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복 대학정책연구소 이사장(목원대 교수)

이종복 대학정책연구소 이사장(목원대 교수)
이종복 대학정책연구소 이사장(목원대 교수)

대학 캠퍼스에 봄은 왔건만 정녕 봄인지를 알 수 없는 분위기다. 다가올 추위를 생각할 때 계절적인 봄과는 전혀 딴판인 암울한 앞날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절벽의 시대가 우리 앞에 일찌감치 다가와 있고 반값등록금 정책 이후로 지난 14년간 등록금의 동결과 신입생 자원의 고갈, 각종 평가로 줄 세우기에 익숙해 있던 지난 십 수년간 대학 운영은 이제는 인건비를 내는 것도 벅찬 재정위기를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정부의 혹독한 규제와 통제 정책 탓에 지방대학은 자율적 자생력이 점점 고갈돼가고 있으며 급기야는 존폐 위기에 직면해 있고 심지어 지역 붕괴 위기를 마주하게 됐다. 정부의 안일한 고등교육 정책은 우리 지방대학과 지역경제에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선두 그룹에 속해 있지만 국가가 고등교육에 지원하는 재정 규모는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반면에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인하여 초중고 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 수준은 상대적으로 회원국 중 상위그룹에 속한다. 인구 절벽의 위기가 오히려 교육여건을 호전시킨 웃지 못할 현실이 된 것이다.

오늘날 지방대학이 이토록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인구 급감으로 인한 학생 부족의 영향이 가장 크다. 하지만 정부의 고민 없는 교육정책이 더 큰 화를 부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1980년대부터 인구는 감소추세로 돌아섰지만 역대 정부는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인구억제정책을 계속 펼쳐왔다. 또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된 이래로 대학은 지방 곳곳에 이르기까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불과 20년 후면 입학자원이 고갈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교육부는 이를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학 입학 정원은 증가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2000년 이후로 지방대학의 위기는 질적 양적 측면 모두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고 2020년대에는 대학 입학정원이 수험생 수보다 많아지는 이른바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미충원 인원이 급격히 증가해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2021년을 예로 들면 일반대에 미충원 규모는 1만 6000여 명에 이르렀고 전문대의 경우는 2만 4000명이 넘는 미충원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내년에는 입학 가능 인구가 입학정원 대비 12만 명 정도가 부족한 상태다. 이러한 미충원 상태는 수도권과 지방이 뚜렷하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20대의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세종시를 제외한 전 지방에서의 인구 순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수도권의 20대 청년층의 인구 비중은 전 지방의 20대 청년 인구보다 많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청년 인구의 수도권 집중은 일자리와 주거 및 문화적 인프라 등의 부족도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으나 대학생의 수도권 집중과 무관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대의 어려움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운영이 어려운 지방대학을 단순히 정리해 문을 닫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교육을 받을 권리에 대한 침해는 물론이고 지역 경제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어 인구변화에 따른 연착륙이 가능하도록 정부는 지방대학에 대해 재정지원과 구조개선을 병행할 수 있는 정책을 발굴하고 펼쳐야 할 것이다.

최근 교육부가 내세운 고등교육 정책의 핵심은 라이즈 체제와 글로컬 대학이라는 두 개의 큰 화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그동안 교육부를 통해서 대학에 재정적 지원을 해 오던 정책을 지방 정부에게 넘기면서 한편으로는 그동안 지원되던 재정지원 사업을 한데 몰아서 전국에서 30개 정도의 글로컬 대학을 선정해 연간 200억씩 5년간 1000억 원씩 지원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양성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엄청난 허점들이 드러나 있다.

우선 라이즈 체계는 고등교육에 관한 아무런 전문성이 없는 지방 정부에게 대학 재정지원을 떠넘기고 지역혁신에 어울리는 대학으로 지역대학을 변화시키라는 것인데 전문성은 물론이고 선거를 통해 4년마다 지도자가 바뀌는 정치적 현실에서 과연 지방정부의 책임자가 일관성과 객관성을 가지고 대학 지원정책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국가가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지방에게 떠넘기면서 지방정부의 전문성이 부족한 면을 보충하기 위하여 교육 관료 출신 중에서 교육자문관 등의 직을 신설해 향후 퇴직 관료들의 자리를 만드는 듯한 인상마저 들게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전체 330개가 넘는 대학 중에서 30개 대학만을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해 지원한다는 것은 이에 선정되지 못하는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생존하거나 아니면 알아서 망해버리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은 전면 재검토함이 마땅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실효성 있는 대학 정원조정 정책을 포함하여 향후 인구구성에 맞도록 적정규모로 연착륙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우선 필요한 조치는 국가 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수도권 대학을 포함해 모든 대학의 정원을 과감히 감축하고 감축에 따른 적정한 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자면 감축 인원만큼 국고보조를 통해 재정손실을 보전해주고 수도권 대학의 경우 감축 인원과 등록금 인상을 연동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인증 평가 등에서 감축률을 주요 평가지표로 활용하고 수도권 대학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원외 입학 인원을 정원 내로 포함하며 국가 장학금 지급도 지방대학생의 경우 소득순위를 확대하여 지급하는 등의 지방대학생에 대한 우선적 지원 등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정책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지방대에 일반재정지원이 가능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고등교육의 무상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또한 문을 닫는 대학의 시설을 국가나 기업의 연구시설이나 창업센터 또는 재교육 및 평생교육시설 등으로 전환 가능하도록 법제화해 대학의 잉여 자원 및 교수 인력과 연구역량을 재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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