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앞서 학령인구 감소 문제, 지방대 경쟁력 강화 방안 고민한 일본
일본 문부과학성, 대학 자율성 존중하되 지역·대학별 재정지원 책임은 명확
“교육부, 지방정부에 맡기는 것이 아닌 통합적 관점으로 균형발전 생각해야”

야마모토 츠요시 주한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이 지난 16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학령인구 감소 해결과 지방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교육부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야마모토 츠요시 주한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이 본지와 인터뷰에서 학령인구 감소 해결과 지방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교육부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일본에선 노벨상 수상자가 도쿄(東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학문·연구 분야마다 특출한 지역대가 있고, 그곳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 국립대도 지역마다 모두 특색이 다르다. 반면 한국에선 반도체 공업도시가 아닌데도 해당 지역 대학이 ‘반도체학과’를 만들더라. 교육부가 그렇게 하면 돈을 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해당 지역에 필요한 프로젝트를 대학이 먼저 제시하면, 이게 타당한지 따져보고 필요한 금액만큼만 지원한다. 대학의 자율성·자치성을 중요시하지만, 재정지원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중앙정부 주도로 엄격히 이뤄진다. 한국의 지방대가 균형 있게 발전하기 위해선 교육부가 권한을 가지고, 지역별 대학들의 특성을 고려해 통합적으로 정책을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

야마모토 츠요시(山本 剛) 주한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은 최근 서울 금천구 한국대학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진행한 본지 인터뷰에서 지방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에 재정지원이 중요하다며 “일본에서도 중소 규모 지방대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문부과학성 주도의 재정지원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방대가 지자체·지역기업과 연계·협업 계획을 중앙정부에 제출하면, 문부성에서 이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해 필요한 예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야마모토 서기관은 최근 한국 정부가 지방대·지역사회·산업체 간 협업·연계를 중요하게 보고, 이와 관련한 재정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에 대해 균형발전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한국 정부가 오는 2025년부터 교육부의 대학 재정·정책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라이즈(RISE,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 체계)’로 전환하는 것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지역 대학들의 위기에 대응하고 이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앙정부에 의한 정책 유도도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의 규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교육부가 고등교육정책의 컨트롤 타워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했다. 이어 “일본은 지역 강소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지방정부에 권한을 옮기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 스스로 혁신이 가능할지를 문부과학성이 책임지고 판단해 이를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 일본은 이미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구감소 문제를 겪었다. 당시 일본의 인구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일본의 만 18세 학령인구가 가장 많았던 때가 1990년대다. 1992년 약 205만 명을 정점으로 이후 점차 감소세를 밟았다. 2019년엔 약 12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18세 인구가 현재도 점차 줄고 있다.

18세 인구가 205만 명이었던 1992년에 일본의 대학 진학률은 26.6%밖에 안 됐다. 약 63만 명 정도가 당시에 대학 진학을 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일본의 대학 진학률은 그때보다 오른 52% 수준이다. 일본 정부 전망으로는 향후 18세 인구가 감소하겠지만, 대학 진학률 등을 고려할 때 약 50만 명 정도가 매년 신입생으로서 대학에 진학할 것으로 예측한다.”

- 일본에서 대학 진학률이 증가했었던 것은 어떤 요인 때문이었나.
“특히 현재 일본은 대학 졸업이 반드시 취직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이 한국만큼 강하지 않다. 한국에선 고등학교·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 결혼하는 과정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일본에선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경험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영위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한국에선 취업 시장에서 ‘대졸’이 일종의 기본값으로 통한다면, 일본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퍼졌던 적도 있었다. 당시 일본 문부과학성이 주도해 대학 진학을 장려했던 정책도 추진됐었다. 결국 ‘대학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일본의 전통적 국민 인식과 교육 당국의 대학 진학률 제고 정책이 맞아떨어져 조금씩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 일본은 도쿄 이외 지역에서도 대학들이 잘 운영되는 것 같다. 인구의 분산 측면에서도 적절히 배치돼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서울로 쏠림 현상이 굉장히 심하다. 일본에선 도쿄로 몰린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없는 것인지.
“일본도 고도 성장기에는 대도시 집중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홋카이도(北海道)의 삿포로(札幌)나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처럼 지방에 있지만 대도시로 발전한 도시들이 분포해 있어, 국가 전체로 보면 지역이 균형 있게 발달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일본 국민은 굳이 다른 지역으로 이탈하기보다 자기 지역에 남아 생활하려는 분위기도 남아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도 대학을 설립할 때 전국적으로 지역 균형 발달을 고려해 이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다. 일본 사람들은 ‘도쿄에 꼭 가지 않아도, 지역에 남아도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일본에서 지역 발전에 대학이 얼마나 도움이 됐다고 보는지.
“대학이 일본의 지역 발전에 끼쳤던 영향을 크게 두 가지만 꼽자면 첫 번째는 ‘인재 양성’이고 두 번째는 ‘지역 현안 과제에 대학이 참여하는 것’이다. 과거엔 대학의 역할이 ‘인재 양성’에 집중됐었다. 일본 문부과학성도 인재 양성에 중점을 둔 정책들을 많이 폈다. 도쿄에 오지 않아도 각 지역의 대학에서 균등하게 어디서나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학이 해당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대학의 역할을 정의할 때 과거엔 ‘인재 양성’에 집중됐다면, 지금은 ‘지역 문제 해결의 씽크탱크’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야마모토 츠요시 주한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 (사진=한명섭 기자)
야마모토 츠요시 주한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 (사진=한명섭 기자)

