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대학30’ 신청 접수가 지난달 31일 마감됐다. 총 108개교가 지원한 가운데 통합 의사를 밝힌 대학이 27곳에 달했다. 공동 신청의 유형은 △국립대+국립대(4건, 8교) △국립대+공립전문대(1건, 2교) △사립 일반대+사립 일반대(1건, 2교) △사립 일반대+사립 전문대(7건, 15교) 등이었다.

교육부는 신청 대학들의 계획서를 토대로 예비평가에 들어갔다. 평가 기준은 계획서에 담긴 혁신성(60%), 성과관리 역량(20%), 지역적 특성(20%)이다. 혁신성이 선정 여부를 좌우한다. 혁신성에는 ‘혁신의 비전과 목표는 기존 대학운영의 틀을 넘어 과감하고 도전적인가’, ‘대학 안·밖, 대학 내부(학과 교수)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혁신적인가’ 하는 평가 주안점이 제시됐다.

예상외로 많은 대학이 통합의지를 보임으로써 최종 선정에 이르기까지 경쟁이 치열하게 됐다. 이들 대학들은 일단 혁신성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는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보여줬다. 시도 자체가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고등교육체제를 변화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교육부는 최근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이 통합할 경우 경쟁력 있는 전문대학 전공을 그대로 운영해 통합 대학에서 전문학사 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기능적 측면에서 학문연구를 위주로 한 일반대학에 직업교육과정인 전문학사 과정을 허용하는 자체가 매우 혁신적이다.

한국의 고등교육체제는 대학별 ‘특성화’보다는 ‘동종화’, ‘획일화’된 특징을 보인다. 대학 서열화 문제도 심각하다.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이 수여 학위와 교육 목적에 따라 운영되고 있으나 2000년대 들어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이 블러링(bluring)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산업환경 변화에 발맞춰 전문대학에 유연한 학사운영 기회를 제공해왔다. 2001년 수업연한 3년제 도입, 2011년 전공심화과정을 통한 학사학위수여, 2021년 마이스터대 전문기술석사과정 인가 등이 이뤄졌다, 마이스터대학으로 인가받은 전문대학은 6개월, 1년 단기교육과정도 개설 운영할 수 있다. 마이스터대학은 단기 교육과정을 통한 자격증에서 전문학사, 학사, 전문기술석사까지 다양한 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됐다.

일반대학에 전문학사 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정책변화와 맞물려 고등교육체제 변화의 시그널로 볼만하다. 이른바 학위과정의 블러링(bluring)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은 학과 편제에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확보가 어려워진 일반대학에서 전문대학 영역으로 간주돼 왔던 보건의료계열 학과를 앞 다투어 개설하기 시작했고, 일반대학의 관심 밖이었던 뷰티, 실용음악, 애견관리 등 인기 많은 학과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수여 학위나 개설학과만 보면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의 경계는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임후남, 조옥경 2021)에서는 “이제까지의  대학 내 학문주의 대 직업주의(실용주의) 논쟁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으며, 특히 보편화된 고등교육 단계에 돌입한 현 상황에서 어느 하나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연구진은 “현재 고등교육체제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고, 이미 고등교육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수업연한을 기준으로 대학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것을 반영한 것이다. 4년제 일반대학 중심의 구조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시대에 뒤떨어진 수업연한을 기준으로 한 고등교육체제는 이미 생명력을 다했다. 미래 시대에 걸맞는 유연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고등교육체제의 일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전수학교 등 직업교육기관의 학력인정과 함께 전문직대학 제도를 새로 만들어 고등직업교육 혁신에 나섰고, 대만의 경우에는 과학기술대학 제도를 도입해 일반대학과의 차별화된 직업교육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기존에 있는 고등교육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이를 반영한 고등교육체제 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의 과감한 벽허물기 정책이 오랫동안 교육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고등교육체제 전환까지 이어지기 바란다. 

‘전문대학이 수여하는 학위 종류의 다양화’와 ‘일반대학의 직업교육기관화’는 어제 오늘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 20여년간 대학이 선택하고 정책으로 뒷받침해온 결과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학 안팎 허무는 혁신적 대학 전폭 지원’ 지시를 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종합적인 고등교육발전방안을 만들어 고등교육체제의 혁신적 전환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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