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E 퀸(Robert E. Quinn)은 1996년 발간한 《Deep Change》에서 ‘근원적 변화 아니면 점진적 죽음이라는 진퇴양난의 딜레마’(deep change or slow death dilemma)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개인이나 조직은 끊임없이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데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과제에 직면할 때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일부는 문제해결을 위해 ‘근원적 변화’를 시도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치함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는 길을 선택한다. 퀸은 이 길을 ‘점진적 죽음의 길’로 표현했다.

이 길을 선택한 개인이나 조직은 작은 문제를 큰 위기로 만들어 결국에 가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조직은 ‘보수주의 문화’, ‘부서 이기주의’, ‘변화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퇴직을 앞둔 장기근속자’, ‘비전의 부재’, ‘구체적인 목표 전략 전술의 부재’, ‘외부 경고의 외면’, ‘외견상의 변화 안주’, ‘근원적 변화 거부’ 와 같은 특성을 갖는다.

처음에는 이런 조직 특성이 운영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어느 한계 상황에 도달하면 문제해결 능력을 잃고 조직 전체가 위기에 휩싸이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변화 필요성은 계속 커지는데 변화를 추진해야 할 최고 경영자나 임원, 그리고 간부들은 지금까지 해 왔던 일상적인 일에 매몰돼 변화 모멘텀을 잡는 데 실패한다.

퀸은 근원적 변화를 감행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그 딜레마 순간에 근원적 변화를 포기할 때 점진적 죽음은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흔히 점진적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을 ‘끓는 물과 개구리 이야기(boiled frog story)’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곤 한다. 마치 개구리처럼 주변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상황이 조직이 변화를 거부하며 시들시들해지는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개구리가 관리자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위기를 감지하고도 변화를 거부한 관리자는 결정적 순간에 뛰쳐나가면 그만이지만 남은 조직원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은 올챙이 이야기(dead tadpole story)’가 비유상 더 들어맞을지 모르겠다.

개구리는 안전하게 도망쳤지만 올챙이들은 뜨거운 물 속에 여전히 남겨지기 때문이다. 지금 조직 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채 그냥 지나가는 조직은 대체로 이런 상황을 맞이하기 십상이다.

지금의 대학 상황이 그렇다. 지난 2000년대 초엽부터 대학 위기에 대한 경고음은 계속 울렸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 구조조정이 시급하니 재정지원을 해주면서까지 대학정원 감축을 유도했다. 그러나 정부의 갈지자 정책 행보와 대학의 미온적 대응은 일부 대학을 대량미달 사태라는 위기 국면으로 몰아갔다.

앞으로 수많은 대학이 학생 부족 사태로 없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일찍이 저명한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앞으로 10년간 전 세계 대학 절반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하지 않았던가. 이미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대학 폐교는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지난 10년 사이에 500여 개 대학이 문을 닫았고, 일본에서도 지난 20년간 280개 대학이 사라졌다고 한다.

국내 대학 폐교 전망치는 이들 국가보다 더 암울하다. ‘인구변동과 미래 전망: 지방대학 분야’(동아대 이동규 교수)에 따르면 2042~2046년 국내 대학 수는 190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대학 생존율이 75% 이상인 곳은 서울(81.5%)과 세종(75.0%)뿐이었으며 강원(43.5%), 대전(41.2%), 경북(37.1%), 부산(30.4%), 전북(30.0%), 경남(21.7%), 울산(20.0%), 전남(19.0%) 등은 50%를 하회했다.

대학이 문 닫는 폐교는 미래 문제가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현재 문제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학가의 근원적 변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점진적 죽음의 길을 태연히 걸어가고 있다. 정부는 기존 교육부 소관이던 대학에 대한 행·재정적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이양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제 대학과 지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대학으로서는 ‘근원적 변화’를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다. 만약 이 국면에서도 대학이 근원적 변화에 실패한다면 폐교라는 파국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는 지금이 대학 혁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 했는데,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 일을 누가 대신 한단 말인가. 오직 그 대학의 구성원들만이 ‘근원적 변화(Deep Change)’에 도전할 수 있다. 대학인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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