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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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상담할 때 필자는 공평(公平)과 공정(公正)이라는 단어를 잊으라고 한다. 이 두 단어의 의미는 좋지만 사람이 만들어 낸 수사(修辭)에 불과하므로 자신에게 항상 적용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공평과 공정은 자본에 의해 기준이 정해진다. 또한 민주사회이므로 다수결에 의해 소수의 공평과 공정은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

생존에 필요한 욕구가 사람마다 다르기에 원하는 공평과 공정의 기준이 다르다. 즉, 개인의 프레임에 따라 다른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다. 공평과 공정에 기대하고 싶다면 자신이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자신을 입증해야 기울어진 공평과 공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신약전서(누가복음 19:11~27)에는 공평과 공정의 사례가 될만한 주인과 종의 이야기가 나온다. 귀인이기도 한 주인은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떠나면서 은화 열 므나를 열 명의 종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고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했다. 그리고 왕위를 받아서 돌아온 후에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했는지를 알고자 종들을 불러서 보고하게 했다. 종들은 자신이 장사해 남긴 이익에 대해 보고했다. 그들이 어떻게 무슨 장사를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장사 결과 남긴 이익에 대한 기록만 있다.

첫 번째 보고한 종은 한 므나의 은화로 장사해 열 므나를 남겼다. 주인은 그 종을 칭찬하며 열 므나의 이익을 얻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열 고을을 다스릴 권한을 주었다. 주인이 시킨 작은 일에 충성했으므로 더 큰 것도 할 수 있다는 주인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두 번째 종은 한 므나의 은화로 장사해 다섯 므나를 남겼다. 이 종 역시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다. 이 두 종은 자신이 주인의 명대로 장사해 이익을 남겼기에 칭찬과 권세를 받았다. 자기에게 맡겨진 은화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다른 한 종이 와서 보고했다. 이 종은 주인을 엄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받은 은화 한 므나를 수건으로 싸 두었다고 반납하면서 자신이 장사하지 않은 이유를 주인이 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주인이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사람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이 종의 말을 듣자마자 주인은 심판을 내렸다. 종의 말에 대한 설명이나 변명이 아니었다. 자신의 지시에 반기를 든 종에 대한 냉혹한 결정이었다. 이미 주인으로부터 받았던 은화 한 므나도 빼앗아 열 므나를 가진 종에게 주었다.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가진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을 하면서.

이 비유에서 귀인은 열 명의 종에게 공평하게 은화 한 므나씩 주었다. 역량을 무시했지만 공평한 처사였다. 하지만 결산할 때는 종들이 남긴 이익의 분량대로 처리했다. 종들은 자신을 입증한 결과대로 주인으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았다. 다만 노력하지 않고 핑계를 대고 불평한 종에게는 냉혹한 심판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에게 이미 주었던 것까지도 빼앗겼고 많이 가진 자는 없는 자의 것까지 받는 혜택을 받았다. 이것이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공정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이 존재가치를 입증한다면 그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대가도 인센티브로 충분히 받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공평과 공정은 세상에 없다. 세상은 당신이 학교에서 배운 공평과 공정 이상의 다른 공평과 공정이 적용된다. 정치인들이 하는 결정이나 국가의 정책을 보라.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가? 기업을 보라. 직원에게 공정하게 대하는가? 국제 정세를 보라. 서로가 공평하고 공정하게 외교정책을 시행하는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공평과 공정의 논리가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들이 속한 단체가 살아가기 위한 행동을 할 뿐이다. 교과서적인 공평과 공정은 개인의 생존 경쟁과 정책 싸움에서 의미가 없다. 기업 간 혹은 국가 간의 전쟁에서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삶의 전쟁터에 서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교과서적인 공평과 공정은 매우 휴머니즘적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의 휴머니즘은 자신의 목숨과 바꿔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불평하지 마라. 당신이 불평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불평할 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찾아라. 그렇게 찾은 기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라. 그렇지 않으면 주인에게서 받은 므나를 수건에 싸서 간직한 종처럼 이미 가진 것까지 빼앗길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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