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왜 일본에 두지 않고 바다에 방류하려 하는가?” 

남태평양 피지공화국의 피오 티코두아두아 내무장관이 지난 3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일본의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에게 공개적으로 비판한 말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에 노출된 섬나라들은 지구 환경문제가 안보와 직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바다 방류에 신경이 곤두선 태평양의 섬나라들은 피지, 파푸아뉴기니, 쿡, 솔로몬제도, 퉁가 등 14개국으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회원국들이며 포럼에 호주와 뉴질랜드도 참여하고 있다. 

PIF 회원국들은 핵물리학과 해양학, 생물학 등 각 분야별 국제 과학자들로 구성한 자문연구단이 1년 동안 검증한 결과를 바탕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정화 처리로도 안전성이 불확실하다며 방류 연기를 촉구한 상태다. PIF 회원국들보다 후쿠시마에 훨씬 더 지근거리에 위치한 한국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의 대응은 PIF에 비해 터무니없이 안이한 모습이다. 미국 일본과의 안보동맹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를 덮어버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중국-아세안 등 태평양연안국 공동대처해야 할 지구환경 문제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보고서가 나오면 6월 중에 원전 오염수의 방류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130만t 이상의 대규모 방사성 오염수를 30~40년에 걸쳐 바다로 방출하는 초유의 일이 개시되는 것이다. 이는 지구환경 문제지 핵개발 사찰업무가 아니다. 특히 일본과 근접한 태평양 연안국들인 한국, 중국, 아세안, 그리고 PIF 회원국 등 피해예상 당사국들이 앞장서 공동대책기구를 조직해 대처해야 한다. 피해당사국들과 함께 객관적 입장의 유엔환경계획(UNEP)을 위시해 글로벌 ESG 기구가 나서 조사 검증해야 할 시대적 환경문제라 할 것이다.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1986년 4월 체르노빌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향후 문제해결 방안을 찾는데 참고가 된다. 둘다 국제원자력사고 등급(INES) 중 최고 위험단계인 7등급을 받았다. 체르노빌 원전은 현재 방출되는 방사능 물질을 차단하기 위해 석관을 만들어 원자로를 봉인한 상태로 2000년 완전 정지됐다. 그러나 후쿠시마는 아직 원자로의 노심을 완전히 냉각시키지 못했으며 여기서 지속적으로 소량의 방사성 낙진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이 완전히 멈추는 냉각 정지(Cold Shutdown) 상태까지는 20년 정도가 더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체르노빌에서 러시아 당국은 긴급 비상조치로 헬기를 동원해 원자로 상부에 수천톤의 붕소와 납, 진흙과 모래 등을 투하해 화재를 진압하고 방사능 누출을 막았다. 화재 진압 후 10층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사고 원전의 잔해를 둘러싸는 공사를 벌여 11월경 완공했다. 원전 방사성 물질을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어 씌워 그 자리에 동결시켜 놓은 것이다. 후쿠시마의 경우 그 자리에 덮어 씌우려 하지 않고 자국 바깥의 바다로 내보낼 방안만 모색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대지진 외에 인재 요인이 상당히 발견된다. 원전의 비상발전기는 고지대에 설치돼 문제가 없었으나 변전 설비를 건물지하에 설치해 놓아 침수됐고 냉각수를 공급하는 순환펌프에 대한 전력공급이 중단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일본과 같이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섬나라에서 변전 설비를 지하에 설치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도 인재 요인으로 보인다. 

변전 침수로 노심 냉각을 위한 필수적인 전기가 끊기자 원자로는 한계온도인 1200도까지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때 긴급하게 바닷물이라도 끌어와서 원자로를 냉각시켰다면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당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해수를 원자로에 투입하는 순간 원자로는 폐기처분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었다. 원자로 건설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점을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이는 그 비용을 훨씬 뛰어넘는 원자력 사고의 천문학적 피해를 생각하지 않은 소탐대실적 판단이라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구환경 보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ESG 경영에 반하는 태도였다.

정화설비 후에도 오염수 대기 중 증발 등 투명성과 신뢰 손상 드러나
도쿄전력은 오염수 정화설비인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의 관리 운영에서도 실수를 범한 것으로 나타났다. ALPS는 1차로 2013년 3월 도시바 제품이 출시됐으나 도쿄전력 측의 부실한 운영이나 미흡한 관리감독으로 인해 오작동이 발생하고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나 루테늄이 걸러지지 못했으며 방사능 물질의 흡착제 등의 폐기물도 배출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주변에서는 요오드, 세슘, 텔루륨, 루테늄, 란타넘, 바륨, 세륨, 코발트, 지르코늄 등 온갖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 원전 부지 토양에서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과 골수암을 일으키는 스트론튬이 검출되기도 했다. 이런 방사능 물질이 지구자전으로 인한 편서풍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돼 미국, 유럽,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검출됐다.

후쿠시마에서 ALPS가 가동된 후에도 2021년 9월 오염수가 대기 중으로 증발하지 않도록 막는 필터 25개 중 24개가 망가진 상태였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당시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진흙을 보관하는 전용 용기에 딸린 배기구의 필터가 손상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도쿄전력도 필터손상으로 방사성 물질이 공기 중에 유출됐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필터 손상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9년에도 필터 25개가 모두 망가졌는데도 도쿄전력은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고 필터만 교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명성과 신뢰의 문제인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을 지지하는 IAEA는 오염수의 대기 중 증발 문제는 일본 정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처리할 일이지 IAEA가 알 바 아니라는 입장이다. IAEA는 일본인 아마노 유키야 사무총장이 2009~2019년 11년 동안 재임했으며 3연임 중 사망했다. 일본의 영향력이 큰 기구라 할 수 있다.

일본이 2019년 한국정부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에 대해 불공정 교역으로 WTO에 제소한 것은 오염수 방류를 둘러싸고도 ‘적반하장’ 행위로 재연될 소지가 크다. 1심에서 한국이 패소했지만 2심에서는 역전 승소했다. 당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위험요소를 최대한 낮추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는 초당적인 국가 의무에 속하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질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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