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캐릭터 전형화와 만화 캐릭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캐릭터 이론을 설명하면서 “비극에서 인물은 자신의 도덕적 목적을 드러내야 한다. 첫째로 성격이 선해야 한다”를 주장했다. 여기서 캐릭터들은 이야기의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체적 행동자로서, 궁극적으로 극의 마지막에는 선함을 추구해야 한다. 아울러 주인공 캐릭터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가 궁극적 선에 도달하기 위해 이를 제지하는 장애물 반동 캐릭터 안타고니스트(antagonist)와 대립적 관계에서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프로타고니스트는 결코 단독적으로 절대선에 이르지 못할 뿐더러, 안타고니스트의 능력은 프로타고니스트를 압도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프로타고니스트는 조력자라는 캐릭터들의 원조를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조력자는 프로타고니스트의 본성적 선한 휴머니즘에–대가성이 없는 인간적 매력 때문에–동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캐릭터 관계 설정이다.

자료=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자료=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그런 점에서 만화에서 캐릭터들의 대립적 관계와 조력자나 여타 캐릭터들과의 관계 설정은 캐릭터의 전형화모델(model)을 만들어냈다. 캐릭터들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재현해낼지,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지,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외모만으로도 그 캐릭터의 성품과 정신성을 어떻게 표출해낼지 등이 중요하다. 한 마디로 만화에서 주인공은 주인공답게 생겨야 하고 악당은 악당처럼 생겨야 한다. 이 캐릭터의 전형화는 캐릭터의 외모, 즉 관상학적 관점으로 설명되어지고 설정되기도 한다.

만화는 특히 시각적으로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구현하기 때문에, 캐릭터 싱크로율 외모와 성격의 시각적 전형화가 만화의 재미와 생동감을 배가 시킨다. 그런 점에서 다 빈치, 윌리엄 호가스 등 위대한 화가들의 캐릭터 연구가 없었다면, 지금 만화 캐릭터의 전형화는 훨씬 더뎌졌을 것이다.

신화 속 영웅 캐릭터 vs 만화 속 영웅 캐릭터
사실 세상의 모든 캐릭터의 전형화는 이미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에게서 다 드러난다. 매혹적인 뮤즈이면서 팜므파탈의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전사 아르테미스, 중상모략가 아테나, 냉소적이지만 여성적인 헤라, 이성적 반역자 아폴로, 방탕자 디오니소스, 독재자 제우스 등.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성이 없었다면, 셰익스피어도 막장 드라마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캐릭터의 전형화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영웅 캐릭터도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을 언급했는데, “비극과 서사시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보다 훌륭한 인물을 표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인공은 결국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과 같은 인간 영웅을 의미한다. 헤라클레스,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페르세우스, 파리스 등이 그런 인간 영웅이다. 신과 달리 인간 영웅은 거역할 수 없는 신탁과 죽음에 맞서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만큼 남과 다른 능력이 영웅 캐릭터에 도식화된다.

자료=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자료=박세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신화 속 인간 영웅은 대부분 태생적으로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진정한 영웅은 고귀한 혈통이나 신성한 잉태를 통해 이미 예정돼 있거나(예정론), 우월한 유전자(계급론)를 지녀야 한다는 신화적 논리가 기저에 깔려 있었다. 그만큼 영웅의 신성화에는 명분과 실리, 그리고 당위성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만화 속 영웅 캐릭터는 의외로 평범한 출생신분을 갖고 있거나, 계급적으로 하찮은 존재이거나, 고귀한 계급이었지만 비극적 운명에 의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성격적으로 소심한 데다 심지어 버려져도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존재가 아닌 경우도 적지 않다. 만화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서서히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면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드라마틱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여기서 평범했던 캐릭터는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끝내 과업을 완수하면서 현실적 영웅이 된다. 독자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웅화되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고 대리만족과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영화와 만화를 보는 ‘진짜 재미’다. 그래서 히어로 만화의 서사구조도 히어로의 탄생 배경, 성장 과정, 성향 등에 따라 캐릭터의 영웅화에 다르게 작동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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