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로서 발표된 ‘워싱턴 선언’에 대해 국내적으로 긍정 혹은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선언의 내용은 북한의 점증하는 핵 위협에 대응해 확장억제력을 강화하는 조치로서 한·미 핵협의그룹의 설립·운용, 미국의 전략자산의 정례적인 한반도 전개 확대, 핵억제력 실행을 위한 연합훈련의 강화 등이다. 확장억제력을 강화하는 이러한 조치에 합의한 것은 현 상황에서 합리적 선택이라 평가된다. 합리적 선택이란 국가가 추구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용한 정책 옵션 중에서 이득을 최대화하고 비용이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옵션을 최종 정책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간 국내 정치권 및 학계 일부에서 주장해온 독자 핵무장 옵션은 여러 측면에서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이득보다 비용이나 손실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정상회담에서 입증되었듯이 미국 정부가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 핵무장을 결정하면 한·미 동맹에 균열 가능성이 있고 미국의 비확산 국내법에 따라 한·미 원자력 협력이 중단될 수 있다. 또한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 동기를 유발해 동북아에서 핵 군비경쟁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을 비롯해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반대할 것이다. 한반도 비확산을 지지해온 ASEAN, EU 회원국 등 주요 우방국들도 반대할 것이다. 미국의 반대로 유엔 경제제재가 부과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국, 러시아 등에 의한 독자적인 경제제재가 예상되는 등 치러야하는 비용이 얻게 될 이득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반면 확장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은 이러한 비용이나 손실을 유발하지 않고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옵션이다. 결국 독자 핵무장보다는 확장억제력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강화해나가는 것이 합리적 정책이다. 물론 향후 합의한 확장억제력의 강화 조치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방안들을 한·미 안보협의회의와 핵협의그룹을 통해 마련해나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러한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선언에는 한·미 양국의 공식적 정책목표인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 예컨대 북한에 대해 핵문제 관련 대화 재개를 위한 제안이나 조건 제시 등에 관한 내용이 없는 것은 한계이자 문제다. 확장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동시에 모색해야 하는데 말이다. 현재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적지만 비핵화 목표를 견지한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중장기 외교적 해법도 한·미 양국이 협의해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 중국, 러시아, ASEAN, EU 등도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있는 점에서도 그렇다.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이를 위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핵무기금지조약이 발효되어 비핵화 국제규범이 국제사회에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약은 처음으로 핵무기의 개발, 보유, 사용 등을 전면 금지하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국제협정이다. 비핵 중견국들이 주도해 2017년 7월에 유엔에서 회원국의 63%인 122개국 찬성으로 체결됐다. 2021년 1월에 발효돼 현재 92개국이 서명하고 68개국이 당사국인데, 주요 중견국인 말레이시아, 브라질, 멕시코,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남아공 등도 당사국이다. 물론 핵보유국들과 핵우산 하에 있는 국가들 대부분이 가입하고 있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조약이라 비판받고 있지만 이 조약을 통해 비핵화 규범이 성문화되고 점차 확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조약의 제4조는 핵무기보유국이 조약에 가입해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절차들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수 있게 되면 이 조약에 남북한 동시 가입하여 비핵화를 추진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다자주의 외교 해법은 한국이 중추적 중견국으로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비확산을 넘어 비핵화 규범을 촉진하고 확산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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