으로 새로운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런 권유에 해당 주제에 대한 책 집필을 시작했으며 힘닿을 때까지 글을 써나갈 생각이다.”

-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학자들, 그리고 만학도가 돼 공부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사회학은 사회에 속해 있는 인간의 삶과 행동을 다룬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의 변화 방향을 예측하고 파악하는 멋진 학문이다. 다만 최근 사회의 변화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어 주변에서 기존 전통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하지만 사회학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개척하는 미래지향 학문이다. 그러기에 사회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젊은 학도들이 기존 질서나 사회적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 있게 사회학 연구를 진행했으면 한다. 미래를 개척하며 사회학의 눈으로 현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내 해결 방안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정년이라고,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포기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노인들이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학위 과정 취득이 아니어도 좋다.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라는 마음으로 임하면 어느 순간 공부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데까지 항상 도전하고 또 도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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