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한국 ESG(K-ESG)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이 자율적 경영으로 주도해 가도록 정부와 국회가 정책과 법률로 지원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 ESG 경영을 독려하는 것이 기업에 규제와 같은 멍에로 부과돼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방향의 자율에 맡겨서도 곤란하다.

ESG 경영에 대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나서야 하며 이것을 법률과 정책으로 뒷받침하도록 상호 조응하는 관계가 형성돼야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기업이 ESG 경영의 초기 동력을 만들고 여기에 정책과 법제적 지원이 이루어지면 투자자와 소비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따라붙게 되며 자연이 기업의 수익이 올라간다.

바로 ESG 생태계의 선순환이 자리 잡는 과정이다. 오늘날 ESG는 세계적 추세기 때문에 그런 투자와 소비가 세계 경제 시장에서 유입된다는 점을 생각해도 국익 창출의 국가전략 차원에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20년 임기가 시작된 21대 국회에서 2022년까지 3년 동안 발의된 의안 중 ESG 관련 법률들의 개정안이 분야별 최다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나름대로 글로벌 트렌드를 읽고 ESG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도록 나선 것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ESG 관련법률 개정안은 의원들이 전문가에게 자문받은 것이고 언젠가 국회를 통과하면 곧바로 K-ESG의 실체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분석 정리함으로써 K-ESG의 발전 방향을 미리 전망해 볼 수 있다.

또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ESG 관련 법률들의 개정안들을 기업이 공유함으로써 사전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다.

ESG에 가장 직접적이고 오래된 이슈가 환경 문제임은 익히 잘 아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기업 경영에 ESG가 도입되기 전 시민운동 차원에서 공해추방운동과 환경보호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당시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탄소중립이나 신에너지 개념이 정립되기 전이었다. 환경 기술이나 환경산업도 21세기 들어와서 자리 잡았다. 그런 중에도 ESG에서 가장 앞선 분야는 환경보호 운동이었다.

21대 국회의 ESG 관련 법 개정안 중 환경 관련법 개정안이 6개로 가장 많다.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에 대해 정부 발의와 5건의 의원 발의가 제출됐다. 이것을 하나의 대안으로 정리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했고 현재 본회의 상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환경산업지원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금융기관이 대상기업의 환경 평가를 심사해서 투자하는 ‘환경책임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환경부 장관이 녹색분류 및 표준평가 체계의 구축 등을 추진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 새로운 환경 기술을 이용하다가 손실이 발생해도 고의 및 중과실이 없는 한 면책하도록 해서 신기술을 활성화했다.

국회에 제출된 ESG 관련법률 개정안 중에서 기업들에 가장 광범하고 포괄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일 것이다. 이 법률 개정안을 4명의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자본시장법은 모든 상장 기업에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경영 전반에 관한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업보고서는 임원의 보수와 재무 사항 전반을 담도록 하고 있다.

민형배 의원은 자본시장법 개정의 제안이유에서 “ISO 26000이 사회적 책임의 국제표준으로 발표되고, 임원에게 과도한 보수를 지급하는 기업, 여성 직원에 대한 복지가 미흡한 기업, 환경에 피해를 주는 사업을 시행하는 기업, 좌초자산을 과도하게 보유하는 기업,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거나 노사관계가 비협력적인 기업 등은 그 미래 경쟁력이 낮게 평가되고 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이 새로운 투자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제시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이 국제입찰과 계약에 있어서 새로운 유형의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해외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 국내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경영을 발전시키도록 공시사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기업이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제출하는 사업보고서에 임원과 전체 근로자의 보수 격차,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 환경·인권·부패근절에 관한 기업의 계획과 노력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정보를 기재하도록 했다.

ISO 26000이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2010년 11월 발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국제표준을 말한다. ESG 실행의 가이드라인 성격으로 여기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산업계, 정부, 소비자, 노동계, 비정부기구 등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지배구조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거래 △소비자 이슈 △공동체 참여 및 개발 등 7대 의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규정했다.

또한 이것의 실행지침과 권고사항 등도 담고 있다. 2010년 77개 참여국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93% 찬성을 얻어 국제표준으로 확정됐다. 이 같은 ISO 26000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어느 개혁적인 정부나 시민단체도 하기 어려운 실질적인 사회 전반의 개혁을 이루어내는 결과가 될 것이다.

K-ESG가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국제표준을 관련법률들에 반영해야 한다. 이는 국내 금융기관과 자산운용사뿐 아니라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필수 요건이다. 국회의 관련법률 개정이 그런 방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이용우 의원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에서 EU가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을 2023년부터 적용해 기업의 연차보고서에 ESG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고 환기시켰다. EU는 이미 2022년 3월부터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제(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렸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가 전체 상장법인에 대해 ESG 정보를 2030년부터 제공하도록 계획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과 거리가 있다. 또한 정부가 ESG 정보를 정규 사업보고서가 아닌 별도의 보고서로 내도록 하려는 것은 그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우려가 된다.

특히 투자기업의 사회적 책임투자 원칙에 대해 관련 법률 개정안에서 주목할만한 제안 이유가 제시됐다. 김경협 의원은 2020년 7월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일으킨 옥시와 자동차 배출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 일제강점기 때 국민을 강제 동원한 기록이 있는 전범 기업과 같은 비윤리적 기업에 대해 상당 규모의 투자를 했던 것을 비판했다. 한국투자공사가 국부펀드로서 수익률만을 추구하는 일반 자산운용사와는 달리 기업 ESG 등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사회적 책임투자’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투자공사가 2019년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스튜어드십 원칙)을 수립했으며 그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해외에 납품하는 수출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편입에 자유로울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국내서 기금 운용 시 중소·벤처기업의 ESG 요소를 고려하도록 하는 중소기업진흥법 개정안도 제출돼 있다.

이외에 투자 대상 기업들에 영향력이 큰 법률들로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국가재정법 △국민연금법 △예금자보호법 △조달사업법 △신용보증기금법 △한국주택금융공사법 등이 있다. 이들 법률에 대해 기업의 ESG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 것이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기금자산 운용의 원칙으로 공공성 확보를 위해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한 사항을 고려하도록 했다. 국민연금법은 모든 투자에서 ESG를 고려하도록 의무화하려는 것이다. 조달사업법 개정안은 공공성을 명시하고 공공조달과정에서 ESG 요소를 의무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긍극적으로 여러 법률에 흩어진 ESG 관련 조항들을 모아 ‘ESG기본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SG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법제적 육성책은 ‘ESG기본법’을 입법함으로써 완성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또 여러 ESG 관련법들을 의원들이 개정법률안으로 제출했지만 K-ESG의 발전방향을 종합적으로 담아야 할 기본법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입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의원들은 법률개정안을 제출하면서 ESG 경영의 의무화가 기업에 과중한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구속력 있는 규정으로 “해야 한다”는 표현보다도 자율 권고 규정인 “할 수 있다”는 조문을 신중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ESG 평가가 기업에 단기적인 부담보다도 국내 금융기관과 연·기금 투자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 심사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경영철학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ESG는 기업 경영에서 규제라는 독이 아니며 글로벌 트렌드에 부응함으로써 해외의 투자유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보약이라는 인식을 정부, 기업, 국회, 시민사회가 공유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