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공무원을 폄훼하는 말들이 있다. 
‘복지부동(伏地不動)’, ‘영혼 없는 공무원’

‘복지부동(伏地不動)’은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제 몸만을 사리는 기회주의자를 의미하고, ‘영혼이 없다’는 말 역시 철학이나 가치기준 없이 윗사람의 지시만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예스맨보다 훨씬 모욕적인 표현이다. 

나는 비록 하급공무원에서 시작해 차관까지 올라갔지만 내 몸을 사리느라 나의 철학과 가치를 접어둔 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이 옳고 필요한 일이라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고 기꺼이 내 목을 걸었다.  

1989년 교육부 교과서 담당과장 때 일이다. 교과서 개발, 편찬, 발행과 연구 등을 지원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교과서를 총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였다. 당시에도 검인정교과서도 있었지만 주요 교과서들은 정부가 책임지고 편찬, 발행하는 국정교과서가 많았다. 교육부는 편수관리관과 4명의 편수관을 두고 있었다. 직책을 맡고 업무 파악을 하고 보니, 북한 교과서와 관련한 자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통일부와 안기부(현재 국정원)에 북한 교과서가 있긴 했지만 몇 권 되지 않거니와 20~30년 전에 발행된 교과서들이라 자료의 가치가 없었다. 당시는 북한 관련 정보를 얻는 것도 어렵지만 자칫하면 국가보안법에 엮일 수도 있어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할 때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든가? 우리가 제대로 된 교과서를 개발하려면 북한에서 발행된 교과서를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회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열렸다. 우연히 중국 연길 조선족 교과서 회사 사장이 한국을 방문해 나를 찾아왔다. 사장은 우리 교과서와 교과서 행정 등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여기 며칠 계실 예정입니까?”
 내가 물었다. 
 “네. 사흘 정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사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하고, 우리 교과서는 물론 교육과정에 대한 각종 자료, 관련 참고 도서 목록까지 리스트를 만들어 한 보따리 건네주었다. 교육법전까지 구비해 주었다. 모든 자료는 띠지까지 붙여 찾아보기 쉽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심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 교육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정성을 다해 챙겨주었다. 자료를 받은 사장은 큰 감동을 받은 채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이렇게 꼼꼼하게 자료를 챙겨주실 줄 몰랐습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연변은 물론 북한에서도 우리 교과서를 참고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사장은 간절하게 말했다. 
“제가 도울 게 없습니까? 이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고, 북한 교과서 자료가 없어 고생하던 생각이 나서 물었다. 
“혹시 북한에 다녀오셨습니까? 북한 교과서와 자료가 필요한데 구하기가 어려워서요.” 
그러자 그는 북한에 스무 번도 넘게 다녀왔다며, 어려워도 구해보겠다며 자신의 연길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 후 몇 달 뒤, 몇몇 대학 학생 간부들을 인솔해 중국에 갈 일이 생겼다. 중국에서는 연길을 들러 백두산까지 가는 코스가 포함돼 있었다. 나는 연길 교과서 회사 사장에게 자료를 건넸던 생각이 나서 그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은 내가 연길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찾아왔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놀랍게도 그는 서른여덟 권이나 되는 북한 교과서를 가져왔다. 구하기 힘든 북한 교과서를 얻게 돼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북한 연구 자료로 쓰는 건 물론, 우리 교과서 개발에도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즉시 커다란 가방을 구입해 그 책들을 차근차근 담은 후 여행 내내 신주단지 모시듯 그것을 지켰다. 그 가방 속에 북한 교과서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만 했기 때문에, 백두산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여행이 끝나고 배를 탈 때까지 온통 신경이 가방에만 있었다. 하지만 예상한대로, 북한 교과서를 들여오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인천항에 입항하면서부터 난리가 났다. 내 가방에서 북한 책이 잔뜩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관계기관에 통보해 교과서를 압수해 버렸다. 나는 신분과 직책을 밝히고, 불온한 생각으로 교과서를 들여온 것이 아니라 교과서 연구에 도움을 얻고자 들여온 사정을 적극 알렸다.

하지만 그런 설명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당시 편수 관리관이었던 박병호 국장님께 연락을 드려 도움을 청했다. 국장님은 안기부 요직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셨다. 꽤 어려운 과정과 시간을 거쳐, 겨우 북한 교과서를 교육부로 가져올 수 있었다. 교육부 장관은 안기부에 자료 보관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교육부 내에 비밀에 준해서 보관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공문을 보내, 안기부장의 승인을 받고야 끝이 났다. 당시 윤형섭 교육부 장관님은 38권의 북한 교과서를 보시고 깜짝 놀라시면서 “북한의 실정을 아는데 이보다 더 정확한 정보는 없을 듯합니다. 학생이나 교사들이 이 책을 보면 실정파악에 많은 도움이 될 텐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공무원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일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내게 그런 일을 하라고 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어 여차하면 자신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내하려 했겠는가. 그건, 오로지 국가와 교육에 대한 한없는 충성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교과서만이 아니라, 좋은 교과서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어떤 자료가 있다면 나는 지옥 끝까지라도 가서 그것을 구해오고자 했을 것이다. 

주어진 일 이상을 해내겠다는 적극적인 집념과 의지, 그것이 바로 공무원으로서 가져야할 사명이자 자부심의 생명이다. 모든 공무원들이 그런 마음으로 일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니, 공무원만이 아니다. 모든 직장의 일꾼들도 똑같은 마음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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