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범 교육평론가
경쟁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올바른 정책 세울 수 있어
“인서울 사립대에도 지원금 주는 상향 평준화 필요해”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대중의 체감과 엘리트의 체감은 다르다. 계층 이동이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학생부종합전형을 지지하는 교육계 엘리트와 경쟁과 사교육에 대한 부담에 지친 대중 사이에 간극이 있다”

한국 교육을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이범 교육평론가는 최근 터진 교육계 이슈들에 대해 “제도 이전에 경쟁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며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 인기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 인기 학과에 대한 경쟁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범 평론가는 메가스터디 창업 멤버로 1세대 과학탐구 ‘1타 강사’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이후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부원장 등을 지내며 사교육과 공교육, 정치의 영역까지 종횡무진하며 활약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이범, 공부에 反하다(2006)》 《이범의 교육특강(2009)》 《우리교육 100문 100답(2012)》 《문재인 이후의 교육(2020)》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교육계의 문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왔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말뿐인 지적이 아니라 비판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교육적 이슈들을 공론장으로 끌고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시선으로 본 한국 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오는 10월 영국 유학을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지난 1일 메디치미디어 사옥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사교육 카르텔’ 언급 등으로 입시와 관련된 많은 부분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입시 관련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포인트를 ‘입시’가 아니라 ‘경쟁’에 놓고 봐야 한다. 한국의 교육 경쟁은 대략 1990년대까지가 ‘출세경쟁’이었다면 지금은 ‘공포경쟁’의 비중이 더 크다. 한국의 치열한 교육 경쟁은 상위 서열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교육 경쟁을 완화하려면 대학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실제로 고졸·대졸 간 임금격차보다 상위대학·하위대학 졸업자 간 임금격차가 유의미한 수치를 나타낸다. 한국의 4년제 대학을 5개 그룹으로 분류하면, 최상위 그룹 졸업자는 최하위 그룹 졸업자에 비해 취업 시 14.5% 높은 임금을 받고, 이 격차는 점차 벌어져 40~44세가 되면 46.5%가 된다. 고졸·대졸 임금격차 못지않은 차이가 출신대학 서열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경쟁에서 승리한 학생이 얻는 것은 금전적 보상이 다가 아니다. 더욱 ‘좋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더욱 ‘높은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는 학생 1인당 연간 5300만 원을 투입하고, 연세대는 3600만 원, 성균관대는 2700만 원, 중앙대는 1600만 원을 투입한다. 약간의 성적 차이로 인해 1년에 5300만 원짜리 훈련을 받을 기회와 1600만 원짜리 훈련을 받을 기회가 갈리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할 때 나타났던 능력 차이는 대학을 졸업할 때 더욱 증폭되고, 이후 임금격차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공포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 한 프로그램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을 두고 국내 엘리트와 일반 대중 사이의 인식 차이가 그 원인이라고 했다. 이렇게 분석한 근거가 무엇인지. 또 학생부종합전형이 경쟁과 부담을 심화시킨다면 우리나라에 적합한 입시 방법은 무엇인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은 초중등 교육계를 비롯한 엘리트는 학종을 지지하지만 광범위한 일반 대중은 학종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이전까지 대학에 가는 방식이 5종 경기였다면 학종의 도입은 10종 경기로 바뀐 셈인데, 취지가 좋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학종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늘어날수록 사교육을 비롯한 편법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즉, 경쟁과 부담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종이 부정적 제도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비교과만 보면 돈 많고 부모 조력이 있는 애들이 유리할 것 같지만 학종에는 내신도 들어간다. 우리나라 내신은 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상대평가로 평가하는데, 학생들의 체감 경쟁 강도는 높지만 내신 상대평가를 하면 골고루 뽑히는 효과가 나타난다. 가령, 대치동 일반고 4%나 지역의 4%나 똑같이 1등급을 받게 되고, 그 결과 골고루 뽑히게 된다. 결과적으로 학종으로 뽑으면 정시로 뽑은 것보다 계층 이동을 더 촉진시키는 효과가 난다. 문제는 이 효과와 부담 및 사교육은 다른 지표라는 점이다.”

- 어떤 점이 문제라고 보는지.
“이 부분은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학부모이고 자녀가 대입을 준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자녀는 자녀대로 부담 속에서 경쟁을 하고, 사교육에도 많이 투자했는데 저소득층이 좀 더 좋은 대학에 많이 간다면 이게 과연 좋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과정은 불합리하고 부담이 큰데 그 과정의 결과 계층 이동이 촉진된다면 이것을 우리가 수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대중은 부담과 사교육 문제가 더 컸기 때문에 학종보다는 정시 확대를 원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학종은 공교육 개선 및 계층이동 촉진이라는 점에서 유리하다는 명확한 명분이 있고, 정시는 부담과 사교육 경감이라는 명분이 있다. 이게 현재 우리나라 입시에서 균형점이라고 본다.”

