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박사)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박사)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박사)

대학가는 ‘취업 시즌’이란 말을 꺼내기가 무색하다. 대기업들이 통상 2월 말과 8월 말에 대규모로 공개 채용을 진행했으나 2곳 중 1곳 이상이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면서 1년 내내 채용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공개 채용은 정해진 채용 인원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정기적으로 연 1~2회로 채용해 왔다. 채용 기간이 매년 비슷한 시기로 고정돼 있고, 채용 규모나 방식도 유사해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 입장에선 준비가 수월했다.

하지만 수시 채용은 채용 규모와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고 구직자가 항상 채용 공고를 확인하고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채용 방식은 인력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시행하므로 지원자의 지원 기회가 늘어날 수 있지만 채용 인원이 소규모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기업들은 경영 환경에 맞는 직무 중심 인력을 적기에 채용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하나 취준생의 입장은 경력자에게 유리한 면이 있고, 실제 수시 채용 전환 후 일부 대기업의 직원 수가 줄어든 사례가 있어 달갑지만은 않다.

모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이 2021년 기업 330개 사를 대상으로 ‘경력직 채용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경력직을 신입보다 우선 채용한다는 기업이 53.3%였다. 기업의 절반 이상이 경력직 채용으로 재편되면서 신입 채용 시장의 축소는 기정사실이 됐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과 중소기업마저 실무 인력이 신속히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하므로 취준생의 취업 준비 기간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취준생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22년 4년제 대학생 취업 인식도 조사’를 한 결과, 취업 준비 기간이 대학생의 64.1%가 1년 미만이었고, 35.9%가 ‘1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필자의 조카는 3년여 장기간 취업을 준비 중이다.

지방의 4년제 국립대학 인문계열 학과에 다닌 조카는 교사 지망생이었다. 졸업 후에 서울에 방을 얻고 학원에 다니며 중등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첫 시험 응시는 출제 내용을 파악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두 번째 시험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목이 아파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목을 많이 사용하는 교사보다 덜 쓰는 직업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대학의 행사 무대에서 가수처럼 노래를 불렀던 그녀에게 노래하지 말고 직업 노선까지 바꾸라는 말은 큰 충격이었다. 대학 뒷바라지에 이은 취업 생활비 부담과 졸업 후에 직장을 가질 거라는 부모의 기대를 생각하면 얼른 털고 일어서야만 했다.

입사를 희망하는 대기업에 지원서를 넣었으나 전공과 무관해 여러차례 탈락 통보를 받았다. 기업이 원하는 스펙을 쌓으려면 자격증을 따야만 했다. 보완한 지원 서류에도 불구하고 합격 소식은 없었다. 단순히 스펙 5~6개 정도 쌓는 것으로는 어림없었다. 이미 경쟁자들의 스펙은 상향 평준화가 되어 있었다. 때론 지원 기업이 ‘공채’에서 ‘수시 채용’으로 바뀌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했고, ‘경력 우대’라는 말에 채용 문턱에서 좌절하고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그런데도 취준생 꼬리표를 자를 때까지 프로취준생으로서 직무 경험을 쌓고 있다.

취준생들의 취업 소요 기간은 주어진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졸업한 상당수의 구직자가 취업 기간이 늘어나는 데는 원인이 있었다. 하나는 ‘스펙 쌓기’였다. 대학 졸업장과 학점 외에 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인턴경험, 수상경력, 봉사활동들은 서류 전형에서 남보다 우선 통과하는 데 돋보이는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대기업들이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지만 스펙 쌓기 과열 현상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경력 우선 풍토’였다. 몇 년 전부터 확산하고 있는 ‘수시 채용’은 경력자에게 이롭게 작용하고 있다. 이직과 같은 결원에 의해 실시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선발자는 현장에 투입돼 바로 일할 수 있는 직무 경험자를 선호한다. 특히 필요한 직무 관련 인력을 인사 부서가 아닌 해당 부서가 직접 뽑으므로 인턴이나 기간제와 같은 체험이나 경력이 없는 신입 취준생은 공개 채용 때 보다 채용 가능성이 작아진다. 자칫 경력 직원을 뽑는 통로로 확대될까 봐서 걱정하는 이유다.

앞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조사에서도 취준생들이 취업 준비 과정의 어려움 중에 ‘경력직 선호 등에 따른 신입 채용 기회 감소’와 ‘체험형 인턴 등 실무경험 기회 확보 어려움’이 도출됐다.

이같은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취준생들은 대학에서 취업 관련 교과목을 확대하고 실무나 실습 중심으로 개편하되, 교과목과 연계된 현장 실습에 기업도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취직한 직장인들조차 취준생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실효성 있는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으뜸으로 꼽고 있다.

취준생들과 취직한 직장인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면 대학은 취업과 진로지도에 관한 교과목을 평가 및 조정하고 기업과의 연계를 끌어내 취업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의 교육과 취업 현장이 유리되지 않으면서 대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전공별 스펙과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교육과 실습 그리고 인턴십을 통합패키지로 묶어 교육을 설계해야 한다. 더 이상, 취준생의 꼬리표 떼기를 위해 졸업 후에도 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따는 등 취업 준비 기간을 늘려서는 안 된다.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취준생들이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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