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저작물(텍스트, 이미지, 비디오, 오디오 등)은 기본적으로 디지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디지털화된 자료들은 원본과 복사본의 차별 없이 유통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저작물 유통 과정과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기존 인쇄매체 중심의 복제에서는 그 질적 차이 때문에 원본과 사본의 구별이 가능했지만, 디지털화된 자료에서는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콘텐츠의 내용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변경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르는 비용 또한 저렴하다는 특징 때문에 이용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저작물의 창작과 유통에 있어 용이성과 저렴한 비용이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불법 개작과 복제를 통한 저작권 침해가 짧은 시간에 대량적이면서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리 구제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부정적 측면 또한 내포하고 있다. 대량복제기술(인쇄술)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복제하는 행위 자체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으며, 그 노력은 원본을 취득하는 행위와 비교했을 때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저작자의 권리는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더해 AI까지 가세하면서 저작권 환경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원래 저작권은 저작물 복제기술과 매우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온 권리였다. 만약 과거의 아날로그 환경에서 구축된 저작권 법제가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까지도 그대로 유지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저작권 환경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저작물 창작 및 유통, 그리고 이용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변화함에 따라 저작권 법제 또한 함께 변화함으로써 시대 환경에 맞게 저작(권)자와 이용(권)자의 관계를 조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저작권’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저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 저작자에게 부여한 권리”를 말한다. 곧 저작물의 창작자에게 자기 저작물의 이용에 관한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그 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이용할 때에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어야 하며, 라이센스를 얻지 않고 이용하는 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로 저작권 보호의 원칙이다.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가리킨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저작권법상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어떠한 작품이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의 독자적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어서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단지 저작물에 그 저작자 나름대로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고, 다른 저작자의 기존 작품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이면 충분하다”고 함으로써 창작성의 정도를 높게 요구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판례에서도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 즉 창작물이란 “저작자 자신의 작품으로서 남의 것을 베낀 것이 아니라는 것과 수준이 높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는 정도로 최소한도의 창작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특히 학술의 범위에 속하는 저작물의 경우 그 학술적 내용은 만인에게 공통되는 것이고 누구에 대하여도 자유로운 이용이 허용돼야 하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저작권의 보호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있지 학술적 내용에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러한 학술적 내용은 그 이론을 이용하더라도 구체적 표현까지 베끼지 않는 한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AI에 의한 창작 행위의 결과물도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작권이 부여되는 걸까? 저작권이 발생한다면 저작권자는 누가 돼야 하는가?

오늘날 AI가 폭발적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빅데이터와 이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기계학습(머신러닝) 기술 덕분이다. 과거 정해진 알고리즘대로 역할을 수행하던 것이 이제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게 됐다. 즉 인간의 학습 방식을 모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아닌 AI, 곧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드는 저작물(뉴스기사, 바둑기보, 문학·미술·음악 작품 등)은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저작물’인가? 저작물이라면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으며, 저작권 침해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되는 것일까? 현행법에 따라 해석한다면 정답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서의 저작물이 아님’이다. 따라서 저작권자도, 책임자도 없는 셈이다. 다만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프로그램, 즉 컴퓨터 프로그램 제작자에게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이 주어질 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AI가 만든 것임을 밝혔을 때 가능한 구분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만일 AI를 통해 생성한 것을 마치 특정인이 창작한 것처럼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표절한 것이라면 검색 프로그램을 통해 찾아낼 수 있겠지만, AI가 즉각적으로 생성한 결과물은 검색해도 찾아낼 수가 없다. 또 예상되는 문제는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진위 여부에 있다. 잘못된 내용을 학습한다면 잘못된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 분명하므로 자칫 AI를 맹신하는 경우 오류의 확산이 염려되는 것이다. 나아가 AI 학습용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당사자 사이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AI 활용에 따른 출처표기 및 윤리 준수에 관한 가이드라인 정립과 함께 새로운 저작권 침해 이슈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등장한 셈이다.

저작자는 누구든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는 난쟁이”다. 창작 행위의 결과물인 저작물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마치 새로운 것처럼 공표되지만, 이미 다른 창작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서로 관계를 주고받는 가운데 생산되는 것이기에 저작권법에서도 소극적이나마 저작물이 사회적 생산 결과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저작물이 공유 저작물(퍼블릭 도메인)로 흡수되어야 함에도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이 점차 연장됨으로써 저작권자에게는 보다 강력한 통제권이 생기게 됐고, 그로 인해 더 풍요로운 창작활동의 가능성이나 2차적 창작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공유 저작물의 개념을 더욱 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AI의 질적 수순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디지털 혁명으로 표현되는 기술적 진보와 함께 저작권 환경이 급변함으로써 아날로그 미디어에서 파생한 저작권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법보다 사람’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공정이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의 법리 도입과 함께 형식적 절차를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다만 고의적이고 상업적인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더불어 강력한 형사처벌이 가능해져야 한다. 아울러 AI 활용 여부 미표기 등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의 논의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공정이용을 기반으로 한 저작권 보호 관행이 정착된다면 인간 본위의 새롭고 건강한 저작권 질서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저작물 이용에 따른 분쟁을 줄이고 새로운 콘텐츠의 창작 활성화와 더불어 새로운 시장의 창출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법제뿐만 아니라 윤리적 접근을 위한 교육과 계몽 또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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