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한 계명대 교수(광고홍보학전공)

류진한 계명대 교수(광고홍보학전공)
류진한 계명대 교수(광고홍보학전공)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365일 불안에 시달리며 열심히 삽질하는 방법을 배워서 작은 구멍을 파요. 그런데 창의적 교육에 앞선 나라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면서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요. 그 창의성으로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깊고 넓게 땅을 일구죠.” 윌리엄 앤 메리(William & Mary) 대학 김경희 교수의 말이다. 유쾌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화두라고 생각된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창의적인가? 대한민국의 대학은 창의적 교육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창의성(Creativity)’에 대한 두 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창의성이 특별한 사람이나 특정한 직업인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고, 둘째는 창의성이 어떤 작업이나 비즈니스의 필수요소가 아니라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선택요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줄곧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대명사로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피카소, 백남준 같은 위인들이나 멘사 회원,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유명 크리에이터, 드라마 작가나 예능 PD와 같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창의성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는가라는 말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정말 창의성은 특정 직업에만 필요한 것이고,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인가? 

역사적으로 창의성의 필요와 시작은 ‘경쟁(competition)’과 ‘결핍(deficiency)’이었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아담과 이브만 존재한다면 굳이 이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 깜짝 놀랄만한 선물이나 감동적인 프러포즈를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세상에 자동차 브랜드가 하나라면 소비자들에게 애써 멋진 광고를 만들어 보일 필요도 없다. 창의성은 시장 안에 내 브랜드 말고 다른 브랜드가 대안으로 생겨나고, 내가 만든 제품의 경쟁력이 유일하지 않은 시대에 살면서 필요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창의성은 무언가 불편하고 부족한 감정과 이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 인간이 기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다. 인류는 더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서 말과 마차를 만들었고, 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와 비행기를 발명했다. 중요한 것은 인류의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결핍’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학은 어떤가? 경쟁과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대학이 위기라는 말은 이제 전망이 아니라 정설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학의 위기인가? 그리고 그 위기는 피해 가야 하는 위기인가? 아니면 극복해 전화위복을 삼을 수 있는 위기인가?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위험(危險, risk)과 기회(機會, opportunity)’라는 ‘창의적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관습에 매몰되면 과거지향적인 방향에 머물 것이며, 정답 찾기에 몰입하면 폭넓은 솔루션의 기회를 놓칠 위험성이 크다. ‘역경’을 거꾸로 하면 ‘경력’이 된다. 오늘의 위기를 기회로 삼을 ‘창의적 혜안’이 필요한 시기다. 

필자가 창의적 문제해결과 전략도출을 위해 개발한 ‘Why Fan Model’은 대부분의 문제나 이슈 앞에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설계됐다. 즉, ‘무엇(what)을 할 것인가?’나 ‘어떻게(how)할 것인가?’에 앞서 ‘왜(why),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는가?’ ‘왜(why),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선행한다. 모든 마케팅 현상에는 증상을 덮는 치료보다 원인을 파악하는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일컫는 교육을 이슈로 한다면 당연히 ‘왜(why)?’에 대한 통찰이 선행된 후 ‘무엇(what)?’과 ‘어떻게(how)?’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야 한다. 

무엇이 대학의 위기를 자초했는가를 거론하기 위해 굳이 ‘상아탑(象牙塔)’과 같은 구시대적 키워드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부분에서 위기의 전조증상은 발견되었고, 그 위기를 우려하고 방치하는 사이에 병세가 심해진 건 아닌가? 학자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왜(why)?’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학의 필요와 가치에 대한 ‘포지셔닝(positioning) 오류’와 ‘정체된 교육 방향성’에서 그 근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두 가지 탈출구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대학의 위기 인식과 극복 의지는 ‘수동적 접근’ 보다는 ‘능동적 해석’이 필요하다. 현재의 대학은 ‘In & Out’에서 사면초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입생의 절대적 수가 줄어드는 학령인구 감소는 대한민국 모든 대학이 당면한 ‘내적 문제(internal problem)’이고,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취업난은 각 대학과 전공 학과들이 안고 있는 ‘외적 문제(external problem)’다. 대학이 인구를 늘릴 수 있는가? 대학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가? 왜, 대한민국의 대학은 ‘학령인구감소’와 ‘일자리부족’이라는 환경적 요인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상처를 입고 있는가?

