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기본역량제도에 칼 빼든 교육부 “2025학년도부터 새로운 평가체제 도입”
대교협, 기관평가인증의 “대학의 발전을 유도하는 방향으로의 전환” 시사
정성지표 배제한 절대평가로 진행되는 ‘재정진단’…경영위기대학에 컨설팅 시행
예고된 대학의 위기…계류 중인 ‘사립대학 구조개선’ 관련 법에 따라 대응 달라져

지난해 11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대학기본역량제도 폐지 등 교육정책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사진=교육부 제공)
지난해 11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대학기본역량제도 폐지 등 교육정책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사진=교육부 제공)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결된 대학 등록금은 대학 재정 위축을 불러왔고, 빠르게 감소하는 학령인구는 대학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이와 함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간의 격차를 만들어 지방 중소대학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가체제 변화부터 규제 완화, 법령 정비 등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와 공동기획을 통해 ‘대학 위기 해소를 위한 고등교육 대전환’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현재 대학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 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대학기본역량진단 폐지와 새로운 평가체제
② 대학 생태계와 구조조정의 전망과 과제
③ 대학재정 운용의 자율성 확보와 수입구조 다각화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제9차 대학기본역량제도 개선협의회’를 개최해 ‘대학기본역량진단’을 폐지하고 대교협·전문대교협의 기관평가인증과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재정진단을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2015년부터 3년 주기로 실시되던 ‘대학기본역량진단’이 폐지되고 2025학년도부터는 새로운 평가체제가 도입된다.

이는 그간 지속적으로 건의했던 대학들의 건의를 교육부가 받아들인 조치로, 지난해 대교협 세미나 총장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4.3%가 가장 개선이 필요한 고등교육 정책으로 ‘대학 재정지원 평가’를 꼽은 바 있다.

당시 한 사립대 총장은 “처음 도입 당시 대학 평가의 목적은 대학의 기본기를 갖출 기회를 주고 인프라를 지원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면서도 “같은 기준으로 반복하다보니 근본 취지보다 얼마나 보고서를 잘 쓰는지 싸움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전국 대학의 기본적 교육역량을 진단해 일반재정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평가로, 평가 대응을 위한 대학 역량 소모 과다와 정부 주도의 획일적 평가로 대학별 여건과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등 현장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교육부는 ‘대학기본역량진단’은 2021년(2021년~2024년)을 마지막으로 폐지하기로 하고, 2025학년도부터는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재정진단에 따른 경영위기대학과, (전문)대교협의 기관평가인증에서의 미인증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일반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 변화 예고한 대교협 ‘4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 = 대교협이 주관한 1~3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은 대학의 질 제고를 유도하고 확보하는 데 이바지했다. 특히 전반적인 제도와 시설과 같은 대학 교육의 기본적 여건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평가위원으로 활동한 A 교수는 “평가 초기 강사료를 시간당 4만 원 이상으로 맞춘 사립대가 거의 없을 정도로 투자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던 대학들이 평가인증을 받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평가하며 대학을 서열화하지 않고 대학 스스로의 개선·발전을 유도한다는 평가인증의 당초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평가인증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대학기관평가인증은 대학의 최소요건 충족 여부를 판정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자연계열 교수 계열 비율(연구성과), 예체능계 학생 비율(취업률) 등 일부 지표에서 제한적으로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는 등의 한계를 지녔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대교협 관계자는 “과거 실적을 중심으로 한 평가에서 (이제는) 미래 계획을 평가해 대학의 발전을 유도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신입생 충원율, 도서관 직원 수 등 시대 상황, 환경 변화에 맞는 평가지표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교협은 4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을 앞두고 대대적인 변화를 꾀할 예정이다. 우선, 대학의 특성 반영을 위해 대체 준거를 마련해 대학의 특성화를 유도하고 규모와 특성에 상관없이 모든 대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인증 판정 유형은 기존의 ‘인증 – 조건부 인증 – 인증유예 – 불인증’ 4가지 판정 유형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소규모 종교계 대학 등의 적극적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사전 컨설팅 등의 방안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는 물론, 평가 영역 및 준거 개선도 추진한다. 특히 실효성이 없는 교사 확보율 등의 준거와 요소들을 삭제 혹은 대체하고, 충원율과 같이 고등교육 여건 변화에 민감한 평가 준거들의 기준값 설정 방법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대학 특성에 따른 대체 준거를 도입하고 국제적 통용성 확보를 위한 교육선진국 인증평가의 평가 준거를 검토해 반영한다. 이를 위해 대교협은 오는 11월까지 평가지표 개선 및 편람 개발 연구를 마무리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내년 4~5월 중 4주기 기준 및 운영(안) 및 편람을 확정할 계획이다.

