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정 한양대학교 총장

이기정 한양대 총장
이기정 한양대 총장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2020년 5184만 명에서 이후 10년간 연평균 6만 명 내외씩 줄어들어 2030년 5120만 명, 2070년에는 3766만 명(1979년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 한다. 유관 지표로서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2023년 2분기에 급기야 0.70을 기록한 가운데,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이에 따른 고등교육의 전방위적 위기는 예견된 바 그대로다.

한마디로 식구는 많은데 쌀독은 비어가는 상황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특히 우리의 논제와 관련해 갑자기 왜 대학의 숫자가 증가했는지 등 격동의 현대사와 이해관계의 정치사를 논하며 책임론 공방에 몰두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 앞에서 차라리 한가한 상상일 뿐이다. 누구를 탓한들 현재로서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위기 해결…길은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혹자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으니 교육의 질과 연구 수준을 높이고 폭넓은 국제화를 추진해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좋은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론이다. 좋은 얘기가 자꾸만 더 공허하게 들리지 않으려면, 뭔가 맥을 찌르는 진단과 실제적 방안이 필요하다.

일례로 교육 측면에서 문제 해결 중심, 프로젝트 기반 학습, 창의력과 협업력, 비판적 사고력 강화, 교수법과 평가법 개선 등이 제시된다. 하지만 교육 소비 주체의 실질적 만족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이는 회의 석상의 일반론에 그치고 만다. 또 여기에는 교육 공급자인 기관과 교수자와 행정인력도 함께 고려돼야 하는데, 어떤 서비스도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치우칠 경우 장기적 관점에서 불균형으로 인한 부조화의 문제를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끊임없이 학습권 보장을 요구한다. 이는 때로 교수의 의무·권리와 어색하게 충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본다. 방법은 하나다. 수업권과 교권과 행정의 효율성이 원만하게 만날 수 있는 교차점을 찾는 것이다. 실제 수업 현장으로 들어가 보면 길은 있다. 가령 반복되는 이론 강의의 구축은 팬데믹 시기에 축적된 양질의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갈수록 진화하는 인공지능과 최첨단 에듀테크를 활용함으로써 실시간 피드백과 평가 타당도, 신뢰도 향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공급자의 효율 또한 점점 증대케 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는 곧 수업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바로 수업이라는 공간의 재정의를 위한 치열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때다. 인원과 관계없는 최첨단 기술 기반 세미나가 될 수도 있고, 교수자와 학습자가 교과목을 함께 설계해 나가는 온라인 포트폴리오 작성 방식이 될 수도 있다. 학기라는 규정 역시 교육 쌍방의 결과물을 함께 생성하는 일련의 단계로 재정의된다면, 그 과정에서 현대의 과학기술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그래서 교수와 학생의 업적이 상호 언급형으로 보존돼 진학, 진로, 취업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면, 분명 길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업의 완벽한 통제적 권위자로서 교수의 지위, 그리고 일일이 전례를 확인해 가며 책임소재만을 늘 염두에 두는 행정의 소심함을 먼저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질적 수준과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 사회 문제와 요구에 대한 부응, 국내외 협력 강화, 성과의 사회적 활용과 보급 증진 등등. 필자 역시 자주 언급하는 내용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만큼은 우리의 시선을 잠시 돌려보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자. 일깨울 수 있는 연구 잠재력은 얼마든지 있다. 대학은 함께 가는 집단이다. 따라서 연구 역시 함께 가는 것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교내 연구자의 3분의 1은 능동적 연구자들이다. 하지만 약간의 격려와 지원만 있다면 서서히 그 대열에 합류해 빛을 발할 수 있는 또 다른 3분의 1이 굳건히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택과 집중과 투자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한양대 역시 다수의 세계 상위 1% 연구자(HCR)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바이오, 에너지, 환경, 재난, 보안 등 현안 분야에 관한 연구와 산학협력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에게 감사한 것은, 뛰어난 업적 외에도 참으로 조용한 견인의 역할을 하며 미래의 연구자들을 부단히 각성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화를 위한 노력, 세심하고 촘촘해져야
국제화는 한양대의 성장과 도약에 있어 하나의 디딤돌이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과 긴밀한 네트워크, 그리고 양적, 질적 성장의 결과물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하지만 이 역시 속단은 금물이다. 인구절벽으로 인한 인력급감의 현실이 뻔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국제화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학교는 물론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다뤄야 할 때다. 국제화의 양과 질에 있어서 대학 간 온도차가 존재할 것이고, 지역과 산업체마다 수요와 공급이 상이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세심해져야 한다. 한국을 최종 유학국으로 선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 동인이 됐던 배경을 조사, 연구하는 것과 같은 실무이론 분야는 물론 이후 입시 전형, 입학, 입국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절차, 생활 안정과 졸업 후 진로 선택과 정주화 가능성 등 일련의 수속과 프로세스가 촘촘하게 계획돼야 한다. 그러자면 이에 따른 전문 인력과 에이전시의 육성, 양성화도 이제는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될 만한 일이다.

한양대는 ‘사랑의 실천’을 교육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삶의 진정한 가치가 관심이고 관심이 결국 사랑이라면, 작금의 긴박한 상황일지라도 그 울림을 생각해 볼 만하다. 마침 이와 어울리는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죽은 자를 동정하지 마라, 해리. 살아 있는 자들, 그중에서도 사랑 없이 사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라. (Do not pity the dead, Harry. Pity the living, and above all those who live without love.)”

덤블도어 교장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中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