이는 그 동안 대학 스스로 존재와 필요를 얼마나 수동적으로 정의해 왔는가와 무관하지 않다. 대학이 인구가 많으면 흥하고 적으면 쇄하는 1차 산업인가? 작금의 위기를 학령인구 감소나 취업난에 기인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또 하나의 무사안일이다. 불현듯 문 열고 들어오는 불청객에 당황하지 말고,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능동적 관점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의 대학은 10년 후의 학령인구감소를 예측하지 못했는가? 계획 없이 우후죽순 격으로 만든 대학들을 수요가 없다고 줄여야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최소한의 대책과 계획이 있어야 않을까? 당연히 10년 후에 만날 예상문제를 예측하고 예습해야 한다. 그것이 위기의 극복은 아니어도 최소한 위기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능동적 접근이다. 

둘째,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가르치는(teach) 곳’이 아니라 ‘지혜를 가리키는(direct) 곳’이어야 한다. 이미 우리의 생활 속에서 대부분의 지식과 정보는 네이버나 구글 등 인터넷을 검색할 능력만 되면 그들이 불철주야 방학도 없이 훌륭하게 지도하고 있다. 굳이 영어나 스페인어를 잘 하지 않아도 파파고가 번역과 통역을 해준다. 최근에는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라는 명석한 오픈 AI가 출몰해 인간의 전문적인 글쓰기 작업까지 수고를 덜어주겠다고 난리다. 이제, 지식은 인간의 머릿속에 외워 저장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약 2만 년 전부터 작아지기 시작했고, 3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15% 정도 작아졌다고 한다. 문자 등의 기록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억하고 암기하는데 사용되는 ‘뇌의 역할’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이 대학의 존재 이유로 전문적인 지식 교육과 사회 진출을 거론하고 있다. 대학의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고, 평가하고, 평가받고,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적용하고, 활용하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곳에 도달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돕고, 무한한 동기를 자극하는 ‘창의적 제너레이터’ 역할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더 이상 학령인구를 재료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나 기능인을 배출하는 인력양성소로 전락하지 말았으면 한다. 대학이 의무교육이 아닌 이유는 우리가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 이상의 무엇을 만나고 경험하게 하는 가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일본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 Japan)’에서 광고 캠페인 전략을 수립하면서 경쟁 브랜드로 ‘PS2(Play Station II)’를 삼은 사례가 있다. 그들은 왜 다른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가 아닌 실내 오락기를 경쟁으로 삼았을까? 아이들이 집 안에서 게임을 하느라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왜(why)?’로부터 출발한 전략적 진단의 결과다. 비단, 경쟁 제품군의 설정하는 일뿐이겠는가? 다양한 문제의 솔루션을 모색하는 일에도 ‘왜(why)?’로부터 출발하는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대학의 위기를 몇 개의 하위 대학이 당면한 일로 여기는 것은 편협하고 위험한 판단이다. 대학이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경쟁 상대는 대학이 아닌 다른 곳에서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캠퍼스에는 곳곳에서 크고 작은 장독대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 장독대들을 보면서 ‘똑같은 배추로 담은 김치도 어떻게 숙성시키느냐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달라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대학마다 인재를 숙성시키는 자기만의 경쟁력 있는 방법과 가치 있는 교육철학이 있길 바란다. 모든 대학에서 똑같은 인재가 아닌 각각의 대학에서 대체 불가능한 차별화된 인재들이 양성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이 대학이 공존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독창성(originality) 있는 교육’과 ‘유니크(unique)한 인재양성’에 가치를 두는 일이다. 종종 창의성은 결코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거나 이론이나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부터 매우 쉽고 강력한 솔루션을 선물하기도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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