한편, 대교협의 대학기관평가인증이 선수가 심판을 보는 것과 같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안세근 한국대학평가원장은 “대학기관평가인증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며 “사전에 충분히 준비한 대학에서도 인증 유예나 불인증 등의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라고 반박했다.

■ 대학의 생사 여탈권 쥔 한국사학진흥재단 ‘재정진단’ =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 폐지로 인해 대학들의 눈길은 대교협의 ‘대학기관평가인증’과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재정진단’으로 쏠리고 있다. 특히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재정진단’의 경우 대학의 생사 여탈권을 쥔 평가로 꼽힌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은 대학이 별도의 자료 제출할 필요가 없는 결산서상 재무정보를 기반으로 재정진단을 실시하고 있다. 재정위험 수준을 파악해 경영위기대학을 지정하는 방식이다.

대학의 재무정보를 바탕으로 운영손실, 예상운영손실의 보전 유무, 운영비 부담여력 등의 8개 정량지표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진단하는데, 진단 대상은 「사립학교법」 상의 대학, 전문대학, 산업대학, 사이버대학, 기술대학 등이다. 경영위기대학 지정은 (전문)대교협 평가인증과 동일하게 일반대학, 전문대학, 산업대학으로 한정하고 있다.

재정진단은 교육 관련 정성지표를 배제한 절대평가로 진행된다. 신입생 미충원율을 고려한 예상운영손익 측정을 통해 운영비의 재정적 부담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결산서를 미제출하거나 임금 체불 등의 대학에 대해서는 별도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재정진단 체계도. (자료=한국사학진흥재단)
재정진단 체계도. (자료=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사학진흥재단은 2025년 본사업을 대비해 올해 상반기에는 예비경영위기대학으로 지정된 대학(30개교, ‘21회계연도 결산 기준)와 재정건전대학 중 경영위기예상대학(10교 내외)을 대상으로 재정여건 개선을 위한 컨설팅을 실시할 예정이며, 하반기에는 예비경영위기대학(’22회계연도 결산 기준)으로 신규 진입한 대학에 대해 진단컨설팅을 추가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시범재정진단과 진단컨설팅 결과를 전체 대학에 안내해 대학이 활용하도록 설명회를 개최하고, 사례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 속출 예상되는 ‘한계대학’…회생 및 퇴로 방안은 = 2025년부터 대학 평가 기준으로 활용될 (전문)대교협의 기관평가인증과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재정진단은 결국 한계대학에 대한 선별 준거로 활용될 전망이다.

현재 대학가에서는 학령인구의 급감 추세에 따라 대학 입학정원 미충원 및 사립대학의 재정위기를 예고된 상황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회생이 어려운 대학에 대한 퇴로 제공과 회생 가능한 대학에 특례 적용 등 과감한 구조개선이 요구된다.

현재 국회에는 이태규 의원, 강득구 의원, 정경희 의원이 발의한 ‘사립대학 구조개선’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세 가지 안 모두 실태조사와 특례적용 등에 대한 이견은 없지만 재정진단과 경영위기대학 지정, 구조개선 이행요구 주체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대학이 폐교하거나 해산할 경우 이태규·강득구 의원 안은 경영위기대학 폐교·해산에만 특례를 적용하지만 정경희 의원 안은 자진해산 경우에도 요건을 충족하면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태규 의원, 강득구 의원, 정경희 의원이 발의한 ‘사립대학 구조개선’ 관련 법 비교. (자료=한국사학진흥재단)
이태규 의원, 강득구 의원, 정경희 의원이 발의한 ‘사립대학 구조개선’ 관련 법 비교. (자료=한국사학진흥재단)

여기서 특례는 재산처분 시 「사립학교법」의 재산처분 기준과 통폐합 시 「대학설립·운영규정」의 교사·교지·교원·수익용기본재산·정원 기준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 구조개선을 위한 대학 간 학부·학과, 정원 등의 (일부)양도·양수, 잔여재산 일부를 공익법인 및 사회복지법인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하는 안들이다.

변인영 한국사학진흥재단 대학구조개선지원센터장은 “한계대학과 관련된 조치들의 선결과제는 법안 통과”라며 “어떤 법안이 통과되느냐에 따라 한계대학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사립대학 구조개선 지원사업은 ‘사립대학 구조개선을 통한 경쟁력 있는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에 목적이 있다”며 “재정진단을 통한 한계대학 지정보다는 한계 사립대학의 회생가능성 제고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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