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만화평론가)

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만화평론가)
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만화평론가)

디지털 시대와 이진법

“세상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고대 철학자들의 근원 논쟁에서 승자는 탈레스(물), 헤라클레이토스(불), 아낙시메네스(공기)가 아닌 생뚱맞게 ‘수’라고 주장한 피타고라스다. 이제 세상 모든 정보는 유형의 인쇄물이 없이 디지털로 생성되며 축적되고 보관되며 유통되며 향유된다. 디지털로 변환된 것들은 먹거나 만질 수 없지만 눈에 보이고 귀로 들을 수 있다. 이제 사진도, 회화도, 음악도, 영화도, 만화도, 책도 물성이라는 형태를 갖추지 않아도 데이터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으며 보관할 수도 있다.

데이터는 실재가 없는 기호로 존재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만든 건 10개 손가락(십진법)이 아니라 숫자 0과 1이 만든 이진법이다.

사진=박세현 한양여대 교수
사진=박세현 한양여대 교수

철학사에서 이진법으로 세상을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다. 그는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이 만든 덧셈과 뺄셈만 할 수 있었던 기계식 계산기를 발전시켜서 곱셈과 나눗셈을 할 수 있는 기어식 계산기를 만든 발명가다. 그가 말한 이진법은 컴퓨터의 원리가 됐고 세상은 기호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구성됐다.

디지털 시대에서 수치화된 데이터는 나이를 먹지도 않으며 변색하지도 마모되지도 않은 채 무한 복제를 이뤄내면서 증식하고 확산하며 공유된다. 이렇게 데이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혹은 사람과 미디어 사이에서 존재한다. 이 미디어가 바로 인터넷 네트워크다. 그 덕분에 데이터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트랜스 미디어 시대란 무엇인가?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전망은 텔레비전의 변화에서 이미 예측됐다. 미국 미디어 연구가 마이클 커틴은 “2000년대 이후 미국의 TV 콘텐츠 산업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매트릭스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며 “미디어는 다양하게 공존하며 다중 미디어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TV가 브로드캐스트 미디어로 존재했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디지털 케이블, 구글, 넷플릭스, 유튜브 등이 활약하는 네트워크 미디어와 멀티채널 미디어 시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박세현 한양여대 교수
사진=박세현 한양여대 교수

디지털 미디어 이론가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디지털 콘텐츠의 동시다발적 생산과 소비를 미디어 컨버전스로 설명하면서 기술적・사회적・문화적 글로벌의 관점에서 특징을 분석했다. 결국 하나의 콘텐츠가 디지털로 전환되고 통합되면서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며 소비자들이 멀티태스킹을 가능하게 만들고 유저들의 참여와 기술적 기반에 따른 연계성을 유도하면서 다양한 콘텐츠와 조합을 이뤄내는 범세계적인 디지털 콘텐츠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트랜스 미디어다. ‘넘어서, 횡단해, 꿰뚫어, 지나서, 완전히, 다른 쪽으로, 다른 상태로, 초월해, 저편으로’ 등의 의미를 가진 ‘trans’와 ‘media’가 결합한 트랜스 미디어(trans-media)는 미디어와 미디어 간, 미디어와 콘텐츠 간, 콘텐츠와 콘텐츠 간, 콘텐츠와 유저 간, 미디어와 유저 간 경계를 허물고, 각각의 콘텐츠가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생산·소비·향유되는 현상이다.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과 웹툰

사진=박세현 한양여대 교수
사진=박세현 한양여대 교수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같은 인물과 배경을 공유하는 스토리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각각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에 따르면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특징은 6가지다. 첫째, 참여의 속성이 아날로그(몸), 즉 직접 접촉에서 디지털 정신(네트워크) 접속으로 바뀌었다. 둘째, 무한 복제와 변형이 가능하다. 셋째, 스토리와 미디어의 소재와 내용이 확장됐다. 넷째, 유저와의 인터랙티브가 가능하다. 다섯째, 열린 구조를 통한 시즌제가 가능하다. 여섯째, 국가와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선 범세계화를 구축한다.

웹툰 콘텐츠는 성공한 원작 콘텐츠에서 순차적으로 미디어 변화와 독립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OSMU 스토리텔링은 물론 콘텐츠의 콘셉트만으로 다양한 스토리텔링과 미디어로의 확장이 가능하다. OSMU가 직선형 단계적 스토리텔링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트랜스미디어는 방사형 스토리텔링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브 캐릭터들의 변주를 통해서 재창작을 위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에 가장 최적화돼 있는 디지털 콘텐츠가 바로 웹툰이다. 최근 여러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는 원천 콘텐츠 IP로 각광받고 있는 웹툰 콘텐츠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와 티빙 등 다양한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 작품화는 웹툰의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더욱 높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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