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과기원, 정부로부터 10~15% 삭감된 예산안 통보받아
과학계 “삭감 이유 미흡해…연구자들의 연구 동력 악화시킬 것”
“R&D에 대한 투자 축소는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훼손” 지적도
정부의 일관된 방향성을 기반으로 한 세심한 정책 필요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KAIST‧UNIST‧DGIST‧GIST 캠퍼스 전경 (사진 = 각 과기원)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KAIST‧UNIST‧DGIST‧GIST 캠퍼스 전경 (사진 = 각 과기원)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연구자들의 사기가 크게 꺾여 동기부여가 힘든 상황이다. 기업과 다르게 학교에서는 장시간 투자가 필요한 연구가 많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적 손해다.”

4대 과학기술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예산 삭감과 관련해 이 같이 밝히며, 숫자를 잣대로 평가하는 정부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23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은 올해보다 10~15%가량 삭감된 예산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과학기술정통부 연구개발(R&D) 재정투자에 대한 지적사항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윤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R&D 국제협력은 세계적 수준의 공동 연구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지난 22일 정부는 내년도 과학기술계 주요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보다 3조 4000억 원(13.9%) 삭감한 21조 5000억 원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의 감축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첨단바이오, 인공지능, 사이버보안, 양자, 반도체, 이차전지, 우주 등 7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는 예산을 6.3% 늘렸다. 그러나 성과 하위 20%는 예산을 대폭 축소하고, 성과가 부진한 108개 사업은 통폐합한다고 밝혔다.

기초연구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예산도 대폭 줄었다. 기초연구는 올해보다 2000억 원(6.2%), 출연연 예산은 3000억 원(10.8%) 감소했다. 이번 예산안에 4대 과기원 출연금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과학계에서는 정부가 산정한 예산 삭감 규모가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명확한 근거도 없이 예산 삭감은 과한 조치라며 카르텔의 실체도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R&D 예산 삭감은 연구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국가의 연구 동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국책사업으로 과학기술을 강조해 놓고서는 정작 예산은 수십년 만에 대폭 삭감했다”며 “R&D에 대한 투자 축소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4대 과기원 소속의 한 교수도 “예산 삭감 배경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대학은 학문 후속세대와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인데 투자가 강화돼도 부족한 상황에서 삭감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조치”라고 비판했다.

몇몇 관계자는 정부가 지적한 과학계 카르텔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한 조치가 이뤄져야지 예산 삭감은 과한 조치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급하게 진행된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과기원 관계자는 “정부의 과학계 카르텔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며 “문제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서 조정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연구과제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삭감으로 진행이 되니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답함을 토했다.

민경찬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명예대표는 “과기원마다 특성이 다 다르고 연구자마다 특성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예산을 삭감하면 정책의 일관성이 사라져 연구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기가 힘들다. 정책은 섬세해야 한다”며 “정부에 혁신본부가 생긴만큼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할 시간을 갖고 생산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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