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규 중앙대 HK+ 인공지능인문학 사업단 단장(인문한국(HK)연구소협의회 회장/국어학회 회장)

이찬규 중앙대 HK+ 인공지능인문학 사업단 단장(인문한국(HK)연구소협의회 회장/국어학회 회장)
이찬규 중앙대 HK+ 인공지능인문학 사업단 단장(인문한국(HK)연구소협의회 회장/국어학회 회장)

고등학교 2학년 딸이 우울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딸 : 요즘 친구들과 특별한 다툼도 없는데 아이들만 보면 짜증이 나고,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

세 명의 각기 다른 아빠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딸에게 답할 수 있다.

A : 애야, 그건 네가 호르몬의 변화가 심한 나이이기 때문이란다.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 약을 좀 먹고 쉬면 다시 좋아질 거야. 크게 걱정할 일 아냐.
B : 그건 네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성적이 좀 떨어지니 자신감이 없어진 거야. 경쟁에서 한 번 밀려나면 다시 올라가기가 어렵단다. 좀 더 전략적으로 생각해. 자신 있는 과목부터 다시 한번 점검을 시작해 봐. 성적이 좀 오르면 친구들에게도 너그러워질 거야.
C : 그래~ 우리 딸 힘들겠구나. 네가 우울하다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 너의 마음을 이해해.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경쟁은 누구에게라도 힘들 거야. 서로 경쟁자로 생각하면 서로에게 짜증도 나기 마련일 거야. 나는 네가 친구들과의 경쟁보다 너 자신에게 더 충실했으면 해. 우리는 결과적으로 누군가와 경쟁을 한 셈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경쟁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단다. 그래야 조금은 마음이 편해.

예상할 수 있듯이 A는 자연과학적 아빠, B는 사회과학적 아빠, C는 인문학적 아빠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사회가 지향하는 문제 해결 방법은 단연 A아빠 유형이다. 효과가 즉각적이며,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이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항상 좋은 방식이냐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부작용은 해결되지 않는 위험요인이다. 누군가에게는, 언젠가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B의 방법은 현실적이고, 적용 가능하지만 그 관심이 집단에 있고, 집단 속에서 인간의 행위와 역할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 해결책이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단계에 가면 역시 누구에게는 효율적이고, 누구에게는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는다.

C 아빠의 방식은 해결 개별 대상에 집중하고, 그 상황 전반에 관심이 있어 개별 개인의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딸은 C 아빠의 공감 방식에 가장 만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 아빠의 방식은 여러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점,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다는 점 등으로 인해 비경제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심지어 C 아빠의 방법은 때론 지나치게 본질적 가치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어 문제 해결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 문제 자체 분석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세 가지 유형의 문제 해결 방식은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에 따라 다른 방식이 적용되기도 하지만 결국 궁극적 목표는 모든 개개인에게 가장 효율적 방식을 찾아 주는 것이다. 적어도 산업혁명 이후로 이 세 가지 접근 방법은 각자도생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집중해 왔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세 방식이 경쟁 아닌 경쟁을 하며 힘을 키웠고, 결국 세상은 경제적 부가가치와 맞물려 A의 방식에 힘을 실어 주면서 바이오 분야, AI 분야, 기계 분야 등이 눈부시게 발전했으며 문제 해결의 더 효율적 방안들을 내놓으며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사회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은 모든 인간의 문제가 결국 개인에게로 귀착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C 아빠와 같은 접근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무도 개인의 문제 따위엔 관심이 없지만 결국 모두 개인일 수밖에 없는 ‘역설적 재귀성’에 대한 각성으로 결국 ‘인문학’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사람들이 ‘인문학’에서 답을 찾고자 해도 아직 인문학은 효율적인 답을 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인문학이 좀 더 적극적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적어도 개인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좀 더 인간적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풍부하게 쌓아온 수없이 많은 철학·역사·문학·종교적 사례들을 바탕으로, 개인들이 안고 있는 많은 종류의 문제들에 효율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한 개인의 문제가 사회의 제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으므로 사회과학 분야와도 협력을 해야 한다. 바이오 분야가 생명과 삶의 문제를 다루고 인공지능이 인간 맞춤형으로 나아갈 것이므로 결국 인문학은 바이오 분야나 인공지능 분야와도 협력해 진정으로 세상이 인간다움을 실현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사실 그리스로마의 관점으로 보자면 인문학이 아닌 것은 없다. 대부분의 학문이 인문학으로부터 갈라져 나갔을 뿐이다. 지금 남아 있는 인문학은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문제 해결을 떼어 내고 남은 부분이다. 이제 과거 떨어져 나갔던 것들을 한 데 모아 보다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때다.

인문학이 새로운 모색으로 제반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과 별도로 국가도 화답이 필요하다. 필자는 한 국가가 얼마나 살기 편안한가를 측정해 보기 위해 ‘인문학 지수’를 만들어 사용하곤 한다. 이것은 한 국가에서 ‘인문학의 육성’에 투여하는 총비용을 지수화한 것이다. 인문학지수가 높으면 당연히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대접받으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답게, 문화국가답게 인문학지수를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2024년은 인문학이 새롭게 변화하고, 국가 차원에서 ‘인문학 지수’를 높여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희망을 꿈꾸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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