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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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만난 대학 삼수생 A양에게 질문했다. “너의 꿈이 무엇이니?”
A양이 대답했다. “의사예요.”
필자가 다시 물었다. “아니 직업 말고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A양은 의아한 듯이 필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에요.”

A양은 필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제까지 선생님이나 전문가들이 꿈을 이야기하면서 모두 ‘직업’을 꿈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직업을 꿈이라고 하는 것은 일면 맞다. 하지만 ‘직업’만을 꿈이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다. 또한 직업은 늘 변할 수 있고 사라지거나 여러 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청소년 진로를 지도하면서 가장 먼저 꺼내는 화두는 원하는 대학이나 전공이 아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의 수준이다. 자신이 40세 전후가 됐을 때 누리고 싶은 삶의 수준을 꿈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경제적 수준을 포함해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를 포함한다. 또한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취미를 갖고 싶은지, 어떤 배우자와 살면서 가족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 포함한다. 그리고 어떤 여유를 갖고 싶은지도 포함한다. 이런 것이 필자가 청소년에게 말하는 꿈이다.

이제까지 직업을 꿈으로 생각했다면 지금부터는 자신이 누리고 싶은 삶을 구상하는 것을 꿈이라고 하자. 그리고 그런 삶을 누리기 위해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고 노력해 그 직업을 갖도록 하자. 이렇게 할 때 제대로 된 꿈을 갖게 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직업을 고민하게 된다. 직업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고 대학은 그 도구를 만드는 과정이 된다. 그러면 대학 진학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자신이 구상한 미래를 만드는 과정 중 대학과 전공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지 말라고 하고 싶다. 대학과 전공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며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는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꿈을 직업으로 한정하면서 대학과 전공에 과도하게 매몰되면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다. 지금은 평생학습의 결과로 직업이 결정되고 바뀌는 평생학습의 시대가 됐다. 그런 관점에서 과거의 전공보다 살아갈 기회를 주는 전공을 배울 수 있는 학습력(Learning ability)이 더욱 중요하다.

청소년 시절에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구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과 전공만을 생각하면서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일반대학에 입학한 학생 중에서 약 70%의 학생이 자신의 전공에 대해 후회를 한다는 통계는 해마다 나오고 있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에 생각했던 것과 실제 현실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또 대학과 전공이 삶의 과정으로 거쳐야 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이 이루어야 할 목표로 보았기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진로를 설계하거나 선택할 때 ‘어느 대학 무슨 전공을 할 것인가?’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삶을 구상해야 한다.

미래의 삶을 구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상담한 A양은 미래를 구상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다. 단순하게 ‘대학과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도록 도왔을 때 A양은 자신이 누리고 싶은 삶을 구상했다. 그리고 표정이 밝아졌다. A양은 인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은 것을 기뻐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쉽게 설계했다. 그녀는 자신이 진학해야 할 대학이 의대가 아니라고 했다. 의사가 되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대학과 전공은 미래의 삶을 위한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청소년은 대학 이후의 삶과 자신의 모습에 대한 것을 먼저 그려야 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면 구도를 잡고 스케치를 먼저 하듯이 조각가가 돌멩이를 앞에 놓고 그 돌멩이 안에 있는 조각상을 찾아내듯이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미래 모습을 구상할 수 있어야만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화가가 스케치한 화폭에 자신만의 터치와 색감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조각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습대로 돌멩이를 깨서 조각을 만들 듯이 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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