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평소 트렌드를 쫓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필자는 지난 11월 19일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다. 이날 서울 구로구 고척돔에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라는 게임의 결승 경기를 보기 위해 1만 8000명의 관객이 입장해 초만원을 이뤘다. 광화문 길거리에도 1만 5000여 명이 모여 한국팀 승리를 응원했다. 뉴스를 통해 전국 CGV 43개 지점의 100여 개 상영관에서도 2만여 명이 결승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까지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이게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월드컵 축구 예선 경기나 코리안 시리즈 야구 경기가 열린 것도 아닌데 경기장과 길거리 그리고 영화관까지 점령한 게임에 열광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장년의 필자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낯선 모습이었다. 이후 필자는 놓친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중심으로 온라인게임에 대한 학습을 서둘러 시작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지난 2009년 미국 게임 개발 기업인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가 출시한 게임이다. 전 세계 가입 회원 수는 약 32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약 40만 명이 가입했다. 올해는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 e-스포츠 정식 종목으로 선정됐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세계 최강팀을 가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은 e-스포츠 대회 중 가장 큰 규모다.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에 견줘 ‘롤드컵’이라고 불린다. 롤드컵은 한국 리그인 LCK를 비롯해 LPL(중국)과 LCS(북미), LEC(유럽) 등 지역별 리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22개 팀이 선발돼 총상금 29억 원을 놓고 승부를 겨룬다. 이번 결승전까지의 누적 시청자 수가 사상 최대치인 4억 명을 돌파하고, 결승전 동시 접속자 수는 1억 명을 넘겼다.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한국의 T1팀이 중국의 WBG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한국은 총 12번 개최된 롤드컵에서 8회 우승을 거두며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2023 롤드컵 개최로 인한 경제 효과가 20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입장권 판매수익을 비롯한 실제 매출액도 적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우승팀의 소속 기업T1의 모기업인 SKT는 마케팅 효과를 통해 그동안의 투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결승전은 서울시 도시마케팅에도 활용됐다. 결승전 중계 중간에 서울 도시 브랜드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 광고가 노출됐다. 서울시는 이번 결승전을 발판 삼아 내년부터 매년 국제 e-스포츠 대회를 중심으로 하는 ‘게임 페스타’를 개최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조폐공사는 한국 T1의 우승을 기념해 ‘2023 LoL 월드 챔피언십 기념 메달’도 특별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과거 88올림픽 기념 메달을 기억하고 있는 필자와 같은 또래에게는 이것 또한 생경한 모습이다. 그야말로 롤드컵 이벤트는 일파만파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게임시장 조사업체 뉴주(Newzoo)가 최근 공개한 ‘세계 게임시장 보고서(Global Games Market Report 2023)’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약 240조 원으로 파악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2년 연간 콘텐츠 산업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21조 1847억 원이다. 국내 게임시장의 규모는 콘텐츠 시장 규모 1위인 방송(25조 8000억 원)을 비롯해 출판(24조 8000억 원), 광고(22조 5000억 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번 롤드컵에서 가장 빛난 스타는 페이커(본명 이상혁)다. 그는 롤드컵 4회 우승을 비롯해 10년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전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절대지존이다. 한 게임평론가에 의하면 페이커의 연봉은 100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그를 데려가기 위해 연봉 200억 원 이상을 제의했다는 소문도 있다. 손흥민 선수의 연봉이 약 140억 원이니 페이커의 인기는 세계정상급 스포츠 선수들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국내 프로리그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선수는 억대 연봉을 받고 있으며,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e-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PC방 문화’가 자주 거론된다. 과거에 부모님들은 자녀가 PC방을 출입하는 것을 극구 만류했다. 심지어는 학습을 방해하는 원흉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PC방은 e-스포츠산업과 세계정상급 e-스포츠 선수를 만들어 냈다.

필자가 장년에 이르러 깨달은 것은 물이 바다로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게임이 수많은 유해성 논란을 물리치고, e-스포츠라는 하나의 스포츠 장르로 자리 잡는 한편, 유력한 산업으로 그 규모를 키워가는 것처럼 소비자가 원하는 시장은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장은 하나의 현상이 돼 결국에는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최근 학령인구가 급감하면서 대학들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새로운 시도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확실성을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가로막힌다. 지난 1987년 서울예대 실용음악과가 최초로 만들어질 때 전국의 100여 개 대학에 실용음악과가 만들어질 것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동아방송예대 K-pop과와 엔터테인먼트경영과,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등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처음 내 딛은 무모한(?) 시도들은 해당 대학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고 많은 대학에 영감을 제공했다. 대학이 지금의 위기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 수립과 실천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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