- 국내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많이 하고 있다. 일본에 가보면 외국인 유학생이 많다. 이 같은 배경에는 어떤 요인이 있다고 보는지.
“일본 대사관에서 국비 유학생을 선발하는 일도 맡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 유학을 오는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만 배울 수 있는 콘텐츠, 예컨대 애니메이션이나 문화·예술, 문학 등을 알고 싶다는 대답이 많았고, 이과 학생들은 일본은 기초연구과학 분야가 중요시돼 있어서 이 부분을 매력적으로 느낀다고 답했다.”

- 일본은 대학의 학문적 경쟁력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벨 평화상을 제외하고 학문적으로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일본의 학문적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나.
“일본은 대학에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풍토가 잘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기초과학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분위기다. 또한 새로운 학문·연구 테마가 싹을 틔울 시점부터 집중해서 투자하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풍토가 정착돼 있다. 대학에서의 연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대학들은 성과가 바로 나와야 하고, 이른바 ‘돈이 되는’ 연구여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결국 대학에서 연구를 천천히 할 수 있는 환경은 돼 있지 않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만 배울 수 있는 학문·연구 분야를 잘 쌓아 올린 것도 일본 대학이 대외적으로 학문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학문·연구 분야와 풍토가 있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 우리나라에선 한계에 다다른 대학들의 퇴출(폐교)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다. 다른 대학들과 합치는 사례도 나온다. 일본의 상황은.
“일본도 대학 정원,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등을 고려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일본에 대학이 약 800여 곳이 있다. 일본에서도 ‘대학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일본도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식의 방법으로 부실 대학의 퇴출을 연계하고 있다.

대학 간 통합과 관련해서 일본도 여러 대학을 하나의 법인(재단)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생기고 있다. 또한 국립대 간 통합도 나타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2025년까지 교육부의 대학에 대한 권한과 업무 상당 부분을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는, 이른바 ‘라이즈(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 체계, RISE)’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국가가 지방대 위기와 관련한 책임·역할을 지방에 떠넘기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본질은 ‘대학 자체를 하나하나 강하게 만드는 일’이지 않나. 그렇다면 문부과학성이 컨트롤타워로서 전국 대학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들 하나하나의 특성화 분야, 학문적 경쟁력, 존재 가치 등을 따져보고, 전체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이를 각 지방정부에 맡기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일본은 대학의 자율성·자치성을 높게 친다. 초·중등 교육까지는 모든 국민이 균일한 교육을 받아야 하므로 규제와 지도, 감독 등 강하게 규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학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각자 대학의 개별성을 중요시하고 자주성을 갖게 한다.

대학에 대한 관리와 책임은 중앙정부에서 해야 한다. 대학들이 질 높은 교육, 좋은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이에 대한 평가와 적절한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문부과학성, 한국의 교육부가 해야 할 역할이지 않을까.”

- 지방정부로 권한이 대폭 이양되더라도 지방대 경쟁력 강화에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의미인가.
“일본에선 지방대에 진학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 대학에서만 하는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방대라고 해도 그 대학만의 교육이 있다. 그 대학이 일본 전역에서 가장 잘하는 학문·연구 분야,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대라도 거리낌이 없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그 지역마다 갖는 특수성이 강하지 않은 것 같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에 아무리 권한을 준다고 해도 수도권 쏠림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고, 지방대에 대한 매력이 올라가기 어려울 것 같다.

서울과 부산은 2시간 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일본 사람으로서는 ‘그렇다면 꼭 서울에서만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게 될 때가 많다. 일본의 경우 도쿄와 2시간 정도의 거리라면 굳이 도쿄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힘들게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의 서울 쏠림 현상은 외국인으로서 참 신기한 문화다.

지역마다 특성이 있고, 지방대만의 특수성, 학문·연구 분야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일본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 간담회를 위해 서울 금천구 한국대학신문사를 방문한 한일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나이토 일본학생지원기구(JASSO) 직원(서울대 일본연구소 연구원), 야마모토 츠요시 주한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 송혜선 동아시아일본학회 부회장(인덕대 교수), 홍준 본지 대표이사 겸 발행인 (사진=한명섭 기자)
일본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 간담회를 위해 서울 금천구 한국대학신문사를 방문한 한일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나이토 일본학생지원기구(JASSO) 직원(서울대 일본연구소 연구원), 야마모토 츠요시 주한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 송혜선 동아시아일본학회 부회장(인덕대 교수), 홍준 본지 대표이사 겸 발행인 (사진=한명섭 기자)

■ 야마모토 츠요시 서기관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2006년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문부과학성 초등중등교육국 국제교육과 기획조사계장, 유아교육과 전문직, 관방총부과 행정개혁추진실 관리계장, 초등중등교육기획과 전문관 등을 역임했다. 일본학술진흥회 샌프란시스코사무실 어드바이저, 일본 미야기현 교육청 교직원과 과장 등으로 있었다. 지난 2021년 주한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담=홍준 본지 대표이사 겸 발행인 / 정리=김의진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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