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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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와 다른 부처 간 ‘인사 교류’ 형태로 국립대 사무국장을 임용하는 것을 강하게 질타했다. 통상적인 비판이나 지적을 넘어 언론을 통해 ‘짬짜미’라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로 발언 강도가 세다. 교육부는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임용한 타 부처 공무원들을 즉시 소속 부처로 복귀하도록 했다. 인사 교류로 파견 나갔던 교육부 공무원 14명도 즉각 돌아오도록 조치했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일이다.

대통령은 최근 교육부를 겨냥해 비판, 업무 지시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관련해 이른바 ‘킬러 문항’ 출제를 두고서는 “교육 당국과 사교육이 한통속(카르텔, cartel)이냐”는 말까지 나왔다. 학생들이 도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를 출제하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교육 관계부처를 싸잡아 ‘카르텔’ 집단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고강도 발언이다.

대통령의 수능 발언 직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개를 숙였다. 교육부에서 대입 업무를 맡았던 담당 국장(인재정책기획관)은 대통령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사유로 대기발령 됐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장은 사표를 냈다. 사실상 경질이다.

교육부를 겨냥한 대통령의 비판이 계속되는 것은 그간 교육 개혁이 지지부진했던 주원인이 교육부라는 부정적 시각이 강한 탓이다. 윤 대통령은 ‘교육’을 ‘연금’ ‘노동’과 함께 3대 개혁 과제로 꼽을 만큼 교육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쳐왔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이 폐지됐고, 교육부의 고등교육 예산·정책 권한 일부를 지방정부에 이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 같은 ‘교육부 힘 빼기’는 이것이 곧 교육 개혁과 무관치 않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깔린 탓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수능 발언과 국립대 사무국장 임용 지적 역시 ‘교육부 힘 빼기’ 기조가 대통령실 내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메시지다. 제도 개선을 지시했지만, 교육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불이행한다면 언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교육부가 먼저 교육 개혁 선봉에 서지 않는다면, 대통령 말을 빌려 “그렇지 않으면 교육부를 없애겠다”는 마지막 경고를 날린 셈이다.

대통령의 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 즉 명분은 옳다. 그간 교육부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 했지만, 여태껏 교육계가 교육부를 향해 말해왔던 메시지가 지금 윤 대통령이 교육부에 던지는 업무 지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상황을 두고 교육계에선 대통령의 말에 언뜻 동의하기 힘들다는 모양새다. 교육부를 겨냥해 지적하는 대통령실의 접근이 틀렸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풀 수 있는 문제를 수능 문항으로 출제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느닷없이 해야 했었냐는 지점에서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이 격노하며 ‘킬러 문항’이라고 수능 6월 모의평가 국어 비문학 문항을 지목했지만, 정작 채점 결과에선 국어가 가장 쉬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대통령을 화나게 한 ‘킬러 문항’은 어떤 문제들을 말하는지 명확한 기준도 제시하지 못했다. 정체는 모르지만 이름은 ‘킬러 문항’이라는 명존실무(名存實無)의 그것이 아무튼 시험에는 안 나온단다. 수능을 코앞에 둔 시점에 수험생만 분주해졌다.

국립대 사무국장 임용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내부 공무원을 사무국장으로 보내면 총장이 눈치를 보게 돼 대학 자율성을 해친다는 지적은 응당하다. 다만 권위주의를 타파하겠다고 대통령이 교육부만 막는 것은 그것 자체로 또 다른 권위주의가 아닐지 되묻게 된다. 사무국장은 대학에서 예산, 직원 인사 등 행정의 핵심이다. 학교로 치면 행정실장인데, 국공립학교 행정실장은 교육청 공무원이 임용된다. 대학의 독립성을 보장하려 했다면 사무국장의 권한을 제한하면 될 일이다. 대학에서 교육 행정 전문성을 발휘하는 데엔 교육부 공무원이 적합하다.

더구나 언론 보도가 나온 뒤 대통령실에서 교육부가 마치 대통령 지시에 항명했단 듯이 반응한 것도 적절하지 않다. 교육부가 타 부처와 인사 교류를 통해 사무국장을 임용한 것은 내부적으로 은밀히 이뤄진 게 아니다. 정부에서 사무국장에 교육부 임용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하자, 내부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서 이미 지난해 공개적으로 밝히고 진행된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이 이제야 이를 ‘짬짜미’라고 지적한 것은 정부 스스로 정책 신뢰도를 깎아내린 꼴밖에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요즘엔 이를 줄여서 ‘중꺾마’라고도 쓴단다.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요즘엔 ‘나꺾마’라는 말도 있단다. ‘나이가 들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줄인 것이라는데, 이른바 고집스러운 꼰대를 비꼬는 표현일 것이다. ‘중꺾마’와 ‘나꺾마’의 차이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respect)이다. 존중이 있는 자기 의지는 ‘명분’이 되지만, 존중 없는 의지는 ‘아집’이 된다.

존중(respect)의 어원은 ‘다시(re)’ ‘본다(spec)’라는 뜻이다. 처음 봤을 때, 처음 들었을 때, 처음 알았을 때보다 여러 번 다시 보고, 듣고, 알게 되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존중은 그런 것이다. 호들갑 떨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그 정도로 큰일이 아니었던 때가 많다.

대통령 수능 ‘킬러 문항’ 발언 직후 경질된 교육부 대입 국장은 그전에 국립대 사무국장이었다. 정부에서 사무국장에 교육부 공무원을 가지 못하게 한 조치로, 대기발령 됐고 대입 국장을 맡게 됐다. 하지만 대통령의 수능 ‘킬러 문항’ 발언이 나오며 또다시 대기발령 된 것이다. 개인적으론 정부에서 대입 국장 경질을 사유까지 들어가면서 공개적으로 밝힐 것까지 있었나 싶다.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존중이 부족하다.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소신 있는 모습, 그것 자체로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특히 윤 대통령의 굳은 의지에 교육 개혁이 포함돼 있으니 더욱 환영할 일이다. 또한 대통령의 교육 개혁이 바꾸는 것이지, 없애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대통령께 묻는다. “교육부를 존중(respect)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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