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원 탄신 100주년 기념 ‘조영식’ 전기 출판
경희학원 설립자이자 ‘UN 세계평화의 날’ 제창한 선구적 인물
‘새마을운동’의 모태인 농촌계몽운동 ‘잘살기운동’ 추진
조정원 WT 총재 “부친의 평화 정신은 WT 통해서도 이어져”
설립 50주년 맞은 WT, 태권도의 세계화 주역으로 거듭나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WT) 총재는 부친인 조영식 박사 탄신 100주년 기념 전기에 대해 설명하며, 태권도를 통한 세계평화운동으로 부친의 유지를 잇겠다고 밝혔다. (사진=한명섭 기자)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WT) 총재는 부친인 조영식 박사 탄신 100주년 기념 전기에 대해 설명하며, 태권도를 통한 세계평화운동으로 부친의 유지를 잇겠다고 밝혔다.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분쟁과 갈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긴장도가 높아져만 가고 있다.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현상을 진단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석학의 역할을 기대한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평화’를 위해 일찍부터 활동했던 인물이 있다. 경희학원의 설립자이자 UN 세계평화의 날의 제창자인 미원 조영식 박사다. 조 박사는 어려운 시기 한국의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한 국제적 활동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활 개선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1950년대 후반 추진한 농촌계몽운동, 잘살기운동 등은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아들인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WT) 총재 또한 태권도를 매개로 평화와 희망을 전파하는데 앞장서 오고 있다. 조 총재는 지난 3월 조영식 박사의 전기를 출판하며, 부친이 추구했던 세계평화, 인류 공동체 등 현재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2대째 평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조정원 총재를 만나 그가 기억하고 있는 조영식 박사가 추구했던 가치, 활동상, 그리고 태권도를 통한 세계평화활동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미원 조영식 박사 전기 표지
미원 조영식 박사 전기 표지

- 최근 부친인 조영식 박사의 전기를 출판됐는데 계기가 있다면.
“2021년은 부모님 두 분의 탄신 100주년이자 아버님이 제창해 제정된 ‘UN 세계평화의 날’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2019년 5월 어머니 기일에 모인 졸업생들이 아버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기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고, 아버님의 제자인 홍덕화 기자를 중심으로 집필이 시작됐다. 그런데 아버님이 많은 활동을 하시던 시기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 작고하셨을 뿐만 아니라 미흡한 자료를 보충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2021년이 아닌 2023년에 책이 출판된 이유다. 전기는 아버님 탄신 100주년의 인간적인 의미와 세계평화의 날 제정 40주년의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아버님의 생애와 업적을 회고하면서 사상과 비전을 새롭게 조명하고 싶었다.”

- 조영식 박사는 경희학원의 설립자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학자 조영식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아버님인 조영식 박사의 사상은 ‘문화세계의 창조’, ‘인류사회의 재건’, 당위적 요청사회를 뜻하는 ‘오토피아(Oughtopia)’의 건설 등으로 말할 수 있다. 1948년 27세에 펴낸 저서 『민주주의 자유론』을 시작으로,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문화세계의 창조』를, 그리고 1965년 『우리도 잘살 수 있다』를 저술했다. 특히 우리도 잘살 수 있다를 펴내며 전개한 ‘잘살기운동’은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됐다. 이후 1975년에는 『인류사회의 재건』, 1979년 『오토피아』를 연이어 선보이면서 사상의 폭을 확대했다. 아버님의 비전이 가장 돋보인 책은 『문화세계의 창조』로 아버님이 전개한 ‘문화세계’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의 ‘문화적 보편성의 확대’가 아닌 ‘발전적 자유’, ‘문화복리’ 등을 의미한다.”

-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된 ‘잘살기운동’은 어떤 운동이었나.
“1953년 휴전 협정 이후 우리나라 전 국토는 잿더미와 다름 없었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도 아버님은 전후 복구사업과 학교 재건 과정을 진두지휘하셨는데 그 중에서도 주력한 것이 바로 ‘농촌계몽운동’이었다. 당시 전후 재건 과정에 발맞춰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기치 아래 문맹퇴치와 농촌계몽 등 범국민 잘살기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운동의 동인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다니며 최빈국을 연구하고 당시 한국의 살 길을 연구한 아버님의 노력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때마침 박정희 대통령에게 잘살기운동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할 기회가 생기면서 새마을운동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후에도 밝은사회운동, 인류사회재건운동, 전쟁 없는 세계평화 캠페인 등으로 확장시켜 나가셨다.”

조정원 총재는 세계평화의 날 제정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조정원 총재는 세계평화의 날 제정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 조영식 박사의 업적 중 ‘UN 세계평화의 날’ 제정을 빼놓을 수 없다. 제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듯 한데.
“1981년 당시 대한민국은 UN 회원국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아버님은 코스타리카에서 열린 제6차 세계대학총장회 총회에 참석해 로드리고 카라조 오디오 코스타리카 대통령에게 세계대학총장회 결의안을 UN 총회에 제안해 주도록 요청했다. 피자 코스타리카 주 UN대사와 함께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결의안을 UN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81년 11월 30일 제36차 UN 총회에서 매년 9월 셋째 주 화요일을 ‘세계평화의 날’로, 1986년을 ‘세계평화의 해’로 제정 선포했다. 당초 세계평화의 날 제정 결의안은 27일에 상정됐는데 서류 미비를 이유로 토론 일자를 30일로 연기했다. 몇몇 대사들이 이의를 제기해 표결로 부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표결에 부쳐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평화는 우리의 절대 명제이기 때문에 표결로 통과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조영식 박사는 어떤 아버지이자 학자였나.
“많은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하지만 내게 아버님은 하나의 종교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아버님의 삶은 마치 수도승 같았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자기 신념과 신조를 가지고 생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 수양을 참 많이 하셨다. 잦은 해외 출장에도 출장 전·후에 항상 부모님 묘소에 들러 인사를 드리셨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에도 최대한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국내 여행도 많이 가고, 해외 여행도 자주 다녀왔다. 그때 한 번씩 얘기해주셨던 말들은 지금까지도 제 삶의 이정표로 남아있다.”

