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전국 기준 18.5%(닐슨코리아 제공)의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종영됐다. 넷플릭스에서는 전체 순위 5위, 비영어권 순위 2위를 차지했으며 누적 시청 시간 1억 5000시간(6월 11일 기준)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넷플릭스 오늘의 시리즈 부문에서 4위를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의학 드라마가 아니다. 긴박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고군분투와 인도주의를 다룬 의학 드라마의 성공 방식이 반영된 드라마는 더욱 아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병원과 의사라는 직업은 무대이자 소재일뿐 주제는 아니다. 차정숙이라는 중년의 한 여성이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차정숙은 의과대학 재학 중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낳고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대학을 마쳤다. 그러나 첫째 아이의 교통사고와 둘째 아이 출산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더 이상의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를 졸업하고도 레지던트 과정을 포기한 것이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차정숙은 결혼 후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자신의 일을 버리고 집안에 주저앉게 됐다. 그렇게 20년의 시간이 흐르고 중년이 된 차정숙은 생명을 위협받는 건강 악화, 남편의 외도 등 자신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여러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혼란을 마무리하고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젊은 시절 포기했던 레지던트 과정에 대한 도전이었다. 46세 늦은 나이에 레지던트를 시작한 차정숙에게 다시 힘든 위기가 닥치지만 결국 차정숙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던져진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필자는 여성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가 중년의 늦은 나이에 경력단절을 극복하고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써나가는 차정숙의 인간승리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미래를 선택하는 당당한 결말에 있다고 생각한다. 차정숙은 용서를 빌며 매달리는 남편과 단호하게 이혼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젊고 잘생긴 닥터 로이킴에게도 기대려고 하지 않는다.

2022년 통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는 혼인, 임신·출산, 육아, 가족 돌봄 등의 사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한 경력단절 여성들이 140만여 명으로 기혼 여성의 17.2%에 이른다고 한다. 경력단절의 사유 1위는 육아(42.8%)이고 2위는 결혼(26.3%)이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30대와 40대 여성의 경력단절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으로 합계 출산율이 0.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나라이다. 2012년 1.3명에서 불과 10년 만에 38.5%가 줄어드는 급속한 감소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2012년 48만 4550명이던 출생아 수도 2021년 26만 562명으로 45.9% 줄어들었다. 대학 진학률을 현재 수준인 70% 정도로 예상하고 계산하면 2021년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040년에는 당해연도 고교 졸업생만을 기준으로 보면 대학 진학자 수가 18만여 명에 그치게 된다. 현재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합친 입학정원이 36만여 명(2022년 기준)인 것을 고려하면 대입 정원을 절반가량 줄여야 수요와 공급이 맞게 된다.

이미 많은 대학은 모집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전문대학에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 전문대학은 19~20세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입학생을 채우는 전략을 포기했으며, 충원 전략의 하나로 평생교육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도 한참이 됐다.

불돈안목(佛眼豚目)이라고 했던가.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보면서 50대 중반인 엄정화 배우의 맛깔 나는 열연에 대한 감탄과 함께 차정숙처럼 이런저런 사유로 경력이 단절된 중년의 여성들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녀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전문대학이 자처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어려움을 일부라도 덜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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