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정책기획팀 부장 겸 감사실 부장

유신열 고려대 정책기획팀 부장 겸 감사실 부장
유신열 고려대 정책기획팀 부장 겸 감사실 부장

원스톱 서비스 시스템(one stop service system)은 ‘민원인이 특정 민원과 관련된 여러 서비스를 한 행정기관에서 한꺼번에 제공받는 체제’를 말한다. 특정 투자자에게 투자 상담에서부터 공장 설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한 곳에서 도와주는 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부터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를 위해 원스톱 서비스 체제 구축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가 더 늘어나 ‘원 모어 스톱(one more stop) 체제’라는 혹평을 들었다. 대학도 원스톱 서비스 시스템 조직을 갖추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만 민원을 특정한 부서에 맡기는 방식으로 조직을 구축하고 있어 이 역시 ‘원 모어 스톱’이 되는 경우가 많다.

원스톱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스톱 서비스 ‘전담부서’를 만들려는 시도보다는 원스톱 서비스 ‘공간’ 관점으로 전환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민원 중심으로 한 공간에 필요 부서의 구성원이 모이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같은 부서는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자 하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한 사무실 공간에 재정팀, 관리팀, 학사팀 등의 구성원이 마주 앉아 근무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구성원의 배치 또한 민원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부서의 공간 개념은 행정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해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강 신청 시스템을 관리하는 IT 부서 담당자가 학사팀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고 회계부서 담당자가 자금 흐름이 많은 다른 부서의 현장에서 파견돼 직접 업무를 하는 것도 좋을 수 있다. 이처럼 구성원 각자는 서로의 근무지로 파고들어 행정이 한 공간에서 교차 융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공간이 공유사무실이 되고 민원 현장이 곧 사무실이 될 것이다.

공간의 혁신은 학문의 영역에서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교수연구실을 전공이나 단과대학을 넘어 배치하는 일도 학문의 융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분과 학문 체계로 발전해 온 대학의 뿌리 깊은 역사를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다양한 부서나 전공자가 모여 있는 융합 공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여러 공간에 분산된 팀 또는 학과 구성원을 한 팀으로서 어떻게 역량을 강화할 것인지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거버넌스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민원 업무는 특정한 부서가 전담해서 해결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특정한 부서나 구성원 개인의 능력 보유 여부를 떠나서 분업화된 관료조직의 기본적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원스톱 서비스를 위한 ‘전담부서’를 만드는 일은 이미 실패가 예정된 철 지난 정책일 가능성이 크다. 조직 ‘전체’의 유기적 역량이 필요한 업무를 조직의 한 ‘부분’이 전담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에서도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대학혁신지원사업에서 성과관리 전담 조직을, 산학연 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 3.0)에서 산학협력 정보담당관을, BK21사업에서 대학원 차원의 IR(Institutional Research) 제도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일 등이다. 정부가 대학의 산학협력 역할 전담을 목적으로 대학에 산학협력단 법인을 설립하도록 하는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직은 단순한 위계질서 체계가 아니라 하이퍼링크 신경망 조직으로 고도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민원을 비롯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러한 조직의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 챗GPT는 우리에게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 내부 조직이나 정부나 사회와의 협업 체계 등 대학의 거버넌스가 환경의 변화에 맞춰 미래지향적으로 진화해 갔으면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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