- 미국식 입시나 유럽식 입시를 도입하면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는가.
“우리나라는 별의별 입시를 다 해봤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미신이다. 진정한 미국식 입시, 유럽식 입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사교육 대란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식 입시처럼 수능을 논술형 문항으로 바꾼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초중등 교육도 따라서 변하게 될 텐데 이렇게 바뀌면 개별지도가 필요해진다. 공교육에서 개별지도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사교육으로 학생이 몰리게 된다.
또 미국식 입시는 학교에서 준비해 주는 시험이 아니다. 미국 고등학교 시험은 대부분 논술형이나 서술형, 수행 평가 등이다. 그러나 입시는 객관식이다. 즉, 미국식 입시는 유럽과 달리 내신과 입시가 분리돼 있다. 미국식 입시를 도입하게 되면 수능을 미국 SAT처럼 1년에 여러 번, 심지어 1, 2년에 걸쳐 봐도 되는 시험으로 바꾸면서 고등학교에서 수능 문제집을 안 풀어주겠다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는가. 이 또한 사교육 대란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에 적합한 대입 전형이라는 것은 현재 상태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다. 조만간 발표될 2028 대입 개편안에서도 미세 조정 정도만 이뤄지지 않을까 예상된다.”

- 입시 정책에서 관건은 결국 ‘경쟁’인 것 같다. 경쟁이 우리나라 사회 시스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입시에서의 경쟁은 하나의 경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 인기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 인기 학과에 대한 경쟁 등 각각 다른 차원의 경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경쟁이 심한 이유는 일단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임금 격차 해소, 복지 강화 등을 대안으로 꼽을 수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 대학 개혁이다. 대학 평준화에 필요한 예산이 6조 정도 드는데 이는 정부 예산의 1%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 교육과정이 발표될 때마다 시끌시끌하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교육과정이 어떤 것이라고 보나.
“교육과정은 너무 불합리하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가령, 수학의 경우 수학에서 선택과목을 늘어놓은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SAT2에 심화수학Ⅰ, 심화수학Ⅱ, AP에 미적분, 통계 등으로 세분화시켜 놓았다. 반면, 유럽은 기본 수학과 심화 수학으로만 나뉜다.문·이과를 없애는 것은 좋지만 교육과정을 바꾸기보다는 선택권을 넓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교육과정을 그대로 두더라도 선택권만 학생 개개인에게 폭넓게 보장해주면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문·이과를 없애는 것의 핵심은 장벽을 허뭄으로써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 대학의 서열이 곧 학생 1인에게 투입되는 지원액수라는 주장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카이스트, 포스텍 등은 지원액 문제 이전에 설립 당시부터 특수대학으로 엘리트를 모은 학교였기 때문에 비교가 적당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한 인문사회계열이나 지방 의대의 경우 기존에 주장한 공식이 맞지 않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쟁을 크게 두 가지로 봐야 한다. 인기 대학을 위한 경쟁과 인기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 인기 학과에 대한 경쟁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후자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투영되는 것다. 독일이나 핀란드의 경우에도 의대는 경쟁적으로 뽑는다. 1인당 교육비 통계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더한 통계다. 그래서 사실상 연구비가 많이 포함돼 있다. 그러니까 이공계가 큰 대학들이 통계상 높게 잡힌다. 물론, 다른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명성, 학연 그리고 인서울 효과도 작용한다.
그러나 일차적 요인은 재정 격차로 인한 교육 질의 격차다. 그렇지 않다면 포스텍, 카이스트, 한예종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서울 효과는 성균관대를 보면 알 수 있다. 1인당 교육비 지표를 보면 고려대보다 높다. 그러나 성균관대 이공계 입결이 낮은 이유는 이공계 학과가 서울이 아닌 수원에 있는 것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이처럼 재정과 교육의 질 뿐만 아니라 인서울 효과도 대학에 대한 선호에 영향을 줌을 고려하면 지방거점국립대에 충분히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경쟁력을 가질수 있다고 결론내릴수 있다.”

-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사회적 변화가 많은 수의 대학의 소멸로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해당 분야 전문가로서 향후 우리나라 대학들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며, 어떤 모습을 그리게 되리라 예상하나.
“두 가지 차원의 얘기를 할 수 있다. 인구감소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이 있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이 있다. 최근 고졸자 감소로 인해 많은 대학이 어려윰을 겪었지만 출생 통계를 볼때 10년 정도 지나면 고졸자 인구 감소로 인한 충격이 다시 올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개혁안을 내놔도 구조조정이 필수적으로 내포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쾌한 나름의 판단과 상이 있어야 한다.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든, 시장에 맡기든 선택을 해야 한다.
수비적인 대응으로는 이민 개방이 있고, 공격적인 대응으로는 복지 개혁이나 임금 개혁이 있다. 그런데 복지 개혁이나 임금개혁은 어렵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교육 개혁이다. 사회 혁신을 하지 않으면 이민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사회 혁신을 통해 경쟁과 스트레스를 줄일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은 결국 대학 평준화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설계를 잘하면 윈-윈이 될 수 있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지지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서울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도 거액의 지원금을 추가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약속만 지킨다는 조건 하에 학생 선발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에 있는 대학은 남는 예산을 연구 중심으로 돌릴 수 있고, 뒤쪽에 있는 대학은 생존이 가능해진다. 연구 중심 대학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할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즉, 학부 교육 여건 및 수준을 상향 평준화시킴과 아울러 이미 학부 교육 여건이 괜찮은 대학은 연구비 투자를 통해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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