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을 100점 만점으로 바꾼 환산점수, 취업이나 대학원 입시 자료로 활용돼
대학마다 환산식 기준 달라…학점 민감한 학생들 “낮은 환산점수로 손해”
환산점수 활용에 로스쿨 입시생들, “1점이라도 올려야죠” 환산식 개정 요구
대학 성적 부여 자율성 해친다는 우려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교육부
법전원 관계자, “자율성보다 환산점수 기준 세워 학생 혼란부터 해소해야”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한울 기자] 최근 대학가가 환산점수로 인해 시끌시끌하다. 취업, 대학원 입시 등에 활용되는 평균 평점이 대학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어 환산점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중고등학교에 내신이 있다면 대학에는 ‘평균 평점(Grade Point Average)’이 있다. 학점으로 잘 알려진 평균 평점은 보통 A부터 F까지 등급별 학점이 결정되는데, 이를 100점 만점의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 환산점수다.

기존 학점 체계보다 점수로 나타나 일률적 성적 비교가 수월해 기업 입사나 편입, 대학원 입시, 해외대학 입시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에서 해당 체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변호사 등 법조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환산점수는 비교적 익숙한 개념이다.

■ A학점 받아도 대학마다 다른 GPA 환산식에 점수 ‘천차만별’ =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환산점수를 도출하기 위해 각 대학마다 학점별 계산하는 환산식이 다르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같은 학점을 받아도 학교성적처리 규정을 거쳐 다른 점수가 나와 환산식이 유리한 대학 학생들이 유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예시로 각 대학에서 ‘A’ 학점을 받은 학생의 환산점수를 비교해보면 이화여대는 96.5점, 연세대는 97.7점, 경희대는 97.67점, 서울대는 96.0점으로 제각각이다.

이 차이는 1점, 0.1점 사소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와 편입에서 해당 문제가 두드러진다. 특히 로스쿨 입학을 위해서는 법학적성검사(LEET)와 더불어 학부 성적인 학점이 당락을 좌우하는데 환산점수 0.1~1.0점 사이에 수십 명이 몰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아주대 대학생 A씨는 “취업 경쟁이 점점 세지면서 학생들이 로스쿨 입학을 비롯해 기업 입사 등에서 활용하는 환산점수에 민감해지고 있다”며 “학점은 같은데 수식 차이로 점수가 달라지는 것에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낮은 환산점수로 다른 대학의 학생들보다 불리한 여건에서 경쟁을 시작한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고려대의 경우 A학점을 환산점수로 적용하면 94.3점인데 다른 수도권 대학에 비해 낮은 점수라 학생들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 학생들 불만에 법전원 대학들 부랴부랴 환산식 개정 움직임 = 대학별 상이한 기준으로 환산점수 논란이 불거지자 대학들은 환산식을 개정해 학생들의 환산점수를 높이는 데 치중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고려대는 A학점 환산점수를 95.0점으로 높였고 B+ 역시 기존 88.6점에서 90.0점으로 상향했다.

이에 질세라 연세대도 지난해 9월 열린 ‘2022학년도 학사제도 교학협의회 제1차 회의’에서 A학점에 대한 환산점수 96.0점에서 97.7점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전부터 비대위 주도의 학생 서명운동 추진 등을 통해 학생들이 실제로 행동에 나서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들도 환산식을 고쳐 환산점수를 부랴부랴 높이고 있다. 서울시립대는 “타학교 학생과 비교했을 때 환산점수가 낮아 불이익을 받으면 우리 학생의 손해”라는 이유로 2021년 4월 환산 방식을 개정한 사례가 있다.

아예 총학생회 차원에서 환산점수 산정 기준 변경을 핵심 공약으로 삼은 경우도 있다. 경희대는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환산점수 개정을 추진해 지난해 9월부터 적용, 최대 1.83점의 점수 상승 효과를 누렸다.

서울대도 제62대 총학 ‘자정’이 환산 점수의 미세한 차이가 입시와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GPA 산정 기준 변경 및 소급 적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다만 실행되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안건이 상정됐지만 더 오랜 검토가 필요하다는 대학의 의견에 부딪혀 현재 개정이 지연되고 있다.

■ 높아지는 환산점수에 ‘학점 인플레이션’ 심화…학생 신뢰도와 변별력 낮아진다 ‘우려’ = 다만 많은 대학들이 환산식을 변경해 점수를 올리고 있어 자연스럽게 학생이 가진 능력이 비해 지나친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앞서 서울대가 학생들의 환산식 요구 변경에도 신중을 기울이는 이유도 ‘학점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대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수업에서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며 상대적으로 후해진 학생 평가도 학생들의 환산점수 인상 요구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도 있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발표한 ‘2022년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21년 과목별 A학점 이상을 취득한 재학생 비율은 47.9%다.

2020년의 54.7% 수준보다는 아니지만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33.7%)보다 여전히 훨씬 많은 학생이 A학점을 받았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B학점 이상을 받은 학생 비율은 83.4%에 달한다.

이에 한 대학 입학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학생들의 성적이 전체적으로 ‘뻥튀기’됐다”며 “높은 점수를 따기 수월한 상황에서 성적이 상향 평준화되니 적은 점수에도 차이가 심하게 벌어져 환산점수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사진=한국대학신문DB)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사진=한국대학신문DB)

■ “환산점수 기준 일원화”, “대학원 입시에서 학생 성적 배제도 검토해야” = 이에 배병일 전 영남대 교수는 이번 환산점수 문제에서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보다 통일된 기준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산점수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나와야 학생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교육부는 성적을 산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있어 쉽사리 기준 선정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고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성적 관리는 대학이 학교장의 권한으로 제·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어 개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 전 교수는 “환산점수를 적용하기 이전 로스쿨은 학점당 점수를 매겨 평가를 진행했지만 변별력이 없다는 불만을 받아들여 환산점수를 적용 한 것”이라며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환산점수가 로스쿨 입시 경쟁 심화와 학점 인플레이션에 오히려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즉각적인 대처가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로스쿨 입시에서 법학적성시험만으로 평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로스쿨 입시에서는 지원자의 △학사학위과정 성적 △법학적성시험 △외국어 능력을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한다. 하지만 공인영어성적은 일정 수준을 넘기기만 하면 지원할 수 있도록 해 입시에서 법학적성시험과 더불어 성적이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에서 나온 의견이다.

그는 “통일된 기준이 나오지 않는 이상 상대적으로 환산점수가 낮게 나오는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렵다. 학생은 더 높은 점수를 요구하고 대학도 이에 맞춰 환산점수를 계속 올리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법학적성시험은 로스쿨 교육을 이수하는 데 필요한 수학 능력과 법조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소양 및 잠재적인 적성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대학 별 평가 기준이 상이하기에 입시에서 법학적성시험의 비중을 높이는 것도 검토해봄직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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