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택 계명문화대 교수

조규택 계명문화대 교수
조규택 계명문화대 교수

며칠 전 진해 군항제(軍港祭)에 이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를 찾았다. 우리는 진해의 벚꽃 축제를 군항제라 부른다. 단순한 꽃놀이가 아닌 군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군항제는 4년 만에 열렸고, 많은 인파가 모였다. 특별히 블랙이글스의 공중 시범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제트 전투기에서 내뿜은 굉음과 힘찬 기동은 우리 공군의 위용을 더 높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국산 T-50 전투기 8대가 20여 분간 혼연일체로 군항 위에서 펼친 공연은 군항제의 압권이었다. 단순한 벚꽃 축제를 넘어, 해군의 모항인 진해 군항제는 우리 군의 대국민 홍보의 전진 기지였다. 해군은 11부두에서 기뢰부설함인 원산함을 시민들에게 개방했으며, 해군‧해병대와 관련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육군도 6‧25 전쟁 전사자 발굴 현황을 전시했다. 유해의 신원확인을 포함해, 관련된 여러 유품을 전시해 국가가 전사자들을 끝까지 찾는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번 군항제는 육해공군이 협력‧합동해서 국민의 군대임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축제였다.

벚꽃은 짧은 기간 만개했다가 화사한 모습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압록강 대장으로 유명한 6‧25 참전용사 고(故) 이대용(최후의 주월 공사) 장군은 군인의 정체성을 “전쟁 때는 무구(無垢)의 정신으로 굵고 짧은 삶을 값있게 살다가 화사한 꽃이 떨어지듯이 가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는 6‧25 전쟁 같은 비극이 이 땅에서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최선으로 국방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필승의 군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임진년(1592)에 왜군의 주력이 포진한 부산포를 공격했던 이충무공이 선조의 거듭된 재촉에도 신중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부산의 앞바다는 곧장 외해로 이어져 파도가 높아 함대의 전술 운용이 어렵다는 것을 공께선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진해의 해군작전사령부를 부산으로 옮긴 것은 대양해군의 전진 기지로 미래를 내다본 해군의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다. 넓은 바다를 앞에 두고 조성된 기지는 대형 원자력 추진 항모인 니미츠함(CVN-68)과 이지스 구축함 3척이 계류했음에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는 난생처음 미 항모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비행갑판이 아닌 격납고 2곳 정도만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항모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고, 그 크기와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형 독도함의 10배 정도는 돼 보였다. 승조원들이 6천여명이라는데, 그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었다. 고급 장교부터 수병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거나 외출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우리를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주었던 미국의 참전과 원조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바다에서의 한미 해군이 펼치는 작전을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의 한반도 정세나 갈등은 해군력이 중심이 되는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한미 해군엔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라는 걸출한 영웅과 태평양 전쟁의 영웅이자 미 해군 최초의 오성(五星) 제독인 체스터 니미츠가 있다. 이 두 분은 시대를 달리하지만, 각자 최고의 해상 지휘관으로서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였을 때 승리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나아가 부하들의 조언과 권고를 경청‧수용했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 한미 동맹 70주년이라는 역사적 해를 맞아 양국 해군은 어느 때보다 고강도 연합 해상 훈련으로 더욱 뭉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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