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우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한밭대 교수회장)

이준우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한밭대 교수회장)
이준우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한밭대 교수회장)

반세기 이상 계속된 출생율 감소와 함께 과도한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소멸 현상은 우리 사회에 재앙적 수준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 이후 역대 정부들은 지역혁신정책, 산업정책, 기업정책, 일자리정책 등을 통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으나 2023년 현재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몇 년전부터 수도권의 인구 비중, 취업자 비중,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 청년층 취업자 비중, 출생아 비중 등이 모두 50%를 초과했다. 지역을 살려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에 좋은 일자리와 유능한 젊은 인재들, 매력적인 정주여건 등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책무이고, 특히 수도권 유수대학에 뒤지지 않은 우수한 고등교육의 혜택을 지역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수준이 OECD나 EU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또한 수도권의 주요 대학에 비해 지역의 국립대학들은 학생 1인당 교육비가 50~60% 수준에 불과하며, 고등교육 발전에 가장 기본이 되는 국립대학법도 없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장기적인 계획이 없다 보니 우리 고등교육의 80% 이상을 사립대학들이 떠 맡아 왔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정부는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무시한 채 느닷없이 독단적으로 시장만능주의적 고등교육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즉, 정부는 작년 말 규제완화라는 미명하에 기습적으로 ‘대학설립·운영규정’을 전면 개정해 고등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고, 올해 2월에는 라이즈와 글로컬대학 사업을 발표해 120여 개 비수도권 4년제 대학들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또한 3월말에는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제24조(대학통·폐합)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아 교육부장관이 국립대학 통폐합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최근 3개월간 정부가 발표한 일련의 폭력적인 고등교육정책들은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생태계 근간을 뒤흔드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교수단체 및 교육전문가들과 협의와 논의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의 대학설립·운영기준 전면 개정안은 대학의 4대 기본 요건(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의 기준을 대폭 낮추거나 철폐해 교육과 연구의 질을 떨어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수도권 대학들은 학과 신설과 통폐합, 학과 간 정원 조정을 한층 자유롭게 하여 인기학과 위주로 대학을 재편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다시 수도권 쏠림 현상을 심화시켜 지역과 지역대학의 소멸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예상된다.

정부의 라이즈(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는 2025년부터 대학 재정지원사업들의 50%의 예산집행권한을 광역시·도가 갖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과연 정치인 출신의 자자체장이 고등교육 발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제대로 대학 지원과 관련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 심각히 우려가 되는 조치일 뿐만 아니라, 더욱 문제인 것은 이제 정부가 더 이상 지역대학의 지원을 책임지지 않고 손을 떼겠다는 무책임한 정책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글로컬대학사업은 비수도권 대학 30개를 선정해 5년간 집중 육성해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얼핏 비수도권 대학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으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연간 3~4천억 원의 예산을 운영하는 거점국립대학들이 고작 매년 200억 원을 더 지원한다고 해서 갑자기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할 수 없다. 또한 120여 개 비수도권 대학에서 30개를 제외한 나머지 90여 개 대학들은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인데,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극복 책임을 지역과 지역대학으로 떠 넘기고 정부는 손을 떼겠다는 무책임한 조치다.

정부의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안에서 신설된 제24조(대학통·폐합)의 내용에 의하면, “교육부장관은 대학 구조개혁과 특성화를 위해 필요한 경우 2개 이상의 대학을 통·폐합할 수 있다. 이 경우 대학 통·폐합의 절차와 기준에 관한 세부사항은 교육장관이 정하여 고시한다”로 되어 있다. 즉, 필요한 경우 교육부장관이 대학의 통·폐합을 임의로 결정하겠다는 얼토당토한 내용이다. 이러한 국립학교 설치령 조항은 헌법에 명시된 ‘대학자율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상위법인 ‘고등교육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조항을 하위법인 설치령에서 규정했다는 점에서 법리체계에도 맞지 않는(포괄적 위임 입법 금지) 교육 독재 조항이다.

현재 지역소멸과 지역대학 경쟁력의 약화는 국가균형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과도한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하지 못한 역대 정부들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그 책임을 지역과 지역대학으로 전가시키고 있다. 이는 지역의 고등교육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학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말살시켜 결국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다. 더구나 지역의 국립대학 총장들은 이러한 잘못된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함께 논의하는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앞장서서 정부정책에 호응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역에서 담당해야 할 국립대학의 책임과 역할을 도외시하고 각자 도생하려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이는 지난 수 십년간 정부가 사업공모를 통해 대학에 재정지원을 해 왔던 잘못된 관행에 젖어 대학이 건강한 비판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은 지역발전과 인재양성을 위해 지역 대학들과 공존하면서 본연의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글로컬대학 같은 사업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립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국립대 육성방안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국립대 종합육성방안을 체계적으로 수립하지 않은 채, 정부가 자기의 입맛에 따라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한민국의 국립대학 전체를 좌지우지 하려는 정부정책에 대해 국립대 총장들은 뜻을 모아 명확히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10만여 명의 교수를 대표하는 전국 교수단체들과 함께 우리나라 고등교육 발전방안에 대한 공론의 장을 열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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