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 시기가 되면 어김 없이 분야별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려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우리나라는 아직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간혹가다 들려오는 일본에서의 수상 소식에 부러운 마음을 갖기도 하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노벨상을 수상하는 날이 올 것이란 기대를 갖고 지내왔다.

그런 기대는 우리나라가 비교 대상 선진국들보다 많은 R&D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는 소식으로 더욱 고무되곤 했다. 지난해 정부는 2021년 한 해 동안 국내 R&D에 투입된 비용이 총 102조 1352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GDP 대비 약 4.96%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과학기술 R&D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짐으로써 언젠가는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겠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런데 이런 희망 만들기에 돌발 변수가 생겼다. 2024년도 정부 R&D 사업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33년간 유지돼 온 R&D 예산에 매스를 가했다. 때마침 열린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행사에 참석한 노벨상 수상자들은 정부의 R&D 사업 예산 삭감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과학기술 발전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미래를 위해서도 교육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갈 것을 권고했다.

지금 전 세계는 미래를 선도해 갈 신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같은 입장에서 경제 및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12개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향후 5년간 총 24조 원 이상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안)’을 마련해 ‘기술주권 및 미래성장 기반 확충을 위해 12대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R&D 투자 확대’를 의결한 바도 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발표된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예산(안)’은 전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내년도 R&D 예산은 전년보다 16.6% 감액된 25조 9000억 원 규모로 내려앉았다. 정부는 R&D 예산 조정 이유로 ‘낮은 성과’와 ‘방만한 운영’을 내놓았다. 그러나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몇 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정부 입장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원래 32조 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R&D 예산(안)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윤대통령의 ‘R&D 카르텔’ 언급 이후 급변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실이라면 문제다. IMF 시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R&D 예산만큼은 여야가 함께 노력을 기울여 예산을 확보해왔다. 역대 정부가 R&D 예산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것은 그만큼 미래 성장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대로 성과가 나지 않고 방만하게 운영되는 사업이 있다면 그 사업을 폐기하거나 축소하면 될 일이지, R&D 예산 전체를 흔들 일은 아니다. 이대로 간다면 미래 성장 동력 확보는커녕 지금의 경쟁력도 유지할 수 없게 될 우려가 크다.

이번 예산 삭감으로 학문후속세대들의 계속 활동도 지장을 받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2024년 교육부 R&D 예산’에 따르면 이공계 연구 지원을 위한 예산과 ‘학문균형발전 지원’ 예산도 대폭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공분야 풀뿌리 연구자의 안정적인 연구를 지원하는 ‘개인기초연구 사업’ 예산은 올해 93억 2000만 원에서 내년 23억 9000만원으로 74.3%가 줄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꾸준한 R&D 투자를 하면서 “단기간에 기초과학과 산업을 아우르는 성장을 이뤄낸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노벨프라이즈 2023’ 행사에 참석한 비다르 헬게센(Vidar Helgesen) 노벨재단 총재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필요한 건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와 연구 분야의 국제적인 협력”이라며 이는 노벨상 수상자 수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1950년대 아프리카 가나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이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저변에는 “정부가 과학기술과 공학에 많은 투자를 한 덕분이고, 최근까지 한국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였다”며 “정부의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은 과학적인 성공 사례와 밀접한 상호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새겨들을 말이다.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R&D 예산 원상복구’에 있어서만큼은 여야가 입장을 함께 하기 바란다. 21대 마지막 국회를 보내고 있는 의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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