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학교 근처 소재지에 필자가 자주 이용하는 오래된 식당이 있다.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내는 사장님의 음식 솜씨는 언제나 필자와 동료들의 입을 행복하게 해주며, 특히 직접 담근 묵은지는 그 맛이 가히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그 가게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맛있는 음식이겠지만 그 못지않게 사장님의 친절한 응대도 한몫하고 있다. 눈짐작으로도 세어봐도 나이가 적잖아 보이는 사장님은 힘든 주방일과 접객업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대해 주신다.

하루는 필자와 실용음악 관련 학과 동료 교수 몇몇이 식사하면서 트로트 음악을 중심으로 최근 대중음악 시장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사장님이 불쑥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 끼어드셨다. 사장님은 자신이 이번 주에 대전에서 열리는 가수 임영웅 콘서트에 가기 위해 어렵사리 입장권을 구했으며, 자신이 임영웅 팬클럽의 회원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본인이 임영웅의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뒤따랐다. 그날 사장님의 들뜬 표정과 함께, 임영웅 콘서트 관람이 최근에만 세 번째라는 자랑 섞인 설명은 필자가 가지고 있던 사장님에 대한 선입견을 한순간에 격침시켰다.

요즘 50대 이상의 부모에게 자녀들이 임영웅 콘서트 입장권을 선물하기 위해 소위 ‘티켓팅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예매사이트 오픈과 동시에 입장권이 매진되어 웃돈을 주고 입장권을 사는 효자, 효녀들이 많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팔순이 넘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데 두 분 모두 임영웅의 팬이다. 지금껏 어느 가수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팬심을 가진 가수가 임영웅이다.

3월 8일 기준으로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 톱100 차트 1위에서 20위까지에는 임영웅의 노래 7곡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듣는 음악 20곡 가운데 7곡이 임영웅의 노래라는 얘기다.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는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전체 조회수가 8000만을 넘어섰고, TV 프로그램에서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5000만 조회수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3월 1일에 개봉한 임영웅의 전국투어콘서트 다큐멘터리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개봉 첫 주에만 15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임영웅의 팬들은 전 연령층에 분포해 있지만, 장년과 노년층의 비율이 특히 높다. 5·60대는 물론이고 80대까지 임영웅의 팬이다. 지금의 장년과 노년은 과거의 장노년과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미디어를 접하고 대중음악을 향유했다. 그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장노년이 된 지금도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 또 이들은 BTS의 10대, 20대 팬들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어 그것을 무기로 해 자신들의 의도를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다. 임영웅이 등장하는 광고의 파급력은 엄청나서 해당 상품의 매출을 급상승시키고 있으며, 임영웅의 팬들이 태풍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9억 원에 가까운 성금을 기탁한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젊은 층 인구수가 가파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미 대학 입학 지원자보다 대학 입학정원이 더 많은, 비정상적 대학 인구 양상은 이미 시작됐다. 전국 대학교는 부족한 신입생을 충원하기 위해 절절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라 대학 전체 정원이 감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장노년들이 환호할 수 있는 또 다른 임영웅을 대학 캠퍼스 무대에 데뷔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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