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모두가 ‘대학의 위기’를 말합니다. 분명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2023년 고등교육기관의 신입생 충원율이 85.3%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지난해(84.3%)보다 약간 올라서 다행이지만, 이 같은 상황이 2030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라고 하니 총장으로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학 등록금 동결정책이 10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대학들의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대학의 재정 악화는 교육여건과 교육, 연구의 악화로 이어져 결국은 고등교육 실패, 국가 경쟁력의 추락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들이 한목소리로 정부에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를 요구해 왔습니다. 교육부도 재정지원 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지만, 태부족입니다. 정부의 교육예산이 초·중등교육에 치우쳐있는 교육재정 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대학위기’ 해결은 어렵다고 봅니다.

나아가, 대학도 정부만 탓하는, ‘무책임한 대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부도 소임을 다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자구책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천대는 ‘대학이 해야 할 일’을 세 가지를 정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첫째, ‘청년백수’를 줄이기 위해, 학과 신·증설(전공간 정원 조정)에 힘을 쏟자. 학생들의 취업에 가장 큰 장애는 사회수요와 대학교육 간 ‘미스매치’입니다. 기업의 가장 큰 불만 요인이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심화되면서 기업은 IT 기반 융합인재를 요구하고 있지만, 대학의 전통적 칸막이 학문 구조로는 융합 교육이 불가능합니다.

조선일보의 지난 8월 29일 자에, 서울대에서 데이터 경제학을 가르치는 이수형 교수 인터뷰가 나옵니다. 행정고시도 합격하고 교수가 되어 미국서도 오래 가르치신 이분이 말합니다. “미국대학의 총 73개 학부 전공 가운데 초임이 가장 많은 상위 TOP10은 거의 공학 계열이다”. 구체적으로는 화공 컴공 우주항공 전기전자 산업공학 기계공학 토목공학 순입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대학 내의 전공 간 인력 조정이 중요하다. 고인 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 경제적으로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해야 하고, 학생들이 선호하는 전공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바로 우리 한국의 대학들이 실천해야 할 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천대는 이 과제를 해소하기 위해 10여 년간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가천대 공학 계열(의약계 제외)만 입학정원은 2230명에 달해 전국 최고입니다. 공학 계열 2위의 대학보다 수백 명이나 많습니다. 2020년 AI학과 신설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반도체 배터리 스마트보안 바이오로직스 빅데이터 등 9개 첨단학과를 신설했습니다. 미래의 핵심산업인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국내 최초로 ‘반도체대학’도 신설하였습니다.

둘째, 중도이탈 학생을 줄이자, 학생들이 떠나지 않는 대학을 만들자. 다들 고심 끝에 선택해 들어왔는데, 실망해서 떠나는 대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학정보공시센터가 8월말 발표한 2023년 재학생 중도탈락 현황을 보니, 전체대학 평균 6.6%가 대학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입생 중도탈락률은 8.6%로 훨씬 더 심각합니다.

떠나는 학생들이 문제일까요? 못 잡는 대학이 문제일까요? 저는 대학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의 제1 모토는 ‘학생들이 머물고 싶은 대학’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TFT를 만들어 방법을 찾고, 지속적으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교육방식을 프로젝트 중심 교육으로 과감하게 바꾸고 있습니다.

셋째, 실력 있는 교수를 지속적으로 확충하자. 대학의 중심은 교수와 학생입니다. 우리 가천대는 근년에, ‘교수가 학과 전공을 고른다.’는 이른바 자율선택제를 최초로 도입해 대학가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센세이션에 그치지 않고, 성과도 큽니다. 세부 전공이라는 칸막이 장벽을 없애고, 유능한 분은 일단 모셔서 논문을 쓰고 가르치게 하자는, 그 취지는 성공을 거두어 지금까지 100여 명의 우수 교수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좋은 교수들이 있어야 좋은 학생들이 옵니다. 한편, 연구력 좋다고, 강의 실력 좋다고 다 좋은 교수는 아닙니다. 좋은 교수는 마음이 따뜻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피는 교수가 진짜 ‘좋은 교수’입니다. 우리 대학은 2012년 대학통합 이후 600명이 넘는 우수교수를 그런 기준으로 채용해 왔습니다.

‘대학의 위기’를 본질에서부터 타개해 나가야 합니다. 구호나 구두선(口頭禪)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세상과 기업은 인재를 원하는데, 그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지 못하는 대학은 반성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대학의 형편(학내 장벽)에 맞출 게 아니라, 세상에 맞추는 것이 미스매치 해소입니다. 학과 전공 간의 20세기적인 장벽을 헐어내고, 대학의 실력 있는 교수들이 재학생의 환영받는 교육을 하며, 전과나 부전공 선택이 자유롭다면 학생들이 학교를 떠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모든 것을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명쾌하게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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