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는 두 개의 ‘명예’ 자가 들어가는 제도가 있다. ‘명예퇴직’ 제도와 ‘명예교수’ 제도이다. 둘 다 ‘명예’ 자가 들어가지만, 전자는 정년까지 이르지 못하고 조기에 그만두는 것이기에 그다지 ‘명예’롭지 않지만, 후자는 정년 이후에 그동안의 공적을 높이 사 예우 차원에서 추대하는 것이기에 ‘명예’롭게 여겨진다.

교수는 65세에 정년을 맞이한다. 올해는 1958년생 교수가 그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교수는 퇴직을 하면 공식적으로 대학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그러나 일부는 명예교수로 추대되어 일정 기간 교육이나 연구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연구실이나 실험실 등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명예교수 제도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학문 후속 세대의 길을 막는다”며 반대하지만, “재직 기간 실적이 검증된 교수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연구 능력이 출중한 교수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연구’란 것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도 어렵고, 축적된 경험이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주장도 일면 타당하다. 정년이 60세인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는 능력 있는 연구원들이 너무 이른 시기에 퇴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수연구원 정년연장제도’와 ‘정년 후 재고용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카이스트에서 지난해와 올해 ‘정년후교수’를 선정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카이스트의 ‘정년후교수’ 제도는 현행 ‘명예교수’ 제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들은 65세 정년이 돼도 퇴직하지 않고 70세까지 근무하며 교육과 연구를 할 수 있다.

카이스트의 ‘정년후교수’ 제도는 교수사회에 경쟁문화를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국 대학 교수사회는 경쟁이 치열하다. 정년트랙과 비정년트랙으로 나눠지는 교수사회에서 정년트랙으로 들어온 교수는 종신교수(Tenured professor)로 진급할 수 있다. 단 모든 교수가 정년까지 간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 대학 교수는 조교수, 부교수, 종신교수로 직위가 나뉘는데, 조교수는 매년 심사를 받고 6년째에 부교수로 승진할 기회를 얻는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대학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6년째 되는 해 부교수로의 승진은 의무 사항이라 만약 승진이 안 되면 ‘대부분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미국 대학은 일반적으로 정년퇴직 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는 교수에게 정년을 부여하는 대신, 장기적인 계약과 성과 평가를 기반으로 재계약을 결정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이로 인해 교수들은 일정 기간 계약을 갱신하거나 은퇴하지 않고 연구와 교육에 계속해서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교수들의 학문적 자유와 연구 열정을 유지하면서 대학의 학술적 품질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미국의 경우 교수는 능력에 따라 대접이 달라진다. 한마디로 경쟁적 대학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경우는 다르다. 대학 간 교수 유동성이 제한적이고 교수사회는 본질적으로 경쟁이 불필요한 불경쟁사회이기 때문에 교수 능력의 차이로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년트랙 교수로 임용된 교수는 일정 조건만 충족되면 정년보장교수가 되기 때문에 굳이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나서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금번 카이스트의 ‘정년후교수’ 선정은 철밥통과 다름없었던 우리 교수사회에 자그마한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그것도 ‘향후 실적이 기대되는 61~65세 교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재직 교수들에게 주는 의미도 클 것이다.

‘정년후교수’로 선정된 26명 중 정년퇴직교수는 7명이다. 이들은 현직 교수 때와 마찬가지로 연구실과 실험실습실을 제공받고 석·박사 학생들을 지도한다. 물론 학교 보직도 맡을 수 있다. 이들은 연구과제 수주 등을 통해 급여를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나 카이스트 평균치를 적용해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아직 미국식 ‘정년 없는 교수’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시도 자체가 좋다. 대학 위기의 시대, 교육혁신의 꽃은 교수다. 연구 능력이 출중한 교수는 그 자체가 대학 경쟁력이다. 카이스트의 선구적 시도가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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