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생긴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는 말은, 고교 시절 내 가슴에 새기며 실천한 말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시련을 겪는다. 내게는 그 시련과 기회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찾아왔다. 

부산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돈이 필요했다. 나를 아꼈던 선생님들이 입주가정교사 자리를 알아봐 주셨고, 난 초등학생을 가르치며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동기들은 입학과 동시에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등 거제도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내 공부하랴, 학생 공부도 가르치랴 나에겐 24시간이 모자랐다. 제법 공부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공부에만 몰두하는 친구들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내 공부는 하지도 못하면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입주가정교사를 그만두고 부산 대연동에 살고 있던 형님의 단칸방에 합류했다. 그런데 2학년 1학기 5월 중간고사, 이틀째 시험을 친 뒤 나는 쓰러졌다. 결핵성 늑막염, 폐에 동공이 두 개나 생겼다. 어떻게든 뒤처진 공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몸을 혹사시킨 결과였다. 몸도 몸이지만 분하고 화가 났다. 그만큼 피 끓는 시절이었고 꿈 많은 청춘이었다. 그런데 그 팽팽한 긴장이 갑자기 뚝 끊어져 버린 것이다. 

부산에서 치료받을 형편이 아니어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거제도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친구들은 좋은 환경에서 부모 지원을 받으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데 나만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동네에 있는 의사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주사도 맞고, 나 스스로도 병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서 빨리 건강을 되찾아 학업을 따라잡아야겠다고 동동거리며 애를 태웠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니 병세는 차츰 나아졌다. 그렇다고 복학해 공부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무료했다.  

이를 달래기 위해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책은 다 읽었다. 글자로 된 것이라면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조선 정조시대 뛰어난 실학자였던 이덕무의 별명이 책만 보던 바보인 ‘간서치(看書痴)’라 했던가. 나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책을 탐독했다. 학교 공부에서 벗어나 정말로 다양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행운을 만난 것이다. 동네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어서 옆 동네로 책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 나중에는 읽을 책이 없어서 『세계대백과사전』을 비롯해 『의학대백과사전』까지 서너 번씩 읽었다. 책을 읽기 위해 여름 가뭄에는 물 퍼 나르기, 가을 벼가 익을 즈음에는 새 쫓기 등도 기꺼이 했다. 그렇게 책이 읽고 싶었고 또 좋았다.

그 때 읽은 책 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책이 있다. 104세인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 김형석 교수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등이다. 그 당시 김형석 교수의 수필집은 전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을 만큼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혔다. 이 책들은 감수성이 풍부한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특히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에 깊은 철학적 내용을 담아내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이 책을 펼쳐 놓고 “존재의 의미는 사랑이다”,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은 고뇌 어린 열정”, “어떻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며 허무를 넘어 다시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장을 읽을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왔다. 열 번도 더 읽은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만난 이 책은 나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줬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나 자신만 정지되어 있다는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이 책은 위로는 물론 성찰하는 힘을 길러 줬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나는 그 때 알았다. 역경이 왔지만 당당하게 부딪쳐,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 책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 존재와 사랑의 의미, 그리고 고통 끝에 얻은 용기와 새로운 희망까지 얻었다.

또한 『영원과 사랑의 대화』 후반부에는 「어느 구도자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신부와 그를 연모하는 제자의 이뤄지지 못한 러브 스토리가 실려 있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얼마나 애틋한 마음에 사로잡혔던가. 책을 보면 제자는 사랑은 하되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신부(神父)를 놓아주기로 결심하는데, 그 방법이 다른 사람과 약혼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당시 풋풋한 마음을 가졌던 후배와의 만남을 지속하기 어려웠던 나의 처지나 아픔과 비슷한 상황이라, 더 많이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란 언제든지 사랑의 짐을 지는 동안은 모질고 거친 성격이 둥글고 원만해지는 법이다. 한 번도 사랑의 부채를 져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집스런 성품을 고치지 못하는 운명에 빠지게 된다”라는 구절이 아직도 생각나는 것을 보니, 얼마나 내 속 깊이 자리 잡았는지…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오랜 시간이 지난 2016년, 한 번 더 소환됐다.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 지정을 기념해 기호일보사 ‘인천시민과 명사가 함께하는 애장도서전’을 열었다. 그 때 명사로 초대돼 이 책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학교와 서재 어디를 봐도 이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서점과 헌책방 등을 다니며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형석 교수님께 직접 연락드려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보시던 책을 직접 보내주셨다. 이후 책을 다 보고 책과 함께 「외롭고 불안하던 사춘기 소년 마음 다독」이란 기사 그리고 대학의 쿠키를 댁으로 보내드리며 감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절망의 시간, 그러나 독서와 함께 한 1년은 나를 크게 성장시키는 전환점이 됐다. 마음 놓고 철학, 역사,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다 보니 인문학의 기본 소양은 물론이고 깊은 통찰력을 기를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강제로 갖게 된 이 기간이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입시에 쪼들리는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이었다면, 그런 독서는 꿈조차 꿀 수 없었으리라. 나는 가끔, 내가 아무런 고난 없이 공부만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랬다면 책이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고뇌의 시간도 없었을 것이고, 그를 통한 성숙의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김형석 교수님이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낸 것을 보면서 여전히 책을 쓰고 강연하는 모습에 어찌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휴학 시절에 감동을 주고 인생을 풍성하게 해 준 김형석 교수님의 매력은 100세가 넘어서도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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