- 최근에는 부친의 평화 정신을 세계태권도연맹을 통해 전파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의 총재이기도 하지만 GCS 인터내셔널(밝은사회클럽 국제본부) 총재도 겸직하고 있다. GCS 인터내셔널은 아버님께서 전 세계 평화와 사회 개혁을 위해 1978년 설립했다. UN에 등록된 비정부단체(NGO)로, 현재 81개국의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세계태권도연맹 국가협회와 함께 활동하면서 영향력을 더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 각지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용품도 지원하면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키르기스스탄에서 고아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보급했다. 이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있는 난민 캠프에도 태권도와 한국어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요르단 아즈락 난민 캠프에는 태권도 전용 교육 건물인 태권도 아카데미가 있으며,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는 난민팀을 구성해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는 성과도 거뒀다. 특히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장애인 올림픽에 난민 선수를 위한 쿼터도 배정받았다.
이 밖에도 존 F. 캐네디 대통령이 설립한 평화봉사단(Peace Corps, 피스코)을 모티프로 태권도를 매개로 한 피스코를 만들고자 했다. 2008년 설립된 세계태권도평화봉사단은 방학기간을 활용해 태권도 학과 전공 학생들과 외국어 학과 전공 학생을 선발해 필요한 지역에 파견을 보내왔다. 그런데 학생들이 파견간 국가의 반응이 너무 좋아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와 2009년에 설립하고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조정원 총재(왼쪽)가 최용섭 본지 주필 겸 편집인에게 세계태권도연맹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조정원 총재(왼쪽)가 최용섭 본지 주필 겸 편집인에게 세계태권도연맹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 세계태권도연맹이 설립되고 벌써 50주년을 맞이했다.
“1973년 5월 28일에 설립된 세계태권도연맹은 반세기 동안 태권도의 세계화를 이끌면서 현재 212개+1(난민팀)의 회원국을 가진 올림픽 종목 국제경기연맹으로 성장했다. 올해 5월 말에 아프리카의 나미비아가 정식 회원국으로 들어오게 되면 213+1로 바뀔 예정이다. 그간 세계태권도연맹은 대한민국이 세계에 선물한 태권도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 왔다. 지난 50년간의 이러한 노력이 생존과 성장을 위한 것이었다면 향후 50년의 노력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평화와 희망을 전파하는 도구로서 태권도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쓰고자 한다.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로 2004년 6월 취임한 이후 6선을 거쳐 19년째 하고 있다. 국제 스포츠기구 수장이 이렇게 오랫동안 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태권도연맹에서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28개 종목 중 아시아에서 시작한 스포츠는 태권도와 유도밖에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

- 세계태권도연맹 50주년을 맞아 준비하고 있는 부분은.
“오는 5월 28일이 세계태권도연맹 창립 기념일이다. 이 시기에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한다. 세계태권도연맹이 시작될 때 17개국이 모여 창립을 했는데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와 함께 17개국 대표들에게 50주년 기념패를 수여할 예정이다. 그리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각 올림픽 최우수 남녀 선수를 선정해 14명의 선수에게 상패와 메달도 수여할 계획이다. 또 하나는 IOC가 위치해 있는 스위스 로잔에 가면 IOC 박물관이 있다. 지난해 5월 IOC 위원장의 동의를 얻어 IOC 박물관 앞에 태권도 동상이 세워질 예정이다. 올해 11월 예정인데, 태권도 동상이 세워지면 올림픽 28개 종목 중 9번째로 세워지는 것이다. 이는 태권도가 명실상부한 올림픽 종식 종목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2015년 9월 21일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UN 본부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있었다. 연설 내용 중에 세계태권도연맹은 태권도박애재단을 만들어 꿈과 희망 없이 살아가는 난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히 올림픽 스포츠인 태권도를 보급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 평화의 중요성과 올림픽의 중요성을 알리고 어떻게 하면 국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같이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 이후 태권도박애재단을 스위스 로잔에 정식으로 설립하고 세계 각국에 있는 난민촌 난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태권도와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가 세계의 스포츠로 깊이 스며들게 돼 개인적으로 무척 기쁘다. 더 나아가 평화와 봉사를 실천하는 스포츠로 꾸준히 성장시켜 전 세계 어려운 곳에 희망으로 기여할 수 있는 태권도가 되길 소망한다.”

■ 조정원 총재는…
경희대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카톨릭루벤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1979년부터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경희대 10대·11대 총장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와 대한태권도협회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2006년부터 밝은사회클럽 국제본부(GCS International) 총재와 세계태권도평화재단 이사장(2009년)도 겸직하고 있다.

<대담=최용섭 주필 겸 편집인 / 정리=백두산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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