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석 거제대 총장

허정석 거제대 총장
허정석 거제대 총장

현재 전문대학뿐만 아니라 일반대학도 전례 없는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더구나 전문대학은 학력 중시와 현장 직무역량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는 사회적 풍토로 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심지어 종국에는 약 40개의 전문대만 생존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위기는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로 다가온다. 학령자원의 감소, 지식의 생성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는 외적 요인이고, 이는 대학이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은 이 같은 위기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나아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위기 극복을 넘어 전문대가 국가교육의 중심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는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각 대학의 규모에 따라, 또 위치하는 지역이나 그 지역의 환경에 따라 해법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최근에는 대학, 지자체, 지역산업과 연계한 프로그램과 RISE 전환 등 새로운 기대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하이브(HiVE) 사업이나 라이프(LiFE) 사업은 교육수요 확대라는 측면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사업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업들은 성인학습자를 위해 교육체계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성인학습자의 교육수요 발굴, 교육 방법 등에 대한 과제를 잘 이행해서 대학의 역할을 지역의 시민대학으로 확장해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도 머지않아 한국 산업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인적자원으로 인식될 것이므로,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언어교육, 직업교육, 취업체계 등도 잘 갖춰나가야 한다.

한때 제조업 체계가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형태로 변화한 적이 있다. 지금의 전문대 상황이 딱 그렇다. 무학과 무학년 등 실행 측면에서의 난제를 비롯해 개인별 맞춤식 교육과정 등을 효율적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풀어야 할 숙제다. 규모가 큰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문대가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거제대는 소규모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개설하고 있다. 운영효율과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학사제도 혁신 과제들을 포함해 대학의 디지털 역량에서 이를 찾고자 한다.

수년 전부터 대학가에 메타버스(Metaverse), HTHT(High Touch High Tech),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챗(Chat)GPT, 온라인 교육,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 하이플렉스(HyFlex) 강의실 등 수많은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이 용어들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전제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용어들이지만, 오히려 교수학습의 도구를 넘어서 전문대의 대학 내 구조 변경이나, 그 변경에 따른 현실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현실적 수단들이 될 수 있다. 개인별 맞춤식 교육, 무학년 무학과제 등 혁신사항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는 현재의 교육체계로는 불가능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대학 내외부에 존재하는 양질의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활용하고, 여기에 오프라인 강의가 적절히 결합된 단위 직무 나노 프로그램을 설계해, 해당 교육 과정을 프로그램 라이브러리에 저장해둔다. 교수는 학생과 상담을 통해 이수해야 할 프로그램을 선정해 이수 과정으로 지정하면 된다. 학생의 전체 교육과정은 직무 과정의 나노프로그램과 단위 교과목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체계로 운영하면 소규모 과정이 여러 개더라도 운영이 효율적일 수 있으며, 개인별 맞춤식 교육도 달성된다.

교육의 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수들의 단위 직무 프로그램 설계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한 교육이나 연구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기대해 본다. 교수의 역할도 이제는 지식 전달에만 국한되지 않고 과정 설계자(Program designer) 또는 조력자(Facilitator)로 역할이 변화될 것이다. 무학년 무학과 제도도 이러한 디지털 도구들을 활용하면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잠시 전문대의 과거를 돌아보자. 1960년대에 중견 산업기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중학교 졸업생들이 입학하는 5년제 실업고등전문학교로 출발했다. 9개교로 출발했고, 고등학교와 전문대가 통합한 형태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초에 2년제 초급대학과정의 전문대로 개편돼 현재는 130여 개교, 입학정원 13만여 명 정도로 규모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최근 교명 변경, 심화과정·전문기술석사과정 신설 등 발전이 있었다. 이렇듯 발전을 거듭해왔으나 현재의 교육체계로는 봉착한 이 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문대마다 해법은 다를 수 있겠으나,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을 짚어보고 싶다. 물론 위치나 상황에 따라 초급대학 과정을 운영하는 전문대도 있기는 하지만, 우선 전문대는 직업교육이 기본이자 핵심이다. 1960년대 실업고등전문학교에서 1970년대에 2년제 초급대학과정으로 개편되면서 교과목이나 교육내용이 직무 교육의 정체성을 잃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 정체성을 잃으면 산업현장이 요구하는 직무역량을 배양할 수도 없으며, 2년 과정으로는 학문역량을 배양할 수도 없다. 직무중심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교수도 현장 실무경력을 우선적 경력으로 평가해 채용해야 한다. 교육내용도 산학협력을 강화하면서 직무역량배양과 실습 중심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 비슷한 교육제도를 가진 일본은 초급대학 과정인 단기대학, 5년제인 고등전문학교, 직업교육 중심인 전수학교와 학문교육 중심인 일반대가 있으나 일반대와 단기대학의 학생 수보다는 고등전문학교와 전수학교 재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특히 고등전문대의 학력이 웬만한 도쿄 소재 일반대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학생은 취업을, 산업현장은 실용 직무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추진해 발의 중인 ‘직업교육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전문대 발전의 튼튼한 기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올해 4월 한국대학신문 주관으로 캐나다의 직업교육 대학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실용적 직무 교육을 잘 수행하는 대학이 학생들의 선택을 받고 있었고, 그 도시의 중추적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막연하게 진로를 결정하지 않는다. 매우 현실적이고, 선택에 대한 자신의 의사가 명확하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것인지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실용 직무역량으로 취업하고 산업현장에서 성장해가는 자신들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대학이라면, 학생들은 그 대학을 선택할 것이다. 실용 직무 교육을 고도화하고, 대학의 디지털 역량(Digital transformation ; DX)을 강화해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교육 수요에 맞춤식으로 대응하는 체계를 마련한다면 교육수요를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도화된 직업교육역량과 디지털 역량을 갖추면 전문대학의 